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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이태원 참사 현장 여과없이 노출…일반인도 트라우마 우려”

등록 2022-11-12 09:00수정 2022-11-14 09:04

[한겨레S] 인터뷰
김은지 전 안산 단원고 스쿨닥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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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지난달 29일 150여명이 희생되는 대규모 참사가 일어났던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이곳 지하철역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추모공간에는 생때같은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추모객들의 손편지가 줄지어 붙었다. 시민들은 글에서 “지켜주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같은 장소에 있었음에도 돕지 못하고 자리를 피해서 죄송합니다”라며 아픈 마음을 어디에 둘지 모르고 있다. 김은지 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아동청소년 위원장(마음토닥 정신건강의학과 원장)은 2일 <한겨레>와 한 전화 인터뷰에서 “이번 이태원 참사는 미디어 등을 통해 사망자 주검이나 구조 현장이 전례 없이 대거 노출되면서 일반인들로 참사 트라우마 증상이 확산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김 위원장은 세월호 참사 이후 2014년 7월부터 2년간 안산 단원고 스쿨닥터로 생존 학생들의 상처 입은 마음을 긴 시간 돌봤다. 청소년모바일상담센터장, 서울시 다시함께상담센터 의료심리 전문지원단 등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8년 만에 일어난 사회적 참사에 대해 그는 “그들이 거기 있었던 게 잘못이 아니고, 이들을 위로하는 사람들 역시 비난받지 않으며 슬픔을 나누고 공감할 권리가 있다”고 강조했다.

가늠하기 어려운 ‘이태원 트라우마’

―이태원 참사 뒤 어떤 점이 가장 우려되나?

“세상에 똑같은 재난이 없고, 모든 재난은 제각각 특성이 있다. 이태원 참사의 경우, 대규모 희생자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세월호와 닮았지만 사고 현장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일반에 대거 노출됐다는 점이 특히 걱정스럽다. 세월호 참사 땐 유가족이나 구조사 등 특수한 경우를 집중 심리 치료 대상으로 삼았다. 하지만 이번엔 현장 생존자를 비롯해 축제 대열에 있던 많은 사람, 뉴스나 유튜브 등을 통해서 참사 상황을 여과 없이 본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때와 달리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과 관련된 문제를 유가족이나 생존자, 구조 참여자 정도로 한정해선 안 되는 까닭이다.”

―실제 당시 심폐소생 현장 등 참사 장면을 봤다는 사람을 손쉽게 볼 수 있다.

“이번 참사로 인한 트라우마 증상 환자를 가려내기 쉽지 않으리라는 것도 그 때문이다. 텔레비전, 에스엔에스(SNS), 유튜브 등을 통해 사람들이 사고 현장을 직간접 경험했다. 특히 참사 초기 모자이크 처리조차 안 된 채 퍼진 영상들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장면들이 많았다. 주말 밤이라 상당수 청소년도 이런 장면을 봤을 거다. 트라우마 유효 증상군이 엄청나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당장 오늘(2일) 병원 진료를 보는데도 기존 환자들 가운데 이번 참사로 (정신적) 증상이 악화한 사례가 많았다.”

―사회적 참사 피해자들의 정신적 상처와 깊이는 어떤 것인가?

“세월호 참사 때를 생각해보면, 유가족들의 정신적 고통은 타인이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참사가 정치·사회적 논란으로 번지거나, 2차 가해가 일어나면 피해자들 입장에선 사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 단원고 학생 특례입학이나 보상금 같은 사안으로 애꿎은 피해자들을 공격하는 식이었다. 이번에도 벌써 ‘교통사고 난다고 정부가 장례비·위로비 주고, 사람들이 관심 주냐’는 식의 막말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세월호처럼 2차 가해가 확산돼선 안 된다. 주요 언론사들을 중심으로 2차 가해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있지만, 여전히 온라인 뉴스 댓글이나 에스엔에스, 유튜브 등을 통해 유포되고 있다.”

―피해자들을 현장에서 도왔던 경찰, 구조대, 일반 시민들도 걱정스럽다.

“경찰관이나 구조대들은 현장에서 피해자들과 가장 밀접하게 접촉하는 이들이다. 다만 이들은 사건에 투입된 뒤 심리치료를 지원하는 병원이나 담당 기구가 따로 있다. 오히려 심폐소생 등을 돕던 일반 시민들이 심리 진단이나 치료를 받지 못하는 점이 더 걱정이다. 이전까지 이런 경험을 해본 적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전문 인력보다 트라우마를 겪을 가능성이 더 크다. 그들이 거기 있었던 게 잘못이 아니다. 당사자들은 참사 현장에 있었던 사실이 노출되는 걸 꺼리지 말아야 한다.”

―사회적 지원과 응원도 필요할 것 같다.

“트라우마 환자들을 괴롭히는 주요 원인이 대인관계다. 사람과 세상이 나한테 안전하다는 믿음이 무너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기본적으로는 의학적인 진단과 치료가 필요하다. 그러나 치료 못지않게 중요한 게 주변 사람들의 지지, 혹은 신뢰다. 피해자들을 이해하고, 믿음을 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트라우마 우려가 있을 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나?

“사람들은 불안이 올라올 때, 그 요인을 피하는 대신 오히려 더 찾는 경우가 있다. 이태원 참사를 예로 들면, 사고 장면을 두려워하면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돌려보는 현상이다. 이런 유의 트라우마 증상을 인지하거나, 불안의 강도가 높아지면 반드시 상담을 받는 게 좋다.”

트라우마 증상 의심될 땐

―일반인도 참사 트라우마 전조를 알 수 있을까?

“우리 몸은 무서운 장면을 보면 공포를 일으킨다. 불안이 올라오면 각성이 일어나고, 이 상태가 지속되면 스트레스성 트라우마가 되는 거다.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몸이 뻐근하면 각성 상태가 아닌지 의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몸 상태를 조절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국가트라우마센터 누리집을 보면, 안정화 기법이 있다. 복식호흡, 나비포옹(두 손을 반대쪽 어깨에 올려 10~15회 토닥거리기), 착지법(발뒤꿈치를 들었다가 내린 뒤 지그시 눌러보기) 등을 해볼 수 있다. 걷기나 다른 운동을 반복해도 좋다. 무엇보다 일상을 방해받을 정도의 스트레스가 오면 반드시 전문 상담을 받아야 한다.”

―‘슬퍼할 권리, 애도할 권리’를 비난받으면서 또 다른 상처를 입기도 한다.

“참사 피해자나 이들을 추모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일부 목소리가 있다는 걸 안다. ‘왜 그런 데 갔냐’는 식이다. 우리는 모두 안전할 권리가 있고, 즐거운 걸 누릴 권리가 있다. 오히려 그들이 안전하게 세상을 즐길 수 있도록 사회가 도왔어야 한다. 비난을 받는 게 아니라, 참사를 안타까워하고 슬픔을 공감할 권리가 있다는 얘기도 서로에게 해줘야 한다. 아울러 참사 경험자나 희생자들을 존중하지 않는 발언은 이들을 비난하는 사람들 자신을 위해서도 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이태원 참사’ 등으로 인한 불안, 우울 등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돕기 위해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1577-0199)를 운영하고 있다. 청소년의 경우, 학생 정서 심리 지원 상담 프로그램인 ‘위클래스’, ‘청소년모바일상담센터’ 등에서 무료 상담을 할 수 있다. 주요 자치구 등에 있는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도 1차적인 상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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