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정민(47)씨 부부는 다음달 초 경기 시흥의 한 아파트로 이사를 앞두고 고민이 커졌다. 양육을 전담하던 이씨 아내가 지난해 3월 혈액암을 진단받은 뒤 항암치료를 거치며 몸이 지친 상태라 홀로 육아하기 어렵지만, 이사할 집과 가까운 국공립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길 수 없게 되면서다. 어린이집 입소 대기 우선순위 1순위에 해당하는 맞벌이나 다자녀 가구 등에 포함되지 않는 이씨 부부는 ‘3순위’로, 사실상 ‘입소 불가’ 통보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씨는 25일 “아내 몸이 괜찮다면 거리가 먼 어린이집이라도 보낼 텐데 암 진단 후 향후 5년간 추적 관찰이 필요해서 어렵다. 암환자의 자녀도 어린이집 우선순위 우선 대상으로 고려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씨처럼 영유아 자녀를 둔 암환자 등 중증질환자가 보육 사각지대를 호소하고 있다. 치료 때문에 부모가 자유롭게 보육할 환경이 되지 않지만, 어린이집에 입소하기 위한 여러 조건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육아하기 어려운 처지를 고려해 이들을 입소 우선순위로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사회적인 공감대는 이미 형성돼있다. 2014년 정부가 전국 어린이집 입소대기관리시스템을 운영하기 직전인 2013년 육아정책연구소가 영유아를 둔 부모 1000명을 대상으로 입소 자격과 관련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질환이 있는 부모’ 가구의 중요도 점수가 ‘장애부모’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맞벌이와 다자녀 가구 등은 이들보다 한참 낮은 점수를 받았다.
이에 중증질환자 자녀를 어린이집 우선 이용대상에 포함하는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지만, 법률 소관부처인 보건복지부에서는 외려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지난 2021년 복지부는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에 대해 “중증질환에 대한 정의가 개별 법령마다 다르고, 의료 관련법이 아닌 법에 의료적 판단을 필요로 하는 중증질환을 규정하는 것은 어렵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냈다. 또 “만성신부전증을 포함한 신장장애인, 심장 및 만성호흡기 장애인, 간 장애인이나 결핵, 중증 및 희귀난치성질환자는 우선 입소대상에 이미 포함돼있다”고 했다.
유해미 유아정책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숫자가 적은 국공립어린이집은 우선순위 자체가 첨예한 논쟁거리가 되는 만큼, 대상자가 상시적 돌봄 수요자에게 집중될 수밖에 없다”며 “암환자 자녀처럼 치료 기간 등에 따라 한시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아이를 위한 지원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 보육기반과 관계자는 “관련 민원이 최근 6개월간 이씨를 비롯해 두건에 불과했다”며 “사연은 딱하지만 영유아보육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이고, 최근엔 1순위 대상자도 너무 많아 순위 자체도 크게 의미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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