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당시 인근에서 소리치며 시민의 통행을 정리하는 김백겸(31) 경사의 모습. 유튜브 채널 ‘니꼬라지티브이(TV)’ 갈무리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지 못해 유족분들에게 정말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지난 31일 유튜브 채널 ‘니꼬라지티브이(TV)’에는 ‘이태원 압사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 혼자 고군분투한 영웅 경찰관’이라는 제목의
동영상이 올라왔다. 영상은 하루 만에 조회수를 17만회 넘겼고, 댓글이 730여개 달렸다.
“사람이 죽고 있어요!” “제발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던 해당 영상 속 경찰관은 서울 용산경찰서 이태원파출소 소속 김백겸(31) 경사. 1일 <한겨레>는 참사 당시 상황을 전해 듣기 위해 20분 동안 전화로 김 경사와 이야기를 나눴다. 자칫 자신이 ‘영웅’으로 비칠까 망설였던 김 경사는 유가족들에게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며 인터뷰에 응했다. 아래는 김 경사와 나눈 일문일답.
―당시 어떤 신고 받고 현장에 나가게 됐나
“시간 순서대로 말하자면, 참사 사고가 발생하기 이전이었던 지난달 29일 밤 10시에서 10시10분 사이 나와 같은 조를 이루고 있는 후배 경찰 2명과 단순 시비 신고를 받고 출동을 나갔다. 압사와 관련된 신고는 전혀 아니었다. ‘행인과 시비가 붙었다’라는 신고를 받았는데, 그 신고 발생지가 하필이면 마침 사고 발생지 인근이었다.”
―위치가 정확히 어디였나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 근처로 신고가 떨어졌었다. 우리가 현장에 출동하고 있던 도중 대로변에서 사고 발생지인 해밀톤호텔 골목길로 들어가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카메라를 들고 사고 발생지 쪽으로 촬영하고 있었다. 계속 비명이 들렸고, 사람들이 웅성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때 ‘아 무슨 일이 발생했구나’ 생각했고, 많은 사람이 웅성대고 있었기 때문에 큰일이 발생한 것 같아 나와 후배 경찰 2명이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갔다. 들어가니 말 그대로 진짜 끔찍한 현장을 목격했다. 인파에 깔린 사람들이 손을 뻗으면서 ‘살려달라’며 외쳤고, 이미 다른 시민들이 구조 활동을 하고 계셨다.”
김 경사는 당시 사고 현장을 설명하다 감정이 북받친 듯 말을 한동안 잇지 못했다.
―당시 구조 활동은 어떻게 진행됐나
“이미 구조 활동하고 계시던 시민분들을 따라 ‘구해달라’고 외치는 시민들의 손을 붙잡고 끄집어내려 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인원이 깔려 있어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무전으로 지원 요청을 했고, 이후 도착한 다른 경찰관들과 구조 활동을 했다. 하지만 이미 해밀톤 호텔 뒷골목 쪽에서 사람들이 계속 아래로 밀려오다 보니까 (중간 지점) 사고 현장에 계속 압력이 가해져서 사람을 빼내는 데 더욱 힘이 들었다. 그래서 나와 같이 있던 다른 경찰과 해밀톤 호텔 뒤쪽 골목길로 달려갔다.”
―그게 온라인에 공유된 영상 속 장면이었나
“그렇다. 일단은 그 뒷골목에 있는 인원들을 먼저 빼내야 중간 지점에 가해지는 압력이 덜해지고, 또 구조 활동을 앞뒤로 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영상 보면 알겠지만 ‘사람이 죽고 있어요’라고 브론즈 주점 난간에 올라가서 소리쳤던 거다. 시민들에게 ‘뒤로 이동해 달라’고 요청하기 위해서. 시민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영상 속) 사람들이 저희 (경찰) 말을 안 들었다고 하시는데, 많은 분이 요청하는 위치로 이동을 해주셨다. 그래서 빨리 사고 현장 뒤편에 구조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됐었고.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지체됐던 것 같다. 말 그대로 사고 현장의 끝과 끝에 계셨던 분들은 대부분 살아계셨지만 중간에 계셨던 분들은 대부분 이미 사망을 하셨던 건지 호흡을 안 하고 계셨다. 그럼에도 저와 함께 출동한 파출소 직원들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구조 활동을 했었고 현장에서 바로 심폐소생술(CPR)까지 시도했다.”
