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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직장 밖’ 둘만 있을 때 일어난 성희롱, 법에 기댈 수가 없다?

등록 2022-12-07 16:03수정 2022-12-07 23:37

‘직장내 성희롱’ 구제 한정적…인권위법, 처벌규정 없어
언어적 성희롱 단둘이서 발생땐 명예훼손 혐의도 안돼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대기업 임원 등을 상대로 화법 강의를 하는 ㄱ씨는 지난 11월 초 한 대기업 사업장에서 팀장급 인사담당자한테 부적절한 성희롱성 발언을 들었다. 불쾌감을 느낀 ㄱ씨는 회사 쪽에 사실을 알린 뒤 담당자를 교체해달라고 항의했다. 담당자는 바뀌었지만 ㄱ씨는 정신적 충격에 남은 수업을 도저히 진행할 수 없어 강의료 800여만원을 포기했다.

그는 “혼자 무방비 상태로 성희롱을 당하니 더는 안전하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대기업 앞에서 개인사업자인 제가 나약하다는 무력감에 힘들었다”고 말했다. 해당 기업 관계자는 “신고 직후 인사담당자를 업무 배제한 뒤 조사했고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ㄱ씨는 이 사건을 들고 경찰에도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수사관으로부터 “‘혐의 없음’이 나올 확률이 100%”라는 말을 듣고 취하했다. 현행 법에서 형사처벌이 가능한 ‘성폭력’은 강간·추행 등 물리적 폭력을 동반한 성범죄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ㄱ씨가 겪은 언어적 성희롱은 처벌 대상이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통상 성희롱 피해자는 가해자를 명예훼손이나 모욕 등의 혐의로 고소한다. 그러나 ㄱ씨가 겪은 성희롱처럼 단둘이 있을 때 들은 말은 공연성이 없어 명예훼손 등으로 적용될 수도 없다.

현행 법에서 규제 대상인 ‘성희롱’은 근로관계를 전제로 한 ‘직장 내 성희롱’만 해당한다. 국가기관·지방자치단체 등 공공 영역은 양성평등기본법이 규율하고, 민간 사업장은 ‘남녀고용평등과 일 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적용된다. 각각의 법에서 성희롱을 금지하고 사업주는 피해자 보호 의무와 재발방지 대책 등을 세워야 할 의무를 규정한다.

문제는 ㄱ씨와 같은 개인사업자나 프리랜서 등 속한 조직이 없는 사람들은 성희롱 피해를 구제받을 방법이 적다는 것이다. 이밖에 성희롱 금지를 규정한 법안으로는 국가인권위원회법이 있는데, 조직 내 성희롱뿐만 아니라 업무와 관련된 모든 성희롱에 적용돼 범위가 넓다. 최란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업무 관련성이 있다면 인권위에 진정해서 권고를 받아, 같은 상황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인권위법은 사업주 의무 규정이나 위반시 벌칙 규정이 없어 강제력은 없다.

이런 이유로 2016∼2018년 문화예술계 ‘미투’(성폭력 고발) 운동에서도 대다수가 프리랜서인 예술인의 성희롱·성폭력 규제와 피해구제를 어떻게 할 것인지 쟁점이 되기도 했다. 고용 관계 밖이라 성희롱 방지 대책부터 신고·조사·구제 대책이 제대로 적용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나마 지난 9월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 시행으로 예술 활동에서 성희롱·성폭력 행위가 있을 경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게 수사의뢰와 행정처분·징계·구제 조처 등을 요청할 수 있게 됐다.

업무 관계가 다변화되는 과정 속에서 국회에서도 입법 시도가 있었으나 흐지부지됐다. 20대 국회에선 성차별·성희롱에 대한 포괄적 독립법을 제정하는 법안(남인숙·김상희·전혜숙 의원안)과 성희롱도 형사처벌할 수 있는 형법 개정안(천정배 의원안)이 발의됐지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신상아 서울여성노동자회 회장은 “인권위법에 따라 특수고용 관계의 경우 업무 관련성이 인정되는 경우도 있지만, 고객에게 당한 성희롱은 업무관련성이 인정되지 않는 사각지대도 있다. 인권위가 해당 범위를 확대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는 등의 방안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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