전국 경찰 수사를 총지휘하는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치안정감)에 검사 출신인 정순신(57·사법연수원 27기) 변호사가 24일 임명됐다. 국가수사본부는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한 뒤 신설된 경찰 수사권의 상징 같은 조직이어서,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된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을 무력화하려는 시도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정 변호사를 제2대 국가수사본부장으로 임명했다. 임기는 오는 26일부터 2년이다. 경찰청은 국가수사본부장 지원자를 심사한 결과, 정 변호사를 최종 후보자로 낙점해 윤 대통령에게 추천했다. 국가수사본부장은 경비·정보 등을 제외한 3만여명 전국 수사 경찰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는다.
윤석열 정부 첫 국가수사본부장에 검사 출신이 임명된 배경에는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비대해진 경찰 권한을 견제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은 이날 “이번 인사는 1차 수사기관으로 대부분 수사를 경찰이 담당하게 됨에 따라 경험있는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경찰의 책임수사 역량을 한층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정 변호사는 윤석열 대통령과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어 경찰 수사 최고 책임자에 대통령이 신뢰할 수 있는 인사를 세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2과장으로 재직하던 2011년, 정 변호사는 대검 부대변인을 맡았다. 2018년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을 지낼 때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으로 근무한 인연도 있다. 정 변호사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원석 검찰총장과는 사법연수원 동기다. 당초 국가수사본부장 공모에 정 변호사가 지원했을 때부터, 경찰 안팎에서는 사실상 본부장으로 내정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많았다.
경찰 내부는 술렁이고 있다. 검찰 수사지휘권 폐지를 무력화하려는 의도 아니냐는 것이다. 한 총경급 간부는 “검사 출신이 경찰 수사의 지휘권을 가진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모욕적으로 느껴진다. 수사기관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내부망 ‘폴넷’에도 “수사권 조정의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 같다. 이제 이런 글을 쓰는 것도 무섭다”라는 글이 게시됐다.
야당도 이날 인사에 반발했다. 더불어민주당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윤석열 정권은 행안부에 경찰국을 설립해서 경찰 인사를 장악하고, 문제 제기한 총경들을 인사 보복하며 경찰 장악 1단계를 시행하더니 이번에는 국가수사본부장에 검사 출신을 임명하며 경찰 장악 2단계를 시행했다”며 “공정한 수사를 위해 전진시킨 검·경 수사권 조정을 전면 퇴행시키는 비열한 수법”이라고 비판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심우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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