―영상 보면 시민, 소방대원들도 함께 구조 활동하는 모습이 나온다
“구조 활동을 계속하다 보니 힘이 너무 부치더라. 인근에 있던 남자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혹시 여기서 힘을 좀 쓸 수 있는 남성들이 나와서 구조 활동을 도와달라고 해서 하니까 수십 명이 달려오시더라. 그 분들을 4인 1조로 짜서 누워 계신 분들을 이동할 수 있도록 조치해달라고 하니까 모두 함께 구조를 도와주셨다. 정말 소방, 경찰, 시민 누구 할 것 없이 구조 활동에 응해 주셨는데…. 그렇게까지 했는데 진짜 많은 분이 돌아가셨잖나. 내가 판단을 조금 더 빨리했으면, 좀 더 다른 방안으로 조치를 잘했다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텐데 그걸 못한 게 너무 한스럽다.”
―사고 이후 마음은 좀 어떤가
“지금 누우면 자꾸 그때 돌아가셨던 분들이 저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서 너무 죄송하고, 무섭고 마음이 떨린다. 그때 내가 더 현명한 판단을 했었다면, 정말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자꾸 후회가 들더라. 아내가 내가 힘든 걸 알고는 옆에서 계속 다독여주고, 가족들도 계속 제가 다른 생각하지 못하게 전화를 해 주셔서 지금은 많이 안정된 상태다. 언론에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낸 건, 유족들에게 죄송한 마음을 이렇게나마 전달해 드리고 싶어서 결정했다. 그때 생각하면 유족분들께 면목이 없고 너무 죄송한 마음뿐이라서…. 죄송한 마음뿐이다. 꼭 말씀드리고 싶다.”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당시 절박하게 외칠 때 어떤 생각이 들었나
“말 그대로 당시 사람들에게 이동을 요청했을 때 사고 현장을 목격했던 상황이었고, 당시만 해도 깔렸던 많은 인파 중에 많은 수의 사람들이 살아 계셨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게 몇시 정도였나) 밤 10시40분에서 50분 정도였던 것 같다. 사고 중간 지점에서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분들이) 눈을 뜨고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도와달라’, ‘살려달라’ 소리치고 계셨기 때문에 빨리 그 사람들을 ‘꺼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야겠다’ 생각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방대원들도 구조 활동을 해야 하는데, 자꾸 뒤에 있는 인파들이 쌓여 있다 보니까. 그 공간을 확보하려는 마음뿐이었다. ‘빨리 환자들을 안전한 장소로 이동할 수 있게 그 장소를 만들어 내야겠다’ 딱 그 생각뿐이었다.”
―사고 이후 어떻게 지냈나
“하필 그날 처남이 핼러윈이라고 이태원 한번 보고 싶다고 해서 놀러 왔었다. 혹시나 했었다. 인파에서 시민들 구할 때도 혹시나 우리 처남이 사고 현장에 있었을까봐. 처남은 사고가 발생 전에 이미 집에 갔는데, ‘가족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그 순간 들더라. 지금 유족분들밖에 생각이 안 난다. ‘내가 우리 가족이 연락 안 됐을 때 이런 마음이었는데, 지금 유족들은 얼마나 속상할까’, ‘얼마나 하늘이 무너지는 마음이실까’ 그게 느껴지니까 ‘내가 힘들다’는 생각보다 ‘어떻게 하면 이분들 마음이 위로가 될까’ 그 생각뿐이다.”
―주변에서 아내, 직원 동료들이 어떤 말들을 해줬나
“‘넌 최선을 다했다. 네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그 이상으로 해냈다’라고 해주셨다. ‘그때 너로 인해 산 사람도 있지 않냐’라고 말씀도 하시는데…. 나한테는 큰 위로가 되지는 않는다. 나를 안아주는 사람이 있고, 다독여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위로는 받았지만, 지금은 유족들에게 정말 죄송한 마음뿐이다.”
박지영 기자
jyp@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