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을 100일간 수사한 안미영 특별검사(오른쪽)가 13일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관에서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강창광 선임기자
chang@hani.co.kr
공군 성폭력 피해자 고 이예람 중사 사건을 수사하는 안미영 특별검사팀이 전익수 공군본부 법무실장 등 8명을 기소하는 것으로 100일 동안 이어온 수사를 마무리했다. 특검팀은 지난해 국방부 자체 수사 결과 불기소 처분했던 군 관계자들을 대거 재판에 넘겼다. 다만 특검팀은 전 실장의 ‘초동 수사 부실’ 의혹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 이 중사에게 ‘2차 가해’를 한 것으로 지목됐던 전입 부대 관계자들도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특검팀은 지난 9일 전익수 실장을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면담 강요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13일 밝혔다. 지난해 7월 국방부 재수사 당시 전 실장에게 수사 상황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 군무원의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군 검찰단 소속 검사에게 전화를 걸어 ‘구속영장이 잘못됐다’고 추궁하며 계급과 지위에 따른 위력을 행사한 혐의다.
다만 이 중사 사건을 불구속 수사로 지휘했다는 전 실장의 ‘초동 수사 부실’ 의혹은 인정되지 않았다. 전 실장이 가해자 장아무개 전 중사를 불구속 수사하라고 지시한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조작된 사실이 수사 과정에 확인됐기 때문이다. 특검팀 관계자는 “전 실장이 (가해자에 대한) 구속을 검토하며 지시했던 메시지 내용 등을 확인했다”며 “(전 실장이 받은 초동 수사 부실 의혹은) 아무런 근거가 없어 사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 내렸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 가해자 장 전 중사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에 참여한 사람들의 인적사항 등을 전 실장에게 누설한 혐의를 받는 군무원도 재판에 넘겨졌다. 특검팀은 앞서 군무원의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 중사 사건을 처음 맡았던 공군 20비행단 군검사도 ‘부실 수사’를 이유로 불구속 기소됐다. 해당 군검사는 이 중사 사건을 송치받고 ‘2차 피해’ 정황을 알았지만 가해자 장 전 중사 구속수사 필요성 등을 방임하고 정당한 이유 없이 피해자 조사 일정을 지연시킨 혐의(직무유기)를 받는다. 해당 군 검사는 동기 법무관 등이 있는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이 중사 사건 관련 내용을 공유한 혐의로도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공군본부 공보담당 장교도 이 중사가 지난해 5월 숨진 뒤 공군에 대한 비판 여론을 반전하려는 의도로 기자들에게 ‘이 중사가 부부 문제 때문에 숨졌다’며 왜곡된 사실을 기자들에게 전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이 중사 피해 사실을 알면서도 제대로 조처하지 않은 당시 공군 20비행단 대대장 등도 기소됐다. 당시 대대장은 이 중사 직속 상급자라 성폭력 피해자를 보호할 직무상 의무가 있지만, 이 중사 사건을 은폐하려는 목적으로 책임자에 대한 징계의결을 요구하지 않은 혐의(직무유기)다. 당시 20비행단 중대장도 지난해 4~5월에 걸쳐 이 중사가 전입하려던 공군 15특수임무비행단 중대장에게 ‘이 중사가 이상하다. 20비행단 언급만 해도 고소하려 한다’ 등 허위 사실을 말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다만 이 중사가 전입된 뒤 가혹행위 등으로 ‘2차 피해’를 입혔다는 논란을 받은 15비행단 관계자들은 따로 기소되지 않았다. 특검 관계자는 “수사 결과 기소할만한 범죄 행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 중사를 성추행한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 받은 뒤 대법원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가해자 장 전 중사는 명예훼손 혐의로 추가 기소됐다. 장 전 중사는 이 중사를 성추행한 지난해 3월2일 직후부터 20비행단 내 다른 군인들을 상대로 이 중사를 추행하지 않았지만 거짓으로 고소를 당한 것처럼 허위사실을 말해 이 중사 명예를 훼손한 혐의를 받는다. 군인권센터 모르게 녹취록을 조작해 제보한 것으로 조사된 변호사 ㄱ씨는 지난달 31일 업무방해 등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ㄱ씨는 군 복무 시절 전 실장에 대한 사적 앙심 때문에 녹취록을 조작했다고 한다.
특검팀은 이날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예람 중사가 성추행과 2차 가해 때문에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됐다는 정황을 추가 설명하기도 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심리 부검 결과, 이 중사에게 없던 극단적 선택 위험 정도가 장 중사에게 강제추행을 당한 뒤 급격히 상승했고, 제15비행단에 전입 뒤 좌절감 등이 심화돼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특검팀은 “숨진 당일까지 이 중사는 남편과 여느 신혼부부 못지않게 친밀한 관계였다는 사실이 분명히 확인됐다”며 “일부 공군 관계자가 제기한 ‘배우자 불화로 숨졌다’는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또 특검팀은 이 중사가 숨지게 된 원인 가운데 하나로 ‘가해자 친화적’인 군대 문화를 꼽기도 했다. 안미영 특검은 이날 브리핑에서 “형법적 개념에서 (군 관계자들이) 조직적으로 (이 중사에 대한 가해를) 했다고 볼 수는 없다”면서도 “모두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 걱정이 먼저였다. 모든 과정이 이 중사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고 말했다. 이어 “군대 문화에 대한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에서 관계자들에 대한 기소를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군내 성추행 피해자인 이예람 중사는 지난해 5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후 국방부 자체 수사가 이어졌으나 전 실장을 불기소 처분하는 등 ‘부실 수사’ 의혹이 불거져, 국회는 지난 4월 ‘고 이예람 중사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지난 6월 수사를 시작한 특검팀은 100일 동안 18회 압수수색을 단행했고 164명을 조사했다. 특검팀은 “철저한 공소 유지로 각자 죄에 상응하는 처벌을 받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전익수 실장 쪽은 입장자료를 내어 “전 실장이 담당 군검사에게 전화한 내용은 ‘왜 군무원에 대한 구속영장에 내가 지시한 것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인지’ 물어본 것에 불과하다”며 “특검의 구색을 맞추기 위한 기소에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특검팀 쪽은 “장성인 전 실장이 어떤 식으로 항의했는지 객관적 사실이 확보돼 있어 법리 적용을 검토해 판단한 것”이라며 “담당 군검사가 육군이라 소속이 다르기 때문에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가 아닌 특가법 위반으로 의율해 기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전광준 기자
light@hani.co.kr
<한겨레>는 고 이예람 중사 사건과 관련해 지난해 군인권센터가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한 녹취록을 근거로 ‘공군 성추행 수사 검사들 “실장님이 불구속 지휘”’ 기사를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수사한 안미영 특별검사팀은 13일 해당 녹취록을 조작해 군인권센터에 전달한 혐의로 군 법무관 출신 변호사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습니다. 법원 판단이 나오지 않았지만 현재로서는 녹취록이 조작됐다는 특검팀 수사 결과의 신빙성이 높아 보입니다. <한겨레>는 녹취록 보도 전후로 군인권센터 등을 상대로 녹취파일 존재 여부와 녹취록 신빙성을 확인했지만, 결과적으로 추가 검증에 소홀해 부정확한 보도로 이어졌다고 판단했습니다. 당사자와 독자께 깊이 사과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