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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안전책임자에 ‘중대재해’ 떠넘긴 원청 대표들, 법정에 선다

등록 2022-11-08 18:15수정 2022-11-08 21:13

중대재해법 9개월…검찰 기소 살펴보니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9개월여 지난 8일까지 검찰이 업체 대표이사를 재판에 넘긴 사례는 모두 4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중대재해법을 무력화하기 위한 경영계 요구가 빗발치는 가운데, 법 규정의 모호성을 메우기 위한 적극적인 수사·기소가 요구된다는 전문가 의견이 나온다. 검찰 역시 판례 축적을 위해 원칙적으로 정식 재판을 청구하는 등 관련 수사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 ‘방패막이’ 내세웠지만

그간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검찰이 기소한 4건 가운데 3건은 하청업체 노동자 사망 사건, 1건은 직업성 질병 사건이다. 이 중 시에스오(CSO·안전보건최고책임자)가 아닌 원청 대표이사를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기소한 선박수리업체 삼강이앤씨 사건은 업계 이목을 끌었다.

이 회사는 지난 1월27일 중대재해법이 시행되자 시에스오를 선임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달인 2월 경남 고성군의 한 선박 수리공사현장에서 삼강이앤씨 하청노동자가 10m 높이 통로에서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삼강이앤씨는 “책임자는 시에스오”라며 대표의 책임을 피해 가려 했다. 그러나 창원지검 통영지청은 “대표가 안전보건 확보에 대한 실질적·최종적 결정권을 행사했다”며 지난 3일 시에스오가 아닌 대표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앞서 노동계 일각에서는 기업이 시에스오를 선임해 대표의 책임을 회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데, 이에 따라 시에스오를 방패막이로 삼을 수 있단 염려였다. 노동 사건 경험이 많은 권영국 변호사는 “고용노동부나 검찰 해설서에도 안전책임자가 실제 권한이나 책임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돼 있다. 실질적인 권한 여부에 따라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 사내하청노동자 사망·직업성 질병 사건도 기소

한국제강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가 추락사한 사건에서 원청 대표에게 책임을 물은 사건도 이목을 끌었다. 지난 3월 경남 함안군 소재 한국제강 공장에서 사내하청 노동자가 크레인에서 떨어진 1.2t 방열판에 부딪혀 숨졌다. 숨진 노동자가 속했던 하청업체는 상시노동자가 4명에 불과한 소규모 업체로, 8년째 원청 사업장에 상주하고 있었다. 원청은 안전관리책임은 하청업체에 있다며 책임을 피하려 했지만, 검찰은 원청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검찰 관계자는 “원청 사업장에 상주한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 사망과 관련해 원청 대표이사를 기소한 첫 번째 사례다. 사내 상주 협력업체 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안전관리가 충실하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중대재해법 1호 기소’ 사건인 에어컨 부품업체 두성산업과 공사현장 하청노동자 사망사고를 일으킨 시행사 엘디에스(LDS)산업개발도 모두 업체 대표가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두성산업 대표는 유해물질을 사용하는 사업장임에도 국소배기장치 설치 등 별다른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노동자 16명에게 직업성 질병에 걸리게 한 혐의로 지난 6월 기소됐다. 엘디에스산업개발 대표도 추락 위험이 있는 사업장을 운영하면서 안전확보의무를 다하지 않아 하청 노동자를 추락사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최상위 의사결정권자에게 중대재해 책임을 묻는다는 중대재해법 취지에 맞는 기소로 보인다”고 했다.

■ 판례 축적 위해 ‘적극적 기소’ 필요

노동계에서는 검찰의 사건 처리가 여전히 더디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대재해 사건은 특별사법경찰관인 노동부 근로감독관이 수사 뒤 송치하면 검찰이 기소하는 구조다. 8일 기준 노동부는 검찰에 27건을 송치했고, 검찰은 이 중 4건을 불구속 기소하고 1건을 불기소 처분했다. 지난 6월 송치된 ‘중대재해법 적용 1호’ 사건인 삼표산업 채석장 붕괴사고에 대해서도 아직 검찰의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 권영국 변호사는 “보강수사 등을 이유로 (기간이) 길어지고 있다곤 해도 지나치게 속도가 늦다”고 했다.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법인 만큼 판례를 쌓기 위해서라도 보다 적극적인 기소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권오성 성신여대 교수(지식산업법)는 “해석이 어려운 법이어서 더 많은 판례가 쌓일 필요가 있다. 기소해서 판결이 나와야 이 법의 명확성이 제고되므로 더 적극적으로 기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을 엄정히 적용하고 적극적으로 수사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 공감한다. 법 규정의 모호성을 극복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정식 재판을 청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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