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원대 사기 혐의로 기소된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의 실소유주 이아무개 전 빗썸코리아 이사회 의장. 연합뉴스
1120억원 규모 사기 혐의를 받는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의 실소유주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정을 가득 메운 투자 피해자들은 “우리 돈은 어떡하느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4부(재판장 강규태)는 3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사기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정훈 전 빗썸홀딩스·빗썸코리아 이사회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사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전 의장이 빗썸코인(BXA) 상장을 확약했다고 인정할 수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이 전 의장은 2018년 10월 김병건 비케이(BK)메디컬그룹 회장에게 빗썸 인수와 공동경영을 제안하면서, 가상자산 암호화폐 ‘빗썸코인’을 발행해 빗썸에 상장시키겠다고 속여 계약금 명목으로 1억달러(1120억여원)를 받아 챙긴 혐의를 받는다. 김 회장은 이 전 의장 말을 믿고, 빗썸코인을 선판매해 얻은 대금으로 계약금을 충당했지만, 빗썸코인은 상장되지 않았고 김 회장의 빗썸 인수도 무산됐다.
재판부는 이 전 의장이 김 회장에게 빗썸코인 상장을 확약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계약서 초안에 코인 상장 의무 관련 규정이 있었다가 수정 과정에서 삭제됐다. 김 회장이 최종 계약서에 동의한 점을 고려하면, 코인 상장을 확약하는 조항이 없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김 회장은 주식투자와 암호화폐 업계 경력이 상당하고 지식도 많다. 이 전 의장의 말만 믿고 빗썸코인이 상장돼 인수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착오에 빠질 정도로 관련 지식이나 경험, 정보력이 부족하다고 보이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이 사건으로 일반 투자자들이 입은 피해액은 이 전 의장에게 인정된 112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김 회장이 빗썸코인을 판매한 자금으로 이 전 의장에게 건넨 계약금을 모두 충당했기 때문이다. 당초 빗썸코인에 투자한 이들은 이 전 의장과 김 회장을 모두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 다만 검찰은 김 회장은 이 전 의장에게 속았고, 이 전 의장이 직접 빗썸코인을 판매한 것은 아니라며, 코인 판매 사기 혐의 자체에 대해서는 두 명 모두 무혐의 처분했다.
이날 선고공판에는 100석 가까운 방청석이 꽉 찰 정도로 많은 이들이 법정을 찾았다. 이 전 의장에게 무죄가 선고된 뒤에도 한참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들은 “이렇게 무죄가 나오면 우리 돈은 어떡하냐”고 항의하거나, 피고인석에서 눈물 흘리던 이 전 의장을 향해 욕설을 하기도 했다. 이 전 의장은 무죄 판결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법원을 빠져나갔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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