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에서 추정한 한국 성매매 규모는 연간 15조5천억원(2015년, 미국 해벅스코프닷컴)에서 30조원(2016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다. 젠더미디어 <슬랩> 갈무리
휴대전화 번호 010-3×××-2×××. 지난 10월, 이 번호로 휴대전화를 개통하자 강아무개(24)씨에게 전화와 문자가 끝없이 왔다. 10일 동안 전화 98통(받지 않은 전화 포함), 문자 54통. 합쳐서 150여통, 하루에 15통꼴이었다. 문자 대부분은 “○○ 예약되나요?”라는 내용이었다. 전화는 대부분 받지 않았다. 간혹 받아든 전화에서 건너편의 사람은 문자 내용과 같은 걸 물었다. “□□죠? △△ 예약하려고 하는데요.” 강씨는 이 전화번호를 누가 어떤 목적으로 썼을 거라 추정할 수 있었다. 성매매 알선업자, 포주가 쓰던 전화번호였다. 전화번호를 포털 사이트에서 검색해보니 단번에 그 추정이 맞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대여섯군데의 성매매 알선 사이트에 강씨가 갖고 있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성매매’는 성매매처벌법(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으로 처벌받는 ‘범죄’다. 2010년대 중반부터 디지털 성착취와 온라인 그루밍 범죄 등의 심각성이 알려지며 대중의 관심이 그쪽으로 옮아간 사이, 전통적인 ‘성착취’인 성매매 범죄에 대한 세간의 관심은 크지 않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 성매매 규모는 거대하다. 국내외에서 추정한 한국 성매매 규모는 연간 15조5천억원(2015년, 미국 해벅스코프닷컴)에서 30조원(2016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다. 일상적인, 너무 일상적인 성매매 범죄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어난다. 강씨에게 걸려온 전화는 그 증거 가운데 하나였다. 강씨는 전화를 서둘러 없애지 않고, <한겨레>의 문을 두드려 전화를 건넸다.
강씨는 스마트폰이 있었지만, 폴더폰을 하나 더 개통했다. 지난달 1일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만난 강씨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집중하기 위해서” 두번째 전화를 만들었다고 했다. 폴더폰은 옛 모델로 전화와 문자만 되는 전화였다. 강씨가 전화번호를 알려준 사람은 가족과 지인 몇명뿐이었다. 이 두번째 전화는 오히려 공부를 방해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려댔기 때문이다. 평일 아침도 예외가 아니었다. 게다가 강씨가 확인한 문자들은 거의 빠짐없이 성매매와 관련된 내용들이었다. 예약 문의, 성매수자 전화번호 조회 의뢰, 성매매 알선 사이트 홍보 등등. 강씨는 “전화를 개통한 지 하루쯤 지나 이 전화가 성매매 포주의 전화인 걸 알았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은 강씨에게 “네가 위험할 수 있으니 그냥 번호를 바꾸는 게 최선”이라고 조언했다. 강씨는 다른 선택을 했다. “며칠을 고민했다. 그러다 언론에 이 사실을 제보하면 더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질 수 있겠다 생각했다.”
성매매 범죄는 널리 알려진 범죄지만, 강씨가 알리고 싶었던 건 좀 달랐다. “성매수자가 성매매 종사자에게는 너무 폭력적인데, 포주에게는 정말 ‘젠틀하게’ 연락을 한다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걸려온 전화를 몇차례 받았다. 강씨는 “전화를 받으면 미안하다고 한다. 내가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 성매수자들의 태도가 너무 다르다. 나를 포주로 생각하고 보내는 문자 속 말투도 정말 정중했다”고 말했다. 성매수자의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악마화’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강씨는 견디기 힘들었다. “거리에 평범하게 걸어가는 사람, 나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도 내 전화로 연락을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결과를 보면, 평생 한번 이상의 성매매를 경험한 남성 비율은 42.1%다.
성매매 종사자에겐 가차 없는 폭력을 휘두르는 성매수자의 본모습을 확인하기도 했다. 강씨는 한 문자 내용에 충격을 받았다. “노○질○ 되나요?” 콘돔 없이 질내 사정을 하려는 성매수자의 문의였다. 강씨는 “성매매 종사자들이 정말 위험한 환경에서 일하고 있고, 그런 요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일을 하고 있는 걸 알고 정말 비참해졌다”고 했다. 성매매 종사자가 처한 환경에 크게 분노하는 강씨에게 성매매 종사자는 먼 존재가 아니다. “20대 여성인 나는 성매매에 종사하는 사람과 그렇게 다른 사람이 아니다. 나도 어떤 선택을 했다면 성매매 종사자로 살았을 수 있다.” 성매매 종사자가 처한 환경에 강씨가 비참함까지 느낀 이유다. “성매매 종사자들이 겪은 폭력에 대해 많은 것이 떠오른다. 누군가의 성기를 장난감으로 쓰고, 이상한 걸 넣고, 때리고,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하고. 가끔 그러다 어떤 사람들은 큰 병에 걸리거나 죽는다.” 이렇게 말하며 강씨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강아무개씨는 “전화를 개통한 지 하루쯤 지나 이 전화번호가 성매매 포주의 번호였던 걸 알았다”고 했다. 강씨의 전화기는 성매매를 문의하는 사람들의 문자 탓에 시도때도 없이 울렸다. 젠더미디어 <슬랩> 갈무리
남성 가운데 열에 아홉(90.5%)은 성매매를 범죄라고 인식하고 있지만(2019년 성매매 실태조사), 심각한 범죄로는 여기지 않는 듯 하다. 강씨는 “전화를 건 사람들은 성매수를 전혀 범죄라고 생각하는 거 같지 않았다. 너무 당당했다”고 했다. 실제 성매수자들은 자신의 범죄 행위를 자백하는 데 스스러움이 없다. 성매매 산업의 한 축인 ‘성매수자 커뮤니티’에서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성매매 예방·감시 활동을 하는 서울시립 다시함께상담센터(센터)는 지난 9월27일 성매수자 커뮤니티를 모니터링한 결과를 발표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의 게시판에는 하루에만 1600개가 넘는 성매수 후기 또는 성매매 정보 공유글이 올라왔다. 김민영 센터장은 “성매수 후기는 (성매매처벌법으로 처벌하는 행위인) 성매매를 알선, 유인, 조장하는 행위와 다름없는데도 수사기관은 이를 처벌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나라는 성매매를 정말 줄이고 싶은 걸까?” 강씨는 반문했다. 전화번호 하나만 알면 너무도 쉽게 성매매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의구심을 키운다. 강씨는 “그저 말로만 성매매를 하면 안 된다고 할 뿐, 성매매는 너무 쉬운 범죄다. 성매매 종사자들은 지금 법(성매매처벌법)으로는 성을 판매한 사람으로 처벌받기 때문에 신고도 하지 못한다”고 했다. 활동가들도 같은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김민영 센터장은 “현행법으로는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성매매 종사자가 가장 많은 처벌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종사자와 함께하는 단체들은 성매매처벌법을 개정해서 종사자가 처벌받지 않을 수 있고 내부고발 할 수 있는 위치를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강씨는 성매매 알선업자의 전화를 <한겨레>에 전달했다. 이용이 중지되지 않은 전화기에는 아직도 성매수 문의 전화와 문자가 이어지고 있다. <한겨레>는 이 전화를 서울시립 다시함께상담센터에 전달할 예정이다. 센터는 전화와 문자 내용을 살펴 경찰 신고 등의 조처를 취하기로 했다.
이정연 기자
xingxing@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