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정체성을 이유로 자신의 나라에서 형사처벌 등 박해를 받은 트랜스젠더는 한국 난민법에 따라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클립아트코리아
성 정체성을 이유로 자신의 나라에서 형사처벌 등 박해를 받은 트랜스젠더는 한국 난민법에 따라 난민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은 1심 판결을 깨고 트랜스젠더를 난민 인정 사유로 본 첫 법원 판결이다.
서울고법 행정1-2부(재판장 김종호)는 말레이시아인 트렌스젠더 ㄱ씨가 서울출입국·외국인 청장을 상대로 낸 난민불인정결정 취소소송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1심 판단을 깨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고 20일 밝혔다. ㄱ씨가 한국 난민법이 정한 난민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ㄱ씨는 생물학적 남성이지만 10살 무렵부터 여성으로서의 성 정체성이 형성됐다. 여성스러운 복장을 하거나 화장을 하는 등 여성으로서의 성 정체성을 표현하며 생활했다. 그러다 2014년 지인의 결혼식 축하파티에 참석했다가 ‘여성처럼 보이게 하고 그러한 옷을 입은 혐의’로 다른 무슬림 남성 16명과 함께 체포돼 법원으로부터 950링킷(한화 약 29만원) 벌금형과 7일간의 구금형을 선고받았다. ㄱ씨가 태어난 말레이시아는 모든 국민에게 적용되는 형법과 무슬림에게 추가로 적용되는 샤리아 형법을 통해 동성 간 성관계 등에 징역과 태형(채찍질), 벌금형 등의 형벌을 내린다.
이같은 박해를 피해 2015년 10월 말레이시아를 떠난 ㄱ씨는 2017년 7월 한국에서 난민신청을 했다. 하지만 출입국 당국과 1심 재판부는 모두 ㄱ씨의 난민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앞선 판단을 뒤집고 ㄱ씨가 한국의 난민법이 정한 난민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트랜스젠더라는 성 정체성은 그 사실이 외부로 드러날 경우 불이익을 당하기 쉬울 뿐 아니라 ㄱ씨의 국적국에서 보호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로, (한국 난민법이 규정한 난민의 정의 중)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 신분’에 해당한다”며 ㄱ씨가 난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ㄱ씨가 겪는 박해도 ‘충분한 근거 있는 공포’라고 봤다. 재판부는 “ㄱ씨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드러낸 것이 직접적인 이유가 되어 처벌을 받았고 그 법령은 지금도 계속 시행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자신이 처한 위협에 대해 국가에 보호를 요청할 처지도 명백히 아니고, 이는 부당한 사회적 제약 정도를 넘어서 신체 또는 자유에 대한 위협이나 인간의 본질적 존엄성에 대한 중대한 침해나 차별이 발생하는 경우로 유엔난민기구의 난민협약이 말하는 박해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소수자 인권을 옹호하는 시민사회 연대체인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는 이 판결을 계기로 점점 난민인정의 폭을 더 넓혀가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는 “난민 인정은 이번 사건처럼 형사판결문을 소지하는 등 박해에 대한 공식적인 증거를 가진 경우에 한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은데, 난민은 급히 피신하느라 증거를 가져오지 못하는 등 경우가 많다”며 “의심스러울 경우 신청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원칙을 적용하여 신청자의 입증책임을 낮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