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의 내년도 ‘디지털 성범죄 인식개선 홍보’ 예산이 전액 삭감된 것으로 확인됐다.
9일 여가부의 ‘2023년도 디지털 성범죄 방지 및 피해자 지원 사업 예산안 세부내역’을 보면, 디지털 성범죄 인식개선 홍보 예산은 2021년과 2022년 1억600만원이었으나 내년 예산안에서 전액 삭감됐다. 여성 폭력 방지·홍보 예산은 온·오프라인 홍보 콘텐츠(포스터, 웹툰, 영상 등) 제작이나 기념행사·캠페인 진행 등에 쓰인다.
2022년과 2023년 여성 폭력 방지·홍보 예산을 비교해보면, 가정폭력 예방홍보 예산이 9천만원에서 8천200만원으로 일부 줄었고, 여성폭력 예방 및 홍보는 동일하게 2억7200만원이었다. 성범죄 예방 및 홍보는 4억2800만원에서 7억400만원으로 늘었다. 2023년에 신설되는 스토킹 피해자 지원예산에서는 스토킹 예방 홍보에 1억이 배정됐다. 편차는 있지만 다른 여성 폭력 방지·홍보예산이 유지·신설된 데 비해 디지털 성범죄 인식개선 홍보 예산은 사라진 것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그 심각성이 알려지며 처벌을 강화하는 기조 속에서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성폭력처벌법의 통신매체 이용 음란죄로 입건된 피의자 수는 2017년 1324명에서 2020년 2300명으로 3년 새 74% 늘었다. 2021년 피의자 수는 전년보다 117% 증가한 4991명을 기록했다.
해당 예산 삭감은 정부 기조와도 어긋난다. 윤석열 정부는 국정과제에서 권력형 성범죄, 디지털 성범죄, 가정폭력, 교제폭력, 스토킹범죄를 5대 폭력으로 규정하고 국가가 피해자를 보호‧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8월 말 디지털 성범죄인 ‘제2의 엔(n)번방’ 사건이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지자 곽승용 국민의힘 부대변인은 논평을 내어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는 모든 형태의 디지털 성범죄 사건은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했다. 그에 앞서 김현숙 여가부 장관이 지난 6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를 찾았을 때 여가부는 “디지털 성범죄가 중대한 범죄라는 경각심을 높여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인식 개선과 예방교육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했다.
송주아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은 ‘2023년도 여성가족부 예산안 검토 보고서’에서 여가부가 디지털 성범죄 인식개선 홍보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것에 우려 의견을 냈다. 송 위원은 “성범죄 예방 및 홍보, 성폭력·가정폭력 관련 홍보 예산도 별도 사업으로 수행 중이고, 2023년 예산에 처음 반영되는 스토킹 범죄 관련 홍보 예산도 별도로 반영된 점을 고려하면 디지털 성범죄 홍보 예산이 별도로 반영되지 않아 우려되는 면이 있다”고 지적했다. 송 위원은 “디지털 성범죄는 ‘사이버 성범죄’, ‘온라인 성폭력’ 및 ‘디지털 성폭력’이나, 특정 행위를 일컫는 ‘불법촬영’ 등과 혼용하는 등 비교적 최근에 새로 등장한 개념으로 그 개념이 아직 명확하게 정립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디지털 성범죄가 무엇인지 알릴 필요가 있고, 불법촬영 유포 행위는 신상정보가 공개되는 중대한 범죄이며, 불법촬영물은 단순한 촬영물이 아닌 피해자가 분명히 존재하는 중대한 범죄 영상이라는 인식개선은 지속될 필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송 위원은 제안했다.
여가부는 별도의 디지털 성범죄 인식개선 홍보 예산은 배정하지 않고, 대변인실 등에서 홍보 예산 등을 끌어와 쓴다는 입장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올해 제작하고 있는 디지털 성범죄 예방 관련 홍보 영상을 내년 홍보에 활용할 계획”이라며 “내년 디지털 성범죄 예방 등 관련 홍보는 성희롱·성폭력 예방 홍보 예산 및 대변인실 홍보 예산 등을 써서 집행할 것”이라고 했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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