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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오징어 게임 좋다’는 네가 싫어”…‘뇌절’ 공격 끝에 남는 것은

등록 2022-09-24 09:00수정 2022-09-24 16:40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극호-극불호’ 정서의 확대

특정한 인물·작품들 약점만 노려
문제 부각시킨 뒤 ‘폐기물’ 취급
내가 싫은 것 좋아하는 사람 공격
비판 아닌 소모적 논쟁으로 변질
지난 12일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배우 이정재와 정호연씨가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AFP 연합뉴스
지난 12일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장면을 배경으로 배우 이정재와 정호연씨가 수상을 위해 무대에 오르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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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미국에서 열린 제74회 에미상 시상식에서 배우 이정재의 남우주연상, 황동혁 감독의 감독상을 비롯해 여섯개 부문에서 상을 받았다. 지난해 세계적 흥행 기록에 이은, 그 이상의 두번째 쾌거다. 그래미, 오스카, 토니와 함께 미국 대중문화 각 분야를 대표하는, 매우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그것도 비영어권 드라마로서는 최초로 수상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겹경사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사회가 여러 가지 사회경제적 난맥상을 보이던 가운데 모처럼 찾아온 반가운 소식이며, 약간 과장을 보탠다면 아이엠에프(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 박세리 선수가 불러온 흥분에 견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극호 아니면 극불호’ 양극만 남아

<오징어 게임>을 완전무결한 불세출의 걸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에미상 수상 사실이 <오징어 게임>이 이견을 불허하는 절대적인 권위를 갖는 것도 아니다. <오징어 게임>에 대해 외국에서 호평 일색이었던 것과는 달리, 국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만큼이나 아쉬운 부분을 지적하는 비판, 혹은 이를 넘어선 혹평도 매우 많았다. 진부한 ‘데스게임’ 장르에 한국형 신파를 더한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는가 하면, 극중 여성 인물에 관한 비판이 많았다. 여성 캐릭터가 지나치게 대상화되어 있고, 평면적으로 그려지거나 어떤 서사적 수단으로만 배치되었다는 의견이며, 특정 인물은 여성혐오를 부추긴다는 문제 제기다.

여성 인물의 재현과 관련한 비판의 경우는, 방송이나 영상의 사회화 기능에 관심을 두는 사회규범 비평 가운데 젠더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대체로 사회규범 비평은 영상물을 수용자가 저항 없이 받아들이고 모방한다는 것을 전제로 깔아둔다. 자연히 논지는 콘텐츠가 대중에게 미칠 파급효과에 대한 제작자의 책임 및 교육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문화연구학자 이엔 앙이 <댈러스 보기의 즐거움>으로 수용자의 능동성을 드러냄으로써 수용자 분석이라는 문화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연 이래 사회규범 비평은 다소 철 지난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하지만 사회규범 비평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으며 영상 콘텐츠의 파급효과를 고려하면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

문제는 오늘날 어렵지 않게 목격되는 언어 습관, 어휘력 및 표현력의 빈곤(6월11일 ‘“공포영화 무섭다”며 별점테러…폭주하는 온라인 증오’ 기사 참고)과 사회규범 비평이 마주칠 때 일어난다. 오직 ‘극호’와 ‘극불호’라는 양극의 강력한 표현만 통하는 오늘날의 언어 경향이 비평을 압도하고 있다. 그럴 때 비판은 비판이기를 그치고 다만 감정적으로 소모적일 뿐인 공격으로 변질한다. 특정 인물이나 집단, 인종 등의 재현에서 몇가지 결점이 있다고 한다면 해당 작품은 별안간 처음부터 만들어져서도 안 됐고 방영되어서도 안 됐던 폐기물로 기각되어버린다. 급기야 그 작품을 시청한 사람들에게도 공격성이 뻗친다. 한 작품에 대한 ‘극불호’의 정서와 공격성은 ‘극불호’ 외의 다른 수용을 인정하지 않는다. 남는 것은 그 작품을 좋아한 사람을 바보로, 혹은 상종해선 안 되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내가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향한 공격성은 다양한 변주로 나타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불호, ‘내가 싫어하는 작품에 출연한 배우’에 대한 불호, ‘내가 싫어하는 작가와 친분이 있는 작가’에 대한 불호 등.

<오징어 게임>이 ‘중년 남성에 대한 연민으로 가득 찬’ 드라마라며 가혹한 평가를 내린 한 비평가는 <오징어 게임>의 에미상 수상 소식에 대해 에미상의 권위를 다소 깎아내리는 방식으로 냉소했다. 자신이 혹평을 내린 작품이 권위 있는 상을 받았다고 해서 자신의 평가를 번복할 필요는 당연히 없다. ‘여러 가지 결점과 한계가 있는 작품임에도 어떻게 그렇게 많은 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나름의 대답을 찾으면 될 일이다. 아니면 그냥 아무 말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될 터였다. 그 대신 그는 ‘내가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향한 (수동)공격성으로 자신이 불호를 표시한 것과 관련된 모든 것에 불호를 표시하는 길을 택했다. 좋은 비평가의 자세라고 할 수는 없다.

‘극불호’의 정서를 기어이 극한까지 잇고야 말겠다는 의지는 요즘 들어서 드물지 않게 보인다. 이러한 경향은 많은 사람을 소외시키며 최종적으로는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소외시킨다.

민족주의를 예로 들어보자. 민족주의를 경계하고 지양하고자 하는 일련의 논의, 움직임은 십분 이해할 만한 일이다. 민족의 이름으로 얼마나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얼마나 큰 규모의 퇴행이 일어날 수 있는지는 역사가 무수히 보여줬다. 하지만 이것은 민족주의가 특정한 유형으로 발현된 것이지, 민족주의 자체가 무조건적으로 폐기되어야 함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엇나간 심보

민족주의의 일면이라도 연상케 하는 어떤 것이 보이면 바로 극도의 경계 태세부터 취하는 사람은 특히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 때면 많이 보인다. 한일전이라도 치르면 더더욱 그러하다. 국제적인 스포츠 경쟁의 흥분된 분위기에서 잠시나마 피어오를 수 있는 국수주의를 경계하자는 이야기는 당연히 격려될 일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민족주의 자체에 대한 태도를 ‘극불호’로 설정한 사람은 ‘내가 싫어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향한 공격성으로 자신의 논평을 개진한다. 월드컵이나 올림픽 경기를 즐겨 시청하고, 우리나라 선수들과 팀을 응원하거나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냉소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에 그치지 않고 한국의 강력한 라이벌 팀을 응원하는 식으로 대중을 도발하기도 한다. 요즘 말로 1절, 2절에 이은 ‘뇌절’이다. 이런 식으로 민족주의를 지양할 수 있으리라 믿는 순진한 사람은 없다. 우스개 섞인 이야기지만 나는 이런 사람이야말로 ‘디나이얼 민족주의자’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 책 <프로보커터>에 이어 <급진의 20대>를 썼고, <인싸를 죽여라>를 번역했다. 한국의 20대 현상과 좌파 포퓰리즘, 밈과 인터넷커뮤니케이션 같은 디지털 현상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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