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국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차장이 지난 5월 공수처 브리핑실에서 열린 ‘고발 사주’ 의혹 수사결과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여운국 차장이 감사원 표적감사 의혹 수사지휘를 ‘회피’한 것을 두고 과도한 몸사리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감사원의 공수처 정기감사를 앞두고 ‘이해충돌’ 우려를 고려했다는 설명인데, 수사와 관련 없는 일반 행정사무 감사를 이유로 수사지휘를 ‘선제적’으로 포기한 셈이 됐다.
여 차장은 지난 16일 감사원 표적감사 의혹 사건 수사지휘를 스스로 회피했다. 감사원 피감기관인 공수처 행정을 총괄하는 여 차장이 감사원 관련 사건을 지휘하는 것은 이해충돌이라는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며 이같이 결정했다고 한다. 공수처는 최재해 감사원장과 유병호 감사원 사무총장이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과 직원들을 표적감사하고 있다는 고발 사건(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을 접수해 수사하고 있다. 감사원은 공수처에 대한 첫 정기감사를 앞두고 있는데, 앞서 최 원장은 지난 7월 국회에서 공수처의 통신자료 조회 논란을 언급하며 감사에 착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법조계에서는 수사기관인 공수처가 감사원 감사를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감사원법은 법원과 헌법재판소 등 사법부를 감사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준사법기관으로 불리는 수사기관 감사도 최소한에 그쳐왔다. 또 감사원 직무감찰규칙 제4조에 따라, 감사원은 행정기관의 준사법적 행위에 대해서는 감사를 진행할 수 없다. 공수처에 대한 감사는 행정사무 등을 대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고, 수사와 감사가 충돌할 여지는 적다는 뜻이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6일 “공수처법상 공수처는 감사원장 등에 대한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 법에 근거한 정당한 권한 행사를 이해충돌로 보기는 어렵다. 공수처가 심리적으로 위축된 것 같다”고 말했다. 장용근 홍익대 법대 교수는 “정말 이해충돌을 우려했다면 차장이 수사지휘를 회피하는 것보다 검찰과 경찰 등 제3의 기관으로 사건을 넘기는 게 더 객관적으로 보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판사 출신인 여 차장이 재판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법관 회피 제도’에 익숙한 탓 아니냐는 풀이도 나온다. 판사 출신 변호사는 “여 차장이 만에 하나라도 감사원 수사가 공정하지 않게 비칠 수 있다고 우려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기관 설립 3년차에 불과한 공수처 지휘부가 수사권 행사에 지나치게 소극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은 수사권을 지키기 위해 저렇게 노력하는데, 공수처는 반대로 권한을 자진해서 내려놓는 모양새다. 공수처 자체가 이런 수사를 하도록 만들어진 기관인데, 앞으로 이해충돌 소지가 있을 때마다 수사지휘를 회피할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에 대해 공수처는 “여 차장 지휘 회피와 상관없이 감사원 관련 수사는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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