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행동 회원과 시민들이 5일 오후 서울 자하철 시청역 앞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촛불집회에서 촛불을 들고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이태원 참사 당일 경찰 지휘부 행적 복구에 수사 초점을 맞추는 등 일주일이 다 되도록 경찰 내부 단계를 맴돌고 있다. 수사 초반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직무유기 등 형사처벌 가능성만을 따지는 경찰 수사로는 행정안전부와 대통령실을 포함한 재난대응 컨트롤타워 오작동 전반을 다루는 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나온다. ‘행정 참사’ 성격이 분명해진 만큼 8년 전 세월호 참사 이후 정비됐던 정부 재난대응 시스템 재점검과 개선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국민의힘은 여전히 “수사가 먼저”라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경찰청 특수본(본부장 손제한 경무관)은 6일 총경급 간부와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 1개 팀을 추가 투입하는 등 수사팀 및 공보팀을 보강했다. 지난 1일 윤희근 경찰청장 지시로 꾸려진 특수본은 ‘셀프 수사’ 논란 속에 경찰청 특별감찰팀으로부터 넘겨받은 윤희근 청장,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 각급 상황실 근무자 등의 참사 당일 보고·지시 내용을 시간대별로 복구하는 한편, 직무를 제대로 수행했는지, 근무지 이탈은 없었는지 등을 따져보고 있다.
특수본 수사는 장기화가 불가피하다. 희생자만 156명에 이르는 초대형 참사인 만큼 수사 대상자와 관련 자료가 방대하기 때문이다. 총체적 원인을 규명하는 수단으로 수사의 한계 역시 명확하다. 업무상 과실치사, 직무유기 등 형사책임을 따지기 때문에 인과관계 입증 기준이 엄격한 탓이다. 부실 대응을 했더라도 형사처벌이 애매하거나 처벌 규정 자체가 없으면 수사 대상에서 빠지고, 시스템 점검 및 개선에 필수적인 정부 내 기록·자료·진술 등은 비공개되기 일쑤다. 나중에 축소·은폐 논란이 불거지며 재수사·재조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대형참사 수사 경험이 많은 검찰 출신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 수사와 비교해보면 현재까지 나온 정보를 토대로 경찰 쪽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은 사전 경비계획 부재, 112 신고 뒤 늑장 대응한 용산경찰서와 서울경찰청 책임 소재를 가리는 정도로 보인다. 결과적으로 국가 재난 상황에서 행안부와 대통령실 등 컨트롤타워 작동의 시시비비를 수사로 가리기는 어려운 셈”이라고 했다. 국민 안전과 직결되지만 수사로 규명하거나 채울 수 없는 영역은 국회 국정조사를 통해 원인과 책임 소재를 가리고 제도 개선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과거 삼풍백화점 붕괴(1995년), 세월호 침몰(2014년), 가습기살균제 사건(2016년) 등 막을 수 있었던 초대형 사회적 재난이 있을 때마다 국회 국정조사가 실시된 이유다.
더불어민주당 박지현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청년 당원들이 6일 국회 정문 앞에서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은 그러나 “지금 국정조사를 하게 되면 수사에 방해만 될 뿐이다. 수사가 미진하고 국민적 의혹이 남을 때 논의하는 것이 순서”라며 국정조사는 우선순위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반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은 오는 10일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 본회의에 보고한다는 방침이다. 국정조사는 국회 재적의원 4분의 1 이상 요구로 가능하다. 다만 여당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여야 합의로 추진된다.
수사와 국정조사 동시 진행은 시너지를 내기도 한다. 세월호 참사, 국정농단 사건이 그렇다. 세월호 참사 때는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이 유족과 야당, 시민사회의 국정조사 요구를 꺼리다 결국 참사 발생 50일 가까이 지난 2014년 6월2일부터 90일간 국정조사를 진행했다. 정부·여당의 비협조 속에 결과보고서 채택을 못 하고 끝났지만, 해경 등이 기관보고를 통해 제출한 녹취록 등으로 우왕좌왕하던 청와대 국가안보실(위기관리센터)의 부실 대응 실상, 박근혜씨의 7시간 행적 논란 등을 공론화하는 성과를 거뒀다.
국정조사가 정쟁으로 흐르다 성과 없이 끝나거나, 수사와 중복되며 효율성을 떨어뜨리는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대통령제 국가에서 의회의 행정부 감독 수단인 국정조사와 수사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쟁과 중복 우려는 여야 합의를 통해 국정조사 목적과 범위를 구체화해 해결할 문제라는 것이다. 장승진 국민대 교수(정치학)는 “정치적 책임과 법적 책임은 다르다. 경찰 수사가 끝날 때까지 국회가 기다려야 할 이유는 없다. 참사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 나타난 정부·행정의 미비한 점들을 따지는 것은 형사책임과는 별개로 국회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했다. 강우진 경북대 교수(정치학)는 “국회는 주권자한테 위임받은 자기 역할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수사 결과가 단기간에 나오기 힘든 상황에서 무책임하게 손을 놓고 있을 수 없다. 특정 정당의 문제, 당파적 차원을 떠나 국가적 공공 차원의 문제로 봐야 한다. 국정조사를 수용해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한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적 역할이 필요하다”고 했다.
장나래 신민정 채윤태 남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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