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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기소율 0.1% ‘직권남용’ 남용시대…권력감시인가 정치보복인가

등록 2022-10-19 05:00수정 2022-10-19 10:44

‘양날의 칼’ 직권남용죄
서울중앙지검. 연합뉴스
서울중앙지검. 연합뉴스

직권남용죄 전성시대다. 전 정권의 직권남용 혐의를 수사요청한 감사원이 오히려 직권남용 논란에 휩싸인 것이 대표적이다. 2017년 국정농단 사건, 2018년 사법농단 사건 수사를 계기로 형법 제123조 직권남용죄는 정치·사법·행정 전 영역에 걸쳐 검찰권을 관철시키는 핵심 도구로 자리잡았다. 직권남용죄는 양날의 칼로 통한다. 국가의 위법한 정책 결정 과정을 시정하고 공직사회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순기능이 있지만, 전 정권 수사에 주로 활용되면서 정권 교체에 맞춰 5년 주기 정치보복에 쓰이고 있다는 우려도 크다. 직권남용죄의 남용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촛불’에 힘입어 들어선 문재인 정부 검찰은 국정농단 사건으로 상당부분 드러난 박근혜·이명박 정부 시절 불법과 비리를 청산하는 수단으로 직권남용죄를 활용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검찰이 들여다보고 있는 문재인 정부 관련 사건 혐의 역시 직권남용이 대다수다. 다만 ‘드러난 직권남용’ 수사가 아닌 ‘찾아내는 직권남용’ 수사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국민의힘과 보수성향 시민단체가 전 정권 인사들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하고 검찰이 수사에 나서는 익숙한 패턴이 반복된다.

18일 기준 서울중앙지검에서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공공수사1부), 북한 어민 북송 사건(공공수사3부)과 관련해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서훈·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 노영민 전 대통령 비서실장, 서욱 전 국방부 장관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하고있다. 또 공공기관 블랙리스트 의혹(형사1부)과 관련해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 조국 전 민정수석이 같은 혐의로 수사 대상에 오른 상태다.

이와 함께 서울동부지검은 산업통상자원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통일부 블랙리스트 의혹(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유영민 전 과기부 장관, 조명균 전 통일부 장관 등), 서울남부지검은 라임자산운용 사건(강기정 전 정무수석,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등), 대전지검은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백운규 전 장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등), 수원지검은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금 의혹(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 조국 전 수석, 김오수 전 검찰총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수사하고 있거나 일부 기소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국정농단’ ‘사법농단’ 사건에서 확인되듯 직권남용 수사는 권한이 집중된 고위 공직작자들에 의한 국가권력 오남용을 사후적으로 교정하거나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가 입증된 바 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폐쇄적 공직사회 최상층부의 권력남용을 바로잡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병두 홍익대 법대 교수는 “직권남용죄 자체는 검찰권을 동원해 전 정권을 단죄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죄가 아니다. 공무원이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게 했을 때 처벌하려는 취지다. 관에서 이뤄진 위법한 행정적 조치로 인해 자유와 권리가 침해된 국민들이 직권남용을 이유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죄목”이라고 평가했다. 자신의 행위가 나중에 직권남용으로 처벌될 수 있다는 ‘인식’은 상급자의 위법한 지시를 거부할 버팀목이 될 수도 있다. 보다 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로 공직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 효과로 꼽힌다.

그러나 최근 검찰의 먼지털이식 직권남용 수사 행태는 이런 순기능을 무색하게 만든다. 문재인 정부 때도 직권남용죄의 남용 우려가 나왔지만, 검찰 디엔에이(DNA)를 국정운영 기조로 삼고 있는 윤석열 정부 들어 검찰권 행사 기준이 무뎌지면서 통일·외교·안보 등 고도의 정무적 판단이 요구되는 통치 영역까지 검찰 잣대로 재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경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직권남용죄의 남용은 전 정부의 정책적 판단을 사법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것이다. 행정부 관리들의 결정을 사법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죄목이 마땅치 않다보니 직권남용을 남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적폐청산’ 수사에 관여했던 한 법조인은 “국장·과장 등 중간간부급 공무원에게까지 직권남용 수사가 광범위하게 이뤄지다보니, 과거 정책적 판단 전반을 검찰이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부처마다 반복되고 있다. 국정농단 당시 핵심 권력층의 반헌법적 행태를 수사했던 수단을 일선 부처 단위로 끌고 오면서 부작용이 커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사회 현안에 대한 사후적 판단인 검찰 수사가, 현실과 조응해야 하는 정책 판단을 뒤흔드는 현상이 우려된다는 것이다.

