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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세모녀 비극’ 막으라는 시스템, 현장엔 ‘테크노 스트레스’만

등록 2022-09-15 11:00수정 2022-09-15 16:25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 보고서]

단전·부동산 매매 정보 부정확
일일이 확인작업 거쳐 수기 입력
이달초 ‘행복e음’ 개편 2차 개통
시스템 오류로 지원금 지급 차질
“위기가구 도움 실질 정보 파악을”
서울 중구 만리동1가 만리동공원에서 한 노숙인이 그늘을 찾아 짐수레를 끌며 이동하고 있다. 복지제도가 포용하지 못한 ‘빈곤한 비수급자’들은 스스로 고립을 택하기도 한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서울 중구 만리동1가 만리동공원에서 한 노숙인이 그늘을 찾아 짐수레를 끌며 이동하고 있다. 복지제도가 포용하지 못한 ‘빈곤한 비수급자’들은 스스로 고립을 택하기도 한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답답해요, 사회보장시스템으로 할 수 있는 게 사실 별로 많지 않아요.”

경기도의 사회복지전담공무원 이아무개(44)씨의 토로다. 그는 지난 8월23일 발생한 ‘수원 세모녀 사망 사건’ 이후, 복지사각지대 발굴 강화를 위해 사회보장시스템을 강화하겠다는 정부 방침을 두고서 “벌써 걱정스럽다”며 이같이 말했다. 예컨대, 한국전력 단전 정보는 실제 거주자와 요금납부자가 달라 위기가구를 찾아낼 때 공무원이 일일이 사실관계를 확인해야 한다. 부동산 매매 정보 역시 실시간으로 적용되지 않아 조사 시점에서 자산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탓에 일일이 확인해 수기로 입력해야 한다. ‘정보시스템’이라고 하기엔 ‘사람손’이 너무 많이 필요하고, 정보의 사실관계를 확인하느라 위기가구를 발로 찾아갈 시간이 오히려 줄기도 한다.

수원 세모녀 비극에 따른 대책의 하나로 정부가 복지사각지대 발굴을 위한 사회보장정보시스템 강화에 나선 가운데, 이씨처럼 정작 이 시스템을 사용하는 일선 사회복지공무원들과 복지시설 종사자들은 기술과부하, 즉 기술이 업무를 줄여주기보다는 오히려 늘어나게 만드는 현상 등 여러 ‘테크노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회보장시스템은 범정부 복지정보 통합 행정시스템을 말하며, 테크노 스트레스는 새로운 컴퓨터 기술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어려움을 뜻한다. 이런 테크노 스트레스는 특히 복지사각지대 발굴과정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의 효율성 점검은 물론 이 시스템을 중심으로 한 ‘복지사각지대 발굴 대책’에 대한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정확한 정보로 기술과부하 스트레스

사회복지 관련 정보시스템은 지난 2007년 중앙정부부처와 자방자치단체 행정정보를 연계한 1세대 정보시스템인 ‘시군구 행정종합정보시스템(새을시스템)’이 도입된 이래, 2010년 2세대 정보시스템인 ‘사회복지통합관리망(행복e음), 2013년 3세대 ‘범정부사회보장정보시스템(22개 행정부처로 분산돼 있던 360개 복지사업을 통합 관리한 시스템), 그리고 2022년 올해 4월부터 1차 개통해 운용 중인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으로 진화해왔다.

특히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은 빅데이터를 활용해 복지사각지대를 선제적으로 발굴하는 프로그램과, 개인 정보를 바탕으로 시민이 받을 수 있는 복지멤버십 제도를 포함하고 있으며, 지난 6일 2차 개통에 이어 단계적으로 노후화를 개선해 올 연말 안에 완전 개통을 목표로 추진되고 있다. 현재 일선 공무원들은 2700만명에 이르는 복지대상자의 다양한 정보가 들어었는 이 시스템을 이용해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긴급복지, 장애인 및 노인, 청소년 및 아동복지 대상자 등을 선정하는 한편 위기가구 발굴에도 활용하는 등 다양한 복지행정 업무를 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진(함영진 박사외)이 이 시스템을 이용하는 지자체의 복지팀장 등 사회복지담당 공무원 7명과 지역아동센터장 등 민간사회복지관 종사자 7명 등 모두 14명에게 지난해 8월 ‘초점집단인터뷰(FGI)’를 벌여보니, 상당수가 이 시스템이 지닌 정보의 부정확성으로 인한 기술과부하 등 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업무량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올라오는 자료 자체의 사실 여부를 또 확인해야 하는 업무가 오히려 더 플러스됐어요”, “행복이(e)음으로 시스템이 자동화되고 그렇게 좋아졌다고 하는데 사실 업무는 절대로 줄어들지 않았어요. 오히려 더 많이 늘어났다고 생각해요”

