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4일 교도관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자살을 기도한 여성 재소자가 입원해 있는 경기 안양의 한 병원을 방문해 피해자 가족을 위로한 뒤 중환자실을 나서며 의료진과 악수하고 있다. 안양/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여성 재소자 인권보고서 (상) 감시탑 없는 성폭력 지대
교도관한테 성추행을 당한 여성 재소자의 자살 기도 사건은 그동안 철저히 ‘갇혀 있던’ 교정시설 안 성폭력 실태를 한꺼풀 벗겨냈다. 여성 재소자들을 짓누르는 건 성폭력뿐만이 아니다. 높은 담장 안에 가려진 여성 재소자들의 인권 실태를 세차례에 걸쳐 들여다본다.
“동료 4명 서울서 당했다”
군산 이감자 본사에 증언 구치소 안에서 벌어지는 상습적인 성폭력을 담은 편지를 밖으로 전한 박아무개(가명·군산교도소 수감중)씨는 지난 2일 면회를 간 <한겨레> 취재진에게 “서울구치소 수감 중 교도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성 재소자는 내가 알거나 들은 사람만 4명이었다”고 폭로했다. 박씨는 “지난해 어느 날 한 30대 여성 재소자가 울먹이며 ‘분류심사 중에 교도관이 가슴을 만졌으나 얼떨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가족에게도 차마 털어놓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씨는 또 “며칠 뒤 내가 있던 방에 32살 가량의 여성이 새로 들어왔는데, 분류심사를 받고 오더니 ‘교도관이 손을 잡고 안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 여성이 ‘아저씨!’ 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교도관이 ‘조용히 하라’며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씨는 서울구치소에서 군산교도소로 옮겨지던 지난해 12월26일에도 30~40대 여성 재소자 두 명으로부터 “분류심사 교도관한테 성추행당했다”는 고백을 들었다. 하지만 4명을 성추행한 사람이 한 사람인지는 확실치 않다. 서울구치소에서 얼마 전 출소한 고은미(가명)씨는 <한겨레> 취재진에게 “나도 교도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성추행 뒤 자살을 기도한 여성)와 친했다”는 고씨는 “서울구치소에서 교도관의 여성 재소자 성추행은 상습적이었다. 그렇지만 이를 알리겠다는 용기를 내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고 했다. 운명 걸린 분류심사
‘주임님’이 ‘주인님’으로 구치소 안 성추행 환경에 대해선 최근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출소한 여성들도 엇비슷한 증언과 진단을 내놓았다. 특히 분류심사실 안에선 분류심사 교도관과 여성 재소자의 관계는 한마디로 ‘주종관계’라고 표현했다. 서울구치소를 경험한 김아무개(41)씨는 “그 사람(분류심사 교도관) 말 한마디에 내 ‘운명’이 왔다갔다 하는데, 손 잡고 몸 만진다고 해도 뿌리치기가 쉽겠느냐”며 “그 관계를 우스갯소리로 ‘주임님’이 ‘주인님’이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 지방 한 교도소에서 출소한 정아무개(37)씨도 “우리가 죄인인데 교도관이 성추행했다고 주장한들 누가 믿어주기나 하겠느냐. 때로 성폭력 사건이 교도관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으로 여겨질 때도 있어서 적지 않은 여성들이 당하고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한다”고 말했다. 이런 실상은 교정시설 안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의 감시·처벌을 어렵게 하는 것은 물론, 일상적인 성적 괴롭힘을 낳는 요인이다. 남자 교도관들이 “포승줄을 묶으며 끌어안듯 지나치게 몸을 밀착”하거나, “일부러 팔꿈치를 가슴에 닿게 하는” 일은 여성 재소자에겐 ‘숙명’처럼 받아들여 지고 있었다. 정씨는 “아파서 의무실에 갔는데, 의무실에 있던 직원이 청진기를 갖다 대며 슬쩍 가슴을 만졌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병실을 나섰고, 그 뒤엔 많이 아프지 않으면 의무실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성 교도관 부족
“우리 말 누가 믿나” 냉가슴 국가인권위원회가 2003년 여성 재소자 501명을 대상으로 벌인 ‘구금시설내 여성수용자 인권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1.7%(8명)가 “있다”고 대답했다. 이들 중 2명이 성폭행 가해자로 남자 교도관을 지목했고, 1명은 동료 수용자에게 당했다고 응답했다. 성폭행 여부에 대한 답변을 거부한 ‘무응답’도 8.3%(42명)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구금시설 곳곳에서 성폭력적 문화가 나타나는 가장 큰 원인은 여성 교도관 수의 절대적 부족이라고 말한다. 현재 전체 교도관 1만3천여명 중에 여성 교도관은 1천여명에 불과하다. 진수명 인권위 인권침해조사관은 “법무부가 앞으로 3년 동안 교도관을 1천명 이상 늘리겠다고 했는데, 이 인원 모두를 여성으로 받아도 될 정도”라며 “여성이 교도소장이나 보안과장 등 고위직이 되면 분위기가 많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산/이정애, 김기성 조기원 기자 hongbyul@hani.co.kr
