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26일 강원 평창군 대관령면에서 등산객들이 눈 쌓인 백두대간을 촬영하고 있다. 같은 날 부산 해운대 장산 등산로에는 봄꽃인 개나리가 계절을 잊은 듯 꽃망울을 터뜨렸다. 연합뉴스
21일 새벽부터 수도권 지역에 많은 눈이 내렸습니다. 대구·경북지역에도 아침부터 눈이 내렸죠. 하지만 이번에도 부산에는 눈이 오지 않았습니다. 부산은 올해 한차례도 눈이 오지 않았습니다. 2021년엔 이틀, 2020년에는 하루, 2019년 이틀 관측된 게 전부죠.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서는 ‘왜 부산에는 눈이 오지 않는가’하는 장탄식이 온종일 이어졌습니다. 부산은 왜 눈이 오지 않을까요. ‘눈이 올 수 없도록 신이 설계한 도시’, 부산의 비밀을 알아보겠습니다.
(*업데이트: 22일 부산 지역에 첫 눈이 내렸습니다. 부산시는 ‘안전안내문자’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흩날렸을 뿐 적설량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첫 눈은 평년(12월23일)보다 하루 빨리 관측된 것입니다.)
22일 부산시가 보낸 안전안내문자. 한겨레 독자 최병수씨 제공
기상청은 ‘눈일수’를 제공합니다. 눈, 소낙눈, 가루눈, 눈보라 등 어떤 형태로든 눈이 목격된 일수입니다. 부산의 30년(1991~2020년) 연평균 눈일수는 4.1일입니다. 최근 10년은 2.9일, 최근 5년은 2.2일에 불과합니다. 귀하디귀한 눈이 그마저도 줄고 있습니다.
부산처럼 바닷가 도시면서 위도가 비슷한 전라남도 목포시는 어떨까요? 목포의 30년 연평균 눈일수는 26.1일입니다. 최근 10년은 25.6일, 5년은 24.4일입니다. 10배 이상 차이가 납니다.
참고로 서울의 눈일수는 30년 연평균 23.9일이었습니다. 최근 10년은 25.4일, 최근 5년은 24.4일이었네요. 부산보다 한참 남쪽에 있는 제주시도 30년 평균 눈일수 18.1일(최근 10년 17.3일, 최근 5년 15.2일)로 부산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겨울철 충청·전라도 지역에는 해기차로 인한 눈이 잦습니다. 차가운 공기가 남하해 상대적으로 따뜻한 서해를 지나면서 온도 차이로 눈구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이 눈구름은 육지에 닿으면 약해집니다. 태풍이 육지에 상륙하면 힘을 잃는 현상과 같은 원리입니다. 힘이 빠진 눈구름은 충청·전라도와 부산 사이에 가로 놓인 소백산맥을 넘지 못합니다. 목포에는 눈이 오는데 부산에는 눈이 오지 않는 이유입니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찬 공기가 개마고원과 백두산 등 고도가 높은 지역을 우회해 동해로 유입되어도 비슷한 방식으로 눈구름이 형성됩니다. 눈구름을 품은 북동풍은 강원도 산간 지방에 많은 눈을 내리곤 합니다.
부산에서 눈을 보기 힘든 이유는 소백산맥이 눈구름을 막기 때문이다. 눈구름이 포함된 동풍도 부산까지 오기는 힘들다. 그래픽_소셜미디어팀
문제는 부산이 동해안에 위치했다고 보기 애매하다는 점입니다. 부산은 한반도 동쪽 끝머리를 기준으로 서쪽으로 살짝 들어간 지점에 있습니다. 이 때문에 동풍이 닿기가 어렵습니다. 동풍이 닿는 울산에는 눈이 오는데, 부산에는 눈이 안 오는 이유입니다. 설혹 부산에 닿는다해도, 부산 동쪽에 자리한 장산, 운봉산 등이 눈구름을 막습니다.
저기압이 통과할 때 기온이 낮아도 눈이 내립니다. 800m 상공의 기온이 0도 이하이면서 지상 습구온도(일반적인 대기 온도인 건구온도보다 낮은 온도를 보임)가 1.5도 미만이면 보통 눈이 내립니다. 부산은 따뜻한 남서풍 등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잘 내려가지 않습니다. 평년 평균기온이 5.0℃입니다. 이 때문에 전국 곳곳에 눈이 와도 부산은 눈 대신 비가 내리곤 합니다.
2010년 3월 10일 부산지역에 많은 눈이 내렸다. 해운대해수욕장 백사장이 눈에 뒤덮였다. 연합뉴스
부산에는 눈이 오지 않습니다. 통계에 기록된 30년 연평균 눈일수가 4.1일이니 ‘그래도 나흘 정도는 눈이 오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눈이 쌓이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눈이 왔다’는 체감이 어렵습니다. 눈사람을 만들 수도, 눈싸움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김원철 기자
wonchul@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