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자택 100m 이내에서 집회·시위를 금지하는 법안을 여야가 전격 합의하면서 시민사회가 반발하고 있다. 헌법상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에 대한 고민보다는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을 집회에서 ‘보호’하려는 주고받기식 협상 결과라는 것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는 지난 23일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자택 100m 이내 집회·시회를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현행 집시법은 △대통령 관저 △국회의사당 △헌법재판소·법원 △국회의장·대법원장·국무총리 등의 공관 △외교기관 및 외교사절 숙소 100m 안쪽에서는 집회·시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자택까지 금지 구역에 추가하는 내용이다. 집시법 개정안은 다음달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돼 심사 절차를 밟는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9일 오후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 관저로 예방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 등 당 지도부를 배웅한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들어 인사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아직 법안심사소위 수준이긴 하지만 주요 법안에서 격렬하게 충돌하는 여야가 집시법 개정안에 손쉽게 합의한 데는, 용산 윤석열 대통령실과 경남 양산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근처 집회·시위가 직접적 계기가 됐다. 주변 집회를 막으려는 국민의힘과 법안 통과 열쇠를 쥔 더불어민주당 쪽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셈이다.
용산 대통령실 이전 뒤 경찰은 집시법이 규정한 ‘대통령 관저’에 집무실도 포함된다고 확대 해석해 주변 집회·시위를 금지 통고하고 있다. 이에 법원은 거듭해서 ‘대통령 관저에 집무실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놓았다. 현재 이 사안은 집회·시위를 주최하는 시민사회단체와 이를 막는 경찰이 본안 소송을 하고 있는데, 기존 법원 판단에 비춰볼 때 시민사회단체 쪽 최종 승소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온다. 본안 소송을 대리하는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24일 “법이 통과될 경우, 설령 법원에서 이기더라도 더는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집회를 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시민사회는 민주당이 앞장서 시민 기본권을 후퇴시킨다고 비판했다. 랑희 ‘인권운동공간 활’ 활동가는 “박근혜 정부 때는 청와대 앞 집회·시위의 자유를 지지했던 민주당 의원들이 지금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인권·민주주의의 원칙이 아니라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바꾸는 모습”이라고 했다. 김선휴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이미 사생활의 평온과 소음을 규제하는 조항이 있다. 전직 대통령 자택을 지키자고 중요한 기본권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후퇴시키는 법안을 통과시키려 한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도 이날 논평을 내고 “2016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집회와 같이 민주주의 역사를 새로 쓴 국민의 촛불집회로 탄생한 정부라고 반복하던 민주당이 반헌법적 집시법을 통과시켰다는 데 개탄스럽다”며 “남은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반헌법적이자 집회 참가 국민을 범법자로 만드는 법안을 폐기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