군산 이감자 본사에 증언 구치소 안에서 벌어지는 상습적인 성폭력을 담은 편지를 밖으로 전한 박아무개(가명·군산교도소 수감중)씨는 지난 2일 면회를 간 <한겨레> 취재진에게 “서울구치소 수감 중 교도관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성 재소자는 내가 알거나 들은 사람만 4명이었다”고 폭로했다. 박씨는 “지난해 어느 날 한 30대 여성 재소자가 울먹이며 ‘분류심사 중에 교도관이 가슴을 만졌으나 얼떨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가족에게도 차마 털어놓지 못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씨는 또 “며칠 뒤 내가 있던 방에 32살 가량의 여성이 새로 들어왔는데, 분류심사를 받고 오더니 ‘교도관이 손을 잡고 안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 여성이 ‘아저씨!’ 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교도관이 ‘조용히 하라’며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박씨는 서울구치소에서 군산교도소로 옮겨지던 지난해 12월26일에도 30~40대 여성 재소자 두 명으로부터 “분류심사 교도관한테 성추행당했다”는 고백을 들었다. 하지만 4명을 성추행한 사람이 한 사람인지는 확실치 않다. 서울구치소에서 얼마 전 출소한 고은미(가명)씨는 <한겨레> 취재진에게 “나도 교도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성추행 뒤 자살을 기도한 여성)와 친했다”는 고씨는 “서울구치소에서 교도관의 여성 재소자 성추행은 상습적이었다. 그렇지만 이를 알리겠다는 용기를 내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고 했다. 운명 걸린 분류심사
‘주임님’이 ‘주인님’으로 구치소 안 성추행 환경에 대해선 최근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출소한 여성들도 엇비슷한 증언과 진단을 내놓았다. 특히 분류심사실 안에선 분류심사 교도관과 여성 재소자의 관계는 한마디로 ‘주종관계’라고 표현했다. 서울구치소를 경험한 김아무개(41)씨는 “그 사람(분류심사 교도관) 말 한마디에 내 ‘운명’이 왔다갔다 하는데, 손 잡고 몸 만진다고 해도 뿌리치기가 쉽겠느냐”며 “그 관계를 우스갯소리로 ‘주임님’이 ‘주인님’이 된다고 한다”고 말했다.
얼마 전 지방 한 교도소에서 출소한 정아무개(37)씨도 “우리가 죄인인데 교도관이 성추행했다고 주장한들 누가 믿어주기나 하겠느냐. 때로 성폭력 사건이 교도관을 협박해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으로 여겨질 때도 있어서 적지 않은 여성들이 당하고도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한다”고 말했다. 이런 실상은 교정시설 안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의 감시·처벌을 어렵게 하는 것은 물론, 일상적인 성적 괴롭힘을 낳는 요인이다. 남자 교도관들이 “포승줄을 묶으며 끌어안듯 지나치게 몸을 밀착”하거나, “일부러 팔꿈치를 가슴에 닿게 하는” 일은 여성 재소자에겐 ‘숙명’처럼 받아들여 지고 있었다. 정씨는 “아파서 의무실에 갔는데, 의무실에 있던 직원이 청진기를 갖다 대며 슬쩍 가슴을 만졌지만 아무 말도 못하고 병실을 나섰고, 그 뒤엔 많이 아프지 않으면 의무실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여성 교도관 부족
“우리 말 누가 믿나” 냉가슴 국가인권위원회가 2003년 여성 재소자 501명을 대상으로 벌인 ‘구금시설내 여성수용자 인권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성폭행을 당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1.7%(8명)가 “있다”고 대답했다. 이들 중 2명이 성폭행 가해자로 남자 교도관을 지목했고, 1명은 동료 수용자에게 당했다고 응답했다. 성폭행 여부에 대한 답변을 거부한 ‘무응답’도 8.3%(42명)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구금시설 곳곳에서 성폭력적 문화가 나타나는 가장 큰 원인은 여성 교도관 수의 절대적 부족이라고 말한다. 현재 전체 교도관 1만3천여명 중에 여성 교도관은 1천여명에 불과하다. 진수명 인권위 인권침해조사관은 “법무부가 앞으로 3년 동안 교도관을 1천명 이상 늘리겠다고 했는데, 이 인원 모두를 여성으로 받아도 될 정도”라며 “여성이 교도소장이나 보안과장 등 고위직이 되면 분위기가 많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 군산/이정애, 김기성 조기원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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