일선 공무원들의 이런 토로는 이 시스템이 지닌 정보의 부정확성과 시스템 개선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오류와 오작동 때문이다. 특히 부정확성은 시스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국세청과 금융 및 정보기관 등 각종 기관에서 제공되는 원천 정보가 부정확하거나 정보 제공이 실시간으로 이뤄지지 않은 탓이 크다. 이 때문에 사회복지공무원들이 오류가 있는 정보를 찾아 수기로 입력하는 때도 적잖다. 올해 기준 행복이음에 연계된 소득, 재산, 인적 정보는 25개 기관 92종에 이르며, 기존 시스템에서 운영되는 복지 사업만 239개에 달한다.

실제 추석을 앞둔 지난 6일 노후화를 개선하기 위해 이뤄진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 2차 개통 이후에는 시스템 오류로 위기가구에 지급하는 긴급복지 지원금을 제때 지급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는 등 한때 일선 공무원들의 원성이 폭발했다. 이 시스템의 게시판에는 공무원들의 민원이 수천건 폭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오류는 다행히 오류수정과 긴급 대응으로 진정됐으나 현재도 일부 기능에 오류가 이어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와관련해 14일 설명회를 자청해 “차세대 정보시스템은 자료만 4억3천만건이라 방대하고 난이도가 높아 다양한 이유로 오류가 발생한다”며 “개통 후 1개월을 안정화 기간으로 세우고 오류를 손보고 긴급복지 지원금 등은 선지급 후조처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회복지공무원들은 이밖에도 기술의 복잡성과 방대함, 복지대상자에 관한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걱정 등으로 인해 때로는 “정신을 못 차리거나”, “가슴이 두근거릴”만큼의 심리적 고통을 호소했다.

“내 구역에 사건이 없길 바랄 뿐이에요”

사회복지공무원들은 또한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이용한 복지사각지대 발굴 과정에서도 다양한 테크노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수원세모녀 등 위기가구 비극적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사회복지공무원들은 복지사각지대 발굴과 예방을 위해 사회보장정보시스템 내에 구축된 ‘복지사각지대 발굴 시스템’을 적극 활용하도록 권장되고 있다.

연구진은 사각지대 발굴과 관련해 지난 2021년 8월 12일부터 2021년 9월 1일까지 17명의 공무원을 별도로 인터뷰했다. 이 결과에서도 사회복지공무원들은 정보시스템을 이용한 사각지대 발굴 과정에서 역할 과부하 등 테크노스트레스를 호소했다. 이들은 특히 “발굴했으나 도와줄 수 없는 난처함”과 “사망 사건에 따른 비난의 화살” 을 두려워했다.

“계속 찾아오셔서 좀 더 도와달라 말씀하시는데, 저희가 해드릴 게 없을 때 그럴 때 조금 답답하죠.”, “복지사각지대(발굴)가 사실은 저희한테 실적 업무를 할 때, 스트레스만 줄 뿐, 크게 뭘 해주지는 못해요” “신규 공무원은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복지직 공무원으로서 어떤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것, 그런 것으로.” 이들 공무원들은 발굴 업무 담당 인력이 아무리 노력해도 ‘사건’을 막을 수 없다”고도 여겼고, 다만 “(사망)사건이 내 구역에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도 밝혔다.

함영진 박사 등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진은 “사회정보시스템이 복지사각지대 발굴 등 복지행정 업무에 전반적으로 도움을 주고 있긴 해도 운용의 효율성과 정보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지금까지 발굴하고 확대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사각지대 발굴 위기정보 중에 과연 어떤 정보가 실제 위기가구 예측에 도움을 줬는지를 세밀하게 살필 것”을 제언했다. 더불어 테크노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한 데이터의 부정확성 개선 등의 방안도 권고했다. 연구진의 자세한 연구 결과는 최근 발간된 ‘사회복지담당 인력의 테크노 스트레스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담겼다.

이창곤 선임기자 goni@hani.co.kr 임재희 기자 lim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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