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3일 오전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의 열차 탑승을 저지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지하철 선전전을 사실상 원천 봉쇄하고 있는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은 철도안전법을 근거로 내세운다. 이 법은 철도시설 또는 차량에서 폭언 또는 고성방가 등 소란을 피우는 행위를 금지(48조)하며, 이를 어길 경우 퇴거(50조)시킬 수 있다고 규정한다. 경찰 수백명이 휠체어 장애인들을 막아선 지하철역마다 “고성방가 등 소란을 피우는 행위, 광고물 배포 행위, 연설 행위 등은 철도안전법에 금지돼 있다”는 역장의 경고가 수시로 나온다. 실내 집회·시위를 막을 근거가 없자, 여야 정치권 등에서도 청취해온 장애인 이동권 요구를 ‘고성방가’로 규정해 봉쇄하겠다는 것이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옥외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사전 신고를 요구하고 신고 범위를 벗어나는 행위를 처벌하고 있지만, 옥내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신고 규정 자체가 없다. 공사 쪽이 ‘안전한 철도교통 유지’를 위해 제정된 특별법 조항을 끌어다 쓰는 이유다. 법조계에서는 헌법이 보장하고 금지 규정도 없는 옥내 집회·시위를 철도안전법을 근거로 원천 봉쇄하는 것 자체가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주언 변호사(사단법인 두루)는 4일 “법원이 내놓은 ‘5분 이내 시위’ 조정안은 전장연이 목소리를 낼 최소한의 기회를 보장해주려는 것이다. 법원도 전장연 시위가 장애인 이동권이라는 기본권 보장을 위한 것임을 인정한 셈이다. 그럼에도 서울교통공사는 고민 끝에 나온 중재안을 차버리고, 최소한의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막아버렸다. 이같은 기본권 침해에 대해 헌법소원 제기를 검토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전장연은 오는 19일까지 열차 탑승 선전전을 보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대신 장애인 이동권 선전전 원천 봉쇄 방침을 정한 오세훈 서울시장, 여야가 합의한 장애인권리 예산을 6500억원 이상 깎아 148억원만 증액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면담을 요구하고 있다. 면담이 성사되지 않으면 20일부터 1시간 이상 열차 지연이 발생할 수 있는 지하철 출근길 시위를 진행하겠다고 예고했다. 고의적인 열차 지연 행위에 대해 검찰과 경찰은 일반교통방해·업무방해 혐의를 적용해 형사 처벌하고 있다. 이지은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간사는 “전장연의 이동권 시위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10년이 넘은 사회적 과제가 여전히 해소되지 않아 계속 반복되고 있는 데, 그 원인을 해결하지 않은 채 공권력을 동원해 억압하고,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거나 형사 처벌하는 것은 적절한 문제 해결 방식이라 보기 어렵다”고 했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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