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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친한 친구를 입양해 법적 가족이 됐다

등록 2022-10-12 05:00수정 2023-09-01 15:45

응급실에서 보호자될수 없던 ‘동거인’
‘성인 입양’해 가족이 된 두 또래 여성
“생활동반자법 없어 가족될 유일한 방법”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 5월, 전북 지역의 작은 읍내에 사는 은서란(43)씨는 함께 사는 친구 이아무개(38)씨를 입양해 법적으로 ‘엄마와 딸’이 됐다.

은씨는 11일 <한겨레>와 한 서면 인터뷰에서 “생활동반자법이 없는 우리나라에서 법적으로 가족이 되는 방법은 결혼·출산·입양밖에 없다”며 “동성 친구인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이 입양이니 입양을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카카오 플랫폼 ‘브런치’에 은씨가 지난달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친구 입양기’는 최근 에스앤에스(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은씨와 이씨는 지난 2017년부터 한집에서 산다. 2016년 현재 사는 지역으로 이사한 은씨는 옆 건물에 살던 이씨와 이웃사촌이 됐다. 시골에 거주하는 비혼 여성의 삶과 노후 고민을 자주 나누던 두 사람은 이듬해 집을 합쳤다. 혼자보단 둘이 더 나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5년간 서로의 보호자 역할을 한 두 사람은 ‘법적 가족’이라는 울타리의 필요성을 점차 느꼈다.

특히 병원에서 수술시 요구하는 ‘보호자 동의’는 이들의 입양 결심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현행 의료법은 환자 본인이 수술 동의서에 직접 서명을 할 수 없는 경우, 환자의 법정대리인에게 동의서를 받는다. 법정대리인을 직계존비속‧배우자‧생계를 같이 하는 친족 등으로 한정된다. 단순 동거인은 서명할 수 없다. 두 사람의 부모님은 모두 연로하셔서 장거리 이동이 어렵고, 결혼한 형제자매는 차로 3∼4시간 거리에 산다 마흔이 넘자 응급실을 찾는 등 병원에 가는 일이 잦아진 은씨는 “노후를 꼼꼼하게 대비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했다.

친구가 가족이 되기까지는 하루면 충분했다. 양자가 되는 이씨 부모님의 동의 서명이 담긴 입양신고서 한장을 읍사무소(행정복지센터)에 제출한 이튿날, 두 사람은 법적 가족이 됐다. 다섯살 많은 은씨가 법상 어머니로, 이씨는 딸이 됐다. 양쪽 부모님은 입양을 흔쾌히 동의했다. 은씨는 “어머니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고 딸이 할머니가 되어도 외롭지 않고 누군가와 행복하게 살길 바랄 뿐”이라며 “입양이 완료된 뒤엔 웃으면서 손녀딸이 생겼다고 하시는 등 진짜 가족이 생긴 걸 축하한다고 하셨다”고 했다. 가까운 친구들도 ‘그게 가능하느냐’고 묻긴 했지만, 대부분 축하인사를 전했다.

친구를 입양한 지 6개월 차, 두 사람의 일상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은씨는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였던 이씨를 자신의 직장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등록했다. 자동차보험의 운전자 범위를 가족으로 바꿔 보험료를 아낀 게 변화라면 변화다. 은씨는 대신 가장 큰 변화로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 때 혼자가 아니라는 심리적 안정감”을 꼽았다. 그는 “어느 날 한명이 크게 아파서 병원에 가게 됐을 때 바로 보호자 동의를 할 수 있다는 게 안심이 되고, 나중에 누군가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될 때 일상 생활을 함께했던 서로가 유가족의 자격으로 마무리해줄 수 있다는 것도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은 기존 가족 제도의 한계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은씨는 “서로의 법정대리인이 되려고 선택한 유일한 방법이 입양밖에 없다는 건 서글픈 일”이라며 “입양은 이렇게 쉬운데 다양한 가족을 품어줄 수 있는 생활동반자법 제정은 왜 그리 어렵기만 한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생활동반자법은 혼인·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생활을 함께 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공동체에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지난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됐지만 보수단체의 반발이 거세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정부의 가족 정책은 도리어 ‘역주행’ 중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지난해까지 여성가족부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발표하며 동거·사실혼 부부·위탁가정 등도 가족으로 인정하겠다고 밝혔지만,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뒤 최근 입장을 뒤집었다. 혼인·혈연 중심의 가족 개념을 유지하기로 한 것이다. 은씨는 “(가족 제도를)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지만 법과 제도가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포용하지 못한다면 저희처럼 입양이라는 방법으로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사람이 분명 늘어날 것”이라며 “사람들이 원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그들에게 가족의 권리와 의무를 갖게 하는 건 국가와 개인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은서란씨와 친구 이아무개씨가 함께 사는 집 앞의 강변 풍경. 은씨 제공
은서란씨와 친구 이아무개씨가 함께 사는 집 앞의 강변 풍경. 은씨 제공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은서란씨의 요청에 따라 이 기사의 댓글 창을 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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