직권남용죄의 남용 우려는 수치로 드러난다. <한겨레>가 대검찰청에 요청한 자료와 대검 범죄분석 자료를 종합하면, 직권남용 혐의 고소·고발 접수 건수는 2011년 4249건, 2012년 5279건에서 2017년 ‘적폐청산’ 수사를 기점으로 9188건으로 크게 늘었다. 이런 추세는 2018년 1만3738건, 2019년 1만6880건, 2020년 1만6167건, 2021년 1만3413건으로 이어지다가 윤석열 정부로 정권교체가 이뤄진 올해 1만6658건(1~9월)이 접수되며 이미 역대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문제는 급증한 직권남용 사건에 견줘 실제 기소 건수는 0%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기소율은 2017년 0.3%(29건), 2018년 0.4%(53건), 2019년 0.2%(40건), 2020년 0.1%(23건), 2021년 0.2%(23건)에 그쳤다. 검찰의 대대적 직권남용 수사가 진행중인 올해 역시 기소율은 9월 현재 0.1%(20건)에 불과하다.

0%대 기소 문턱을 넘더라도 직권남용죄를 좁게 해석하는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권력층을 겨냥한 검찰의 직권남용 혐의 수사가 여론의 주목을 받으며 요란하게 시작하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은 것이다. 이에 검찰 내부에서도 ‘직권남용 피로감’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검찰 간부는 “직권남용 고소·고발이 굉장히 많다보니 이를 검토하는데 수사력이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측면이 있다”고 했다. 복잡·정교해지는 부정부패 사건을 전담하는 특수부 수사 역량이 문서 삭제나 문구 수정 등을 찾아내는 직권남용 수사와 공소유지에 집중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검사장급 간부는 “특수부 검사들이 보고서 문구를 들여다 보는 수사에 시간을 빼앗기는 일이 너무 많다”고 했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해 기소하고 재판에서 유죄를 받기까지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남발하는 직권남용 사건에 특수부 수사력이 소모되고 있다”고 했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국정농단 때 급부상한 ‘직권남용’…윤석열·한동훈이 전문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직권남용죄는 뇌물, 직무유기와 함께 대표적인 공직자 범죄로 꼽힌다. 하지만 2017년 이전에는 사실상 사문화한 조항이었다. 실제 수사와 기소로 이어지는 경우도 드물었다.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건 수사가 직권남용죄 적용의 기폭제가 됐다. 이 사건을 수사한 박영수 특검팀 핵심 검사가 윤석열 대통령(수사팀장)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었다. 이들이 ‘적폐청산’을 위해 가장 많이 적용한 죄목이 직권남용이다. 박근혜씨,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이 이 혐의로 기소됐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서도 직권남용죄가 주요하게 쓰였다. 이 사건은 2018~19년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한동훈 당시 3차장검사가 수사를 지휘했다. 수사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임성근 전 부장판사, 이민걸 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했다.

법원은 직권남용죄를 매우 한정해 인정하고 있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그 상대방으로 하여금 의무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권리 행사를 방해할 때 성립한다’는 다소 모호한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하급심 판단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2020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된 김기춘 전 비서실장 사건에서 “직권남용죄는 ‘직권의 남용’과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한 때’ 등 두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성립한다”는 엄격한 기준을 제시했다. 상급자가 직권을 남용해 지시를 했더라도, 그 지시에 따른 하급자의 행위가 관련 법이나 기준에 어긋나지 않는지까지 엄밀히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또 임성근 전 부장판사 사건에서 “재판에 개입할 직무상 권한이 없으니 남용할 직권도 없다”는 무죄 논리를 확정하기도 했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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