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근 경찰청장이 3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최근 시민단체 ‘사법정의바로세우기시민행동’이 이태원 참사 당시 캠핑장에서 잠들어 있었던 윤희근 경찰청장 등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하면서 이들이 형사처벌을 받게 될지가 쟁점이 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그동안 판례의 태도에 비춰봤을 때 직무유기에 따른 처벌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지만, 수사 초기인 만큼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직무유기란 공무원이 정당한 이유 없이 직무수행을 거부하거나 직무를 유기한 때 성립하는 범죄다. ‘직무를 유기한다’는 게 어느 정도여야 하는지가 쟁점인데, 대법원은 “직장의 무단이탈, 직무의 의식적인 포기 등과 같이 국가의 기능을 저해하고 국민에게 피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라고 엄격하게 해석해왔다. 즉 공무원이 업무를 게으르게 한 차원을 넘어 사실상 업무를 포기한 수준이어야 직무유기죄로 볼 수 있다는 게 판례의 태도다.
이 때문에 대형사건이 벌어졌을 때 책임자 지위에 있는 공무원이 직무유기 혐의로 종종 기소됐지만 유죄 판결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세월호가 관할 해역에 들어온 것 자체를 몰랐던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 센터장 등이 재판에 넘겨졌을 때도 대법원은 직무유기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판결했다. 센터 요원들이 불성실하게 직무수행을 한 건 맞지만, 직무유기죄 성립 요건인 ‘의식적인 직무 포기’ 수준은 아니라는 판단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 심각성을 축소 보고해 환란을 초래한 혐의(직무유기)로 기소된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김인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데에도 정책 실패를 형사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의 엄격한 태도가 작용했다. 한 부장판사는 “업무 범위가 넓은 최상급 지휘책임자에게 직무유기가 인정된 사례가 별로 없다. 징계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아직 수사 초기 단계라 직무유기 적용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다는 분석도 있다. 한 형사부 판사는 “직무유기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엄격한 것은 맞지만, 아직 수사로 밝혀진 부분이 많지 않아 그간의 판례에 기초해 ‘(직무유기) 맞다, 아니다’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사회적 이목이 큰 사건인 만큼 새로운 판단이 나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형사책임만이 이 사태에 대한 책임의 전부가 아니므로 여기에만 매몰돼선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양홍석 변호사는 “형사처벌의 범위는 생각보다 폭넓지 않을 수 있다. 왜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는지, 시스템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으로 (징계 여부를) 논의한 뒤 묵과할 수 없을 정도의 책임이라고 하면 형사책임을 따져볼 수 있는 것”이라며 “형사책임 여부만을 (책임 유무의) 기준으로 접근하는 건 본질을 호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신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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