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압사 참사가 일어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인근 골목의 모습. 연합뉴스
지난 29일 이태원 참사 당시 이태원 일대에 투입된 경찰 인력 137명 가운데 50여명은 마약을 단속하던 ‘사복 형사’들이었다. 참사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한 명의 인력이 시급했던 상황이었지만, 이태원 파출소에 대기하고 있었던 이들 단속반 형사들은 참사 20여분 뒤에야 사고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의 ‘늦장 대응’ 정황이 날마다 추가로 드러나고 있다.
6일 서울경찰청이 더불어민주당 이태원 참사 대책본부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용산·동작·광진서 등 서울청 소속 형사 52명은 지난달 29일 저녁 8시부터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서 ‘마약류 범죄 단속ᆞ예방을 위한 특별형사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들은 이태원 중심가인 이태원로와 세계음식문화거리 주변 주점 등을 순찰한 뒤, 9시48분부터 용산서 형사과장 등과 함께 이태원파출소에서 대기 중이었다. 이태원 파출소는 참사 현장에서 이태원로 건너편에 위치해 있다. 직선 거리로 100m 남짓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은 사고가 우려될 만큼의 인파가 운집하고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예방 조처에 나서지 않았다. 9시33분께 용산서 형사과장이 경찰 승합차 한 대를 해밀톤호텔 주변으로 보내 “사이렌과 함께 인파 분산을 유도”한 게 전부였다. 일부 형사들이 이태원파출소 순찰팀장의 지원 요청을 받고 현장으로 출동한 것은 사고 발생 22분이 지난 10시37분이었다. 용산서 형사과장은 10시41분에야 나머지 형사들을 사고 현장으로 재배치했고, 10시 50분부터 심폐소생술(CPR)·구조 통로 확보 등 구조활동을 시작했다.
서울청은 형사들이 사고 발생 직후 투입되지 않은 데 대해 “당시 형사들은 마약류 범죄 예방 등의 목적으로 배치돼 있었다. (이태원파출소의) 지원 요청을 받은 후 출동하여 사고 사실을 인지했다”고 밝혔다.
인파 대피를 유도하고 교통을 차단할 기동대 역시 사고 1시간25분이 지나서야 배치되기 시작했다. 용산서와 서울청은 각각 11시17분과 11시33분 기동대 출동을 지시했고, 11시40분부터 이튿날 오전 1시33분까지 약 2시간에 걸쳐 경찰기동대 13개 부대(총 659명)가 차례로 현장에 도착했다.
경찰의 인파 통제가 늦어져 사상자 수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행 차단과 생존자 대피가 사고 직후 이뤄지지 않으면서 구급대와 의료진 등의 현장 진입이 지연됐다는 것이다.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당국 관계자는 “심정지 4분 이내에 심폐소생술이 이뤄져야 뇌사 등을 막을 수 있지만, 현장 도착하고도 인파에 막혀 진입하지 못하는 구급차가 많았다. 구급차가 진입할 수 있을 만큼만 통행이 통제됐다면 환자 응급조처와 이송도 좀 더 수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천호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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