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현장 근처인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1번 출구 들머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31일 밤 추모객들이 희생자를 추모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지난 2일 직장인 오승수(63)씨는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한 뉴스에 눈길이 멈췄다. 이태원 참사에서 딸 박율리아나(25)를 잃은 고려인 3세 박아르투르(65)의 사연이었다. 운구비용이 모자라 딸의 주검을 고향인 러시아로 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였다. 오씨는 자신과 동년배인 박아르투르의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200만원을 기부하기로 했다. <한겨레>는 3일 오씨에게 전화를 걸어 그가 기부를 결심하게 된 이야기를 들었다.
―처음에 어떻게 소식을 알게 됐나.
“어제 퇴근하면서 휴대전화로 인터넷 뉴스를 봤다. 박아르투르의 사연이 실린 기사가 있더라. 돈이 없어서 운구를 못 한다는 게 무척 마음 아팠다. 기사에서 500만원이 필요하다고 해서, 고려인 지원 시민단체 ‘너머인천고려인문화원’에 연락해 500만원을 기부하고 싶다고 했다.”
―이후 과정은.
“다행히 어젯밤, 여기저기 돈을 빌려 운구비용을 마련했다는 소식을 단체를 통해 들었다. 비용이 마련돼 운구를 위한 기부는 하지 않아도 된다고 연락받았지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어 200만원을 기부하겠다고 말했다.”
―적지 않은 금액인데.
“나는 아주 평범한 사람이다. 부자가 아니다. 40년간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하고 지금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아들·딸은 결혼해서 나가 살고 배우자와 둘이 산다. 직장에서 버는 돈이 있으니 기부를 할 수 있겠다 싶었다.”
3일 오후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려인 박율리아나 씨의 빈소가 마련된 인천 연수구 연수동 함박종합사회복지관에서 박씨가 일했던 러시아 아카데미 학생들과 동료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사연을 읽고 어떤 마음이었나.
“속사정은 잘 모르지만, 생계를 위해 한국에 왔던 것 아니겠나. 잘 살아 보려고 왔는데 다 키워놓은 딸을 잃은 심정이 어땠겠나…. 딸도 한국에 애정이 많았다고 하던데, 안타까웠다.”
―이태원 참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왜 안전에 있어서는 늘 사후약방문이 되는가. 기사를 보니, 당시 많은 신고가 들어갔더라. 내가 만약 신고받은 사람이라면, 내가 출동시키는 권한이 있는 사람이라면, 즉각 조처했을 거다. 그 상황을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답답하다.”
―처음에 인터뷰를 거절했다고 들었다.
“좋은 뜻으로 하는 일인데 이리저리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이번 사연을 언론을 보고 안 것처럼, 이번 사건을 안타까워하고 도움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면 유가족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박아르투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무슨 말을 해도 위로가 안 될 거다.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다만, 기운 차리고 건강 잃지 않기를 부탁한다고 말하고 싶다. 희생자분은 편안하게 고국으로 돌아가서 영면하길 바란다.”
박아르투르를 지원하는 손정진 너머인천고려인문화원 대표는 “운구비용은 약 1200만원이었고 어젯밤(2일)에 아슬아슬하게 비용이 마련됐다. 주한러시아대사관이 빌려준 돈에 박아르투르의 지인으로부터 여기저기 빌린 돈을 합쳤다. 빌린 돈은 정부로부터 위로금을 받으면 갚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사가 나가고 오씨를 비롯한 많은 시민분이 도움을 주셨다. 고려인 커뮤니티도 마찬가지다. 박아르투르는 ‘운구비용을 마련했으니 기부는 괜찮다’고 하고 있다. 시민들에게 미안해하고 고마워한다”고 전했다.
박아르투르는 지난 29일 이태원 참사에서 딸을 잃었다. 그는 안성 요양원에서 일하고, 딸은 유치원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몸이 아픈 배우자는 러시아에 있다. 딸의 주검은 4일 오후 5시께 동해항국제여객터미널에서 블라디보스토크행 국제여객선을 통해 러시아로 운구될 예정이다.
이주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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