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가 부당해고를 당한 경우, 소송 전 단계인 노동위원회 심판 단계에서 지출한 변호사·노무사 비용도 사용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노동위 단계에서 지출한 비용을 사용자에게 부담시킨 사례가 알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천지법 민사1-2부(재판장 박정운)는 계약직 의사 ㄱ씨가 대학병원을 운영하는 ㄴ학교법인을 상대로 낸 임금 및 소송 비용 등 반환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고 4일 밝혔다.
ㄱ씨는 2003년부터 ㄴ법인과 1년 단위로 계약을 맺고 일했다. ㄴ법인은 2018년 ㄱ씨와의 재계약을 거부했고, ㄱ씨는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인천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냈다. 인천지노위가 ㄱ씨 손을 들어주자 ㄴ법인은 ㄱ씨와 재계약을 맺었으나, 이듬해 다시 재계약을 거부했다. 이에 ㄱ씨는 다시 부당해고를 주장했고, 지노위와 중노위에서 모두 부당해고 구제명령을 받았다. 이에 불복한 ㄴ법인이 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패소 판결을 확정받았다. ㄱ씨는 인천지노위와 중노위 심판 과정에 변호사를 선임해 약 2400만원을 지급했다며 이를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1심은 “사용자의 부당해고로 근로자가 자신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 노동위에 구제신청을 하면서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느라 비용을 지출한 경우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며 “ㄴ법인은 ㄱ씨가 지노위와 중노위 단계에서 변호사 보수로 지급한 2400여만원 중 70% 상당인 1700여만원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2심도 “사용자는 근로자가 사용자의 부당해고 등에 대응하기 위해 노동위에 구제신청 등을 하는 과정에서 지출한 변호사 선임 비용에 대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범위 내에서 상환 의무를 부담한다”고 판단해 원심을 유지했다. 이후 ㄱ씨와 ㄴ법인이 상고하지 않아 2심 판결은 그대로 확정됐다.
이번 판결은 노동위 심판 단계에서 부당해고를 인정받은 노동자가 사용자를 상대로 변호사·노무사 비용을 청구할 수 있다고 본 첫 판결로 알려졌다. 민사소송법은 패소자가 승소자의 변호사 비용과 인지대 등 소송 비용을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반면 노동위 단계에는 관련 규정이 없다. 사건을 대리한 민경한 변호사는 “노동자가 노동위 사건에서 변호사 비용을 상환받을 수 있다면, 열약한 위치에 있는 노동자들이 좀더 쉽게 법률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손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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