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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직장내 커밍아웃 왜 힘들까…“동료관계 상처 우려 가장 커”

등록 2022-10-28 18:33수정 2022-10-29 01:45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소수자 노동권 토론회
일터내 어려움 관련 성소수자 6명 집담회 내용 공개
지난 7월16일 오후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서울광장에서 참가자들이 대형 무지개 깃발을 들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지난 7월16일 오후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서울광장에서 참가자들이 대형 무지개 깃발을 들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해고되거나 업무상 불이익을 받을 거란 생각은 잘 안 해요. 그런데 왜 커밍아웃을 못할까를 생각해보면, 저를 드러냈을 때 사람들이 제 평소 행동을 다른 식으로 해석해버릴까 봐, 그러면 제가 너무 상처받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40대 레즈비언 노동자 ㄱ씨)
많은 성소수자 노동자들이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로 직장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하는 가운데, 성소수자 친화적인 일터 형성에 직장 동료들의 지지가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는 27일 저녁 서울 중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교육장에서 열린 ‘일터 내 괴롭힘과 성소수자 노동권’ 토론회에서 성소수자 노동자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공개했다. 이 단체는 지난 5월28일 30∼40대 성소수자 노동자 6명과 집담회를 진행했다.

집담회 참여자들은 자신의 일터가 성소수자에게 친화적이지 않은 공간으로 인식했다. 비영리 민간단체에서 일하는 30대 트랜스젠더 여성 ㄴ씨는 “(직장 동료에게) ‘게이랑 트랜스젠더랑 뭐가 달라?’라는 질문을 받을 정도로 (일터가) 성소수자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성소수자 노동자들은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여러 어려움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모두가 시스젠더(신체 성별로 자신을 정체화한 사람) 이성애자라는 것을 전제로 직장 내 대화가 이뤄진다거나, 성소수자를 가리킬 때 경멸하는 단어를 쓰는 일 등이다.

“학생들이 어떤 학생을 ‘쟤 게이다’ 이렇게 놀리는 경우도 있어요. (물어보면) 평소에 사회에서 많이 쓰니까 그렇게 쓴대요. ‘담임 교사가 게이인 걸 알면 그 단어를 누군가를 놀리는 말로 쓸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교사로 일하는 30대 게이 ㄷ씨)

“연애나 결혼 얘기가 나오면 남자니까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니까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당연한 전제로 깔고 (직장 동료들이) ‘여자친구 있냐’ 이렇게 저한테도 물어와요. 그런 것들이 답답했죠.” (트랜스젠더 여성 ㄴ씨)

타인에 의해 성적지향과 성별 정체성이 강제로 알려지는 ‘아우팅’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야 했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30대 게이 노동자 ㄹ씨는 “사람들한테 제가 여자친구를 안 만난 기간이 어느 정도 된다고 말한 지도 꽤 됐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만일 직장에 오래 있게 되면 다음부턴 어떻게 거짓말을 해야 할까 생각한다”며 “‘쟤는 몇 년 동안 여자 얘기할 때 끼지도 않고 좀 이상하다’ 이런 말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항상 한다”고 덧붙였다.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난 7월16일 오후 참가자들이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시청 인근 을지로에서 퀴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지난 7월16일 오후 참가자들이 장대비가 내리는 가운데 서울시청 인근 을지로에서 퀴어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집담회 참여자들은 직장에서 커밍아웃을 하면 동료들과 불편해지거나 동료들의 뒷담화를 견디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보험업계에서 일하는 30대 레즈비언 노동자 ㅁ씨는 “(커밍아웃을 하면) 회사 내 소문이 퍼질 테고, 상사가 면담을 통해 제 정체성을 물을 것 같다. 그때 (상사가) 제 앞에서 별말은 안 하겠지만, (그 뒤로) 무언의 불편함이 감지돼 제가 못 견디고 (회사를) 그만둘 것 같다”고 밝혔다. 레즈비언 노동자 ㄱ씨도 “지쳤을 때 서로 기대 토닥이던 일, 너무 억울하고 힘든 날 위로의 포옹을 해준 일처럼 회사 안에서 동료 간에 서로 정을 주고받은 시간이 왜곡되진 않을까 생각하면 답답하다”고 말했다.

집담회를 진행한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의 이호림 상임활동가는 “참여자들이 일터에서 커밍아웃하지 못하는 이유가 일터에서의 차별 또는 불이익보다는 동료 관계에서 상처받지 않고 싶다는 욕구에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이는 성소수자 친화적인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성소수자와 평등하게 관계를 맺을 준비가 되어 있는 직장 동료의 존재가 중요함을 시사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집담회 참여자 중 일부는 친하게 지내는 직장 동료 일부에게 커밍아웃을 했는데, 그 뒤로 그 동료들과 더 친밀하게 지내게 됐다고 밝혔다.

“신입 때 만난 분인데 (그 뒤로 계속) 친하게 지내고 있고, 현재 같은 팀에서 일해요. 당연히 이해해줄 거라 생각했고, 어려운 상황이 오면 그분이 (내 편에 서서) 서포트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커밍아웃을 했어요).” (대기업 디자이너로 일하는 30대 트랜스젠더 남성 ㅂ씨)

“뮤지컬 좋아하고 꾸미는 거 좋아하는 다른 교사에게 ‘너 게이라서 그런 거 아니냐’고 말한 동료 교사가 있었어요. 제가 게이라는 걸 알면, 그런 말 안 하겠지 해서 커밍아웃했어요. 그래서 잘 됐어요. 학교에서 힘들면 같이 있어 주겠다고, (그런 일 있으면) 말하라고.” (ㄷ씨)

이호림 상임활동가는 “성소수자들에게는 일터 내 지지 기반이 필요하다”며 “일터에서 성소수자 동료와 어떻게 관계를 형성해야 하는지 등 인식 개선을 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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