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받는 정대일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실장이 지난 7월29일 서울경찰청 앞에서 경찰의 압수수색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유튜브 갈무리
북한 주체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정대일 통일시대연구원 연구실장이 경찰에 9일 체포됐다. 정 실장은 “학문의 자유 억압”이라며 묵비권을 행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경찰청 안보수사과는 이날 오전 정 실장을 경기 수원 자택에서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 실장은 북한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등을 소지해 국가보안법 7조(찬양·고무)를 위반한 혐의를 받는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여러 차례 출석 요구를 했지만 응하지 않아 법원에서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연행했다”며 “<세기와 더불어> 뿐만 아니라 다수의 이적표현물을 소지한 혐의”라고 했다. 김 실장은 체포 후 에스엔에스(SNS)에 “전면 묵비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신앙의 자유, 사상 양심의 자유 억압하는 국가보안법 전면 폐지하라”라고 적었다.
서울경찰청은 지난 7월29일 정 실장의 집과 통일시대연구원 사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압수품목에는 정 실장이 보관하고 있던 <세기와 더불어> 국내 출간본과 컴퓨터, 휴대전화, 연구자료 등이 포함됐다. 정 실장은 압수수색 당시 “연구자가 연구자료를 모으는 것은 당연하다”며 경찰 수사가 학문과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반발했다.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도서출판 민족사랑방 제공.
앞서 도서출판 민족사랑방이 지난해 4월 <세기와 더불어>를 출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논란이 일었다. 2011년 대법원이 <세기와 더불어>를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논란 당시 논평에서 “김일성 우상화의 실체를 깨닫게 해줄 마중물이 될 수 있다. 대한민국 국민의식과 체제의 우월성을 믿고 국민에게 판단을 맡기자”며 학문·표현의 자유 차원에서 접근하자는 제안을 했다. 대법원도 올해 1월 <세기와 더불어> 판매·배포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나 서울경찰청은 <세기와 더불어>가 형사재판에서는 일관되게 이적표현물로 인정되고 있다며 정 실장에게 관련 혐의를 적용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9월15일 국가보안법 7조에 대한 공개변론을 여는 등 해당 조항의 위헌 여부를 심리하고 있다. 헌재는 해당 조항에 대한 7차례 헌법재판에서 모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우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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