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24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열린 2022 고려대 대동제에서 학생들이 공연을 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26일 밤 8시55분 고려대학교 민주광장. 코로나19 거리두기 해제로 3년 만에 열린 이날 축제 무대에선 인기 걸그룹 ‘에스파’의 공연이 막 끝난 상태였다. 다음 차례인 ‘악동뮤지션’은 무대에 올라오지 않았다. 대신 무대에 올라와 마이크를 잡은 이는 소방관이었다. 일부 학생들이 인파에 갇혀 119에 “압사당할 것 같다”는 신고를 했지만 몰리는 인파로 구급대가 진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 119로 신고가 들어오고 있어요. 죽겠대요, 죽겠대.” 소방관의 호소로 학생들은 “뒤로 가! 뒤로 가!”를 외쳤고, 구조대원과 경찰들은 탈진한 학생들을 인파에서 겨우 꺼낼 수 있었다.
아찔한 상황이 벌어진 곳은 고려대뿐만이 아니다. 올해 3년 만에 열린 대학교 축제 곳곳에선 인파 눌림 사고의 위험이 발견됐다. 선거 기간을 맞은 각 대학교 총학생회 후보들은 축제·행사 안전 관련 공약을 내세우고, 학교 본부와 경찰, 지자체 등은 내년 대학교 축제에서는 인파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오는 30일까지 진행되는 고려대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새솔’ 선본은 안전대응관리사 2급 자격을 갖거나 그에 준하는 응급처치능력을 갖춘 학생 스태프를 20명 이상 확보하고, 행사 도중에 응급처치할 수 있는 부스의 위치를 꾸준히 공지하겠다고 밝혔다. 인파 밀집을 완화하기 위해 축제 무대 구조를 ‘돌출형 I자’로 바꾸고, 무대와 인접한 곳은 좌석제로 운영하겠다는 공약도 내세웠다. 또 다른 선본인 ‘오늘’도 한 방향 통행로를 만들고 안전요원을 추가 배치하며, 지자체와 협력해 경찰 인력을 배치하겠다는 약속을 내걸었다. 지난 26일 당선된 연세대 총학생회 ‘바로’도 안전사고 대응 매뉴얼을 제작하고, 행사 당일 보안전문기업의 보안요원을 확충하는 내용의 공약을 내세웠다. 한양대, 성균관대 총학생회 후보도 안전 관련 공약을 내걸었다.
축제 안전관리를 학생들의 몫으로만 남겨둬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학교 축제 성격 자체가 유명 연예인의 공연으로 외부인까지 몰리는 등 인파 사고 위험이 있는 대표적인 행사가 된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2008년 서울대 봄축제에서는 걸그룹 ‘원더걸스’의 무대를 보려다가 인파가 깔리는 사고가 발생해 학생 2명이 타박상을 입었다. 2016년 부경대 축제에서는 몰려든 인파를 피하기 위해 건물 외부에 설치된 플라스틱 채광창에 올라가 공연을 보던 학생 2명이 지하 7m 아래로 추락해 다치기도 했다.
김찬희 고려대 총학 중앙집행위원장은 “축제 등 행사 안전관리 요원을 대부분 재학생이 맡는데, 외부인의 경우에는 학생들의 안내를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지호 한양대 부학생회장도 “가을 축제에 때 학생회 차원에서 축제안전팀을 구성하고 펜스를 더 많이 설치해 인파를 분산시켰지만 내년에도 안전한 축제를 만들려면 관련 예산이 지금보다 더 확보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학교 본부와 경찰, 지자체 등도 대학 축제 때 인파 관리 등 안전 대책을 더 적극적으로 수립한다는 계획이다. 고려대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내년 축제부터는 지자체와 더 적극적으로 안전 대책을 수립할 것”이라며 “특히 축제와 관련된 예산 일부를 안전 전문 업체를 섭외하는데 사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려대를 관할하는 성북경찰서 관계자도 “이태원 참사 이후로 안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져 행사 주최 쪽에서 먼저 경력 대비를 요청하는 경우도 많아진만큼 앞으로 있을 대학 축제에서도 적극적으로 경력을 배치할 것”이라고 했다. 성북구청도 지난 9∼11일 열린 서경대 축제에 구청 직원들을 안전요원으로 배치했다고 밝혔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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