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국가정보원 공무원으로 임용돼 공작원으로 일했던 ㄱ씨는 2015년 10월 내부 감사를 받았다. ㄱ씨가 같은해 1∼8월 일본에서 근무할 때 커피전문점에서 한도 3천엔(한화 약 3만원)이 넘는 결제를 19차례 했다는 이유에서다. ㄱ씨는 이 감사가 ‘보복성 감사’라고 주장했다. 자신이 2014년 9월 국정원 내부 문제를 비판했는데, 이를 문제삼은 것이라는 주장이다.
ㄱ씨는 감사 방식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감사 당시 사방의 벽과 천장, 바닥이 모두 하얗고 창문이 없는 좁은 방에서 사흘에 걸쳐 아침부터 밤까지 조사를 받는 등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ㄱ씨는 이같은 조사 방식에 충격을 받아 해리장애라는 정신질환을 앓게 됐다고 했다. 이후 ㄱ씨는 장애 진단을 받고 2015년 말부터 2018년 3월말까지 병가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ㄱ씨는 휴직기간이 끝난 뒤에도 출근하지 않았고, 이에 국정원은 2018년 5월 ㄱ씨를 징계위원회에 넘겼다. 징계 결과 ㄱ씨는 같은해 12월 직권면직됐다. 이에 ㄱ씨는 “이른바 ‘하얀방’에 감금되는 등 국정원의 위법 부당한 조사로 정신장애가 발생했다. 이는 공무상 질병에 해당하므로 3년의 휴직기간이 보장돼야 한다”며 국정원장을 상대로 직권면직 징계 불복 소송을 냈다.
1심은 ㄱ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반발한 ㄱ씨는 항소했고,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지난해 6월 <문화방송>(MBC)의 시사프로그램 ‘피디(PD)수첩’에 자신의 이야기를 제보했다.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행정4-2부(재판장 한규현)는 <문화방송> 보도 내용까지 포함해 이 사건을 다시 심리했지만, 1심과 마찬가지로 ㄱ씨에게 패소 판결을 내렸다. ㄱ씨가 고문을 받았다거나, 국정원 내 하얀방의 존재를 인정할 근거가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2심은 “ㄱ씨 주장처럼 특이한 구조물(하얀방)이 다수의 사람이 오가며 회의하는 회의실 내부에 설치돼 있다는 점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며 하얀방에서 조사를 받았다는 ㄱ씨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ㄱ씨가 내부 비판을 제기한 후 보복성 감사를 받았다고 주장한 점에 대해서도 “ㄱ씨가 내부 비판을 했다고 주장하는 시점보다 4개월 뒤인 2014년 12월 ㄱ씨의 해외 업무성과를 인정해 표창장이 수여된 점을 보면 국정원이 ㄱ씨의 내부 비판을 위협적으로 받아들였다고 볼만한 증거가 부족하다. 조사 당시 문제가 된 금액이 소액이라는 점만으로는 보복성 조사라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최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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