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는 나쁘다”는 비판에는 별다른 근거 없이 그 ‘이름’만을 공격하는 경우들이 있다. 사진은 반페미니즘 시위 현장 모습. 문화방송(MBC) ‘PD수첩’ 화면 갈무리
대선 직후 <피디(PD)수첩>에서 일반인 20대 남성을 상대로 한 길거리 인터뷰에서 한 남성이 여성가족부를 비난했다. 말도 안 되는 정책을 펼친다는 것이 이유였다. 피디는 “그 말도 안 된다는 정책에 무엇이 있냐”고 물었고, 이 남성은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여가부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거의 없지만, 여가부가 나쁜 집단이라는 것만큼은 잘 안다고 스스로 믿고 있다. 여가부에 대한 반감은 여가부 자체를 향한 것이 아니라 여가부라는 이름에 대한 반감이다.
지난번 글(8월13일치)에서 ‘청년’과 ‘586’이라는 이름에 관해 이야기했다. 요컨대 보수세력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담론을 구축하기 위해 언론의 힘을 빌려 586을 한국 사회 모든 병폐가 집약된 존재로 묘사하고, 그에 대한 저항군으로 청년들을 동원한 결과, 지금 한국 사회 담론에서 말해지는 청년과 586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586’과 ‘청년’이 세대 간 분열을 수놓은 이름이라고 한다면 한국 청년 사이 젠더 분열을 수놓은 이름은 단연 ‘페미니즘’이다. 보수세력은 언론과 야합하여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이용해 젠더 분열까지 획책하여 청년 남성들을 반민주당, 반진보의 첨병으로 징병하고 자기들의 확실한 아군으로 확보하고자 했다. 세대 분열 기획보다 젠더 분열 기획이 훨씬 주효했다. 여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인데, 사회경제적 문제를 세대의 문제로 설득력 있게 축소하는 것은 다소 복잡한 서사의 선전을 요구했던 반면, 페미니즘은 문화적 불만을 자극하는 기폭제로 용이하다는 점에서 수많은 청년 남성의 공감을 인위적으로 유도하기에 알맞았다. 사회경제적 불만은 비교적 많은 읽기와 공부가 필요했다. 페미니즘과 결부된 문화적 불만은 수년 전부터 수많은 네티즌들, 유튜버들, 사이버 레커(렉카)들이 밥상을 다 차려놓고 있었기 때문에 보수세력은 수저만 얹으면 될 일이었다.
2014년부터 일었던 이른바 페미니즘 제4물결 이래 ‘메갈’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이러저러한 ‘남혐’ 사례들에 기분 상하고 피로했던 청년 남성들을 반정부 여론에 동원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문재인 정권이 구조적 차별들을 조금이나마 완화하고자 실행했던 온건한 정책, 메시지들에 죄다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페미니즘이라는 것에 완전하게 무지했던 청년 남성들은 일찍이 ‘남혐’과 페미니즘을 동일시하고 있었고, 그 결과 모든 진보적 의제와 가치들을 ‘급진적’ ‘극성’ 페미의 그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민주당 및 진보진영에서 성폭력 사건이 있을 때마다 보수세력과 언론은 위선 프레임을 강화했다. 성폭력 자체보다 ‘범죄자가 페미니스트였다’라는 말을 부각함으로써 범죄 사실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페미니즘만 남게 만들었다. 그 결과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에도 위선과 ‘내로남불’이 들어가게 됐다. 즉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은 민주당 및 진보세력에 대한 불만과 함께 시대적인 가치관의 변화에 대한 이질감과 어색함을 뒤섞어버린 채 호명함으로써 청년 남성을 보수세력의 편으로 만드는 헤게모니적 기표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페미니즘=위선=내로남불=586=진보=무능=문재인 정권=민주당=기득권’이라는 담론사슬이다. 이에 따라 청년 남성들은 페미니즘에 대해 완전히 무지한 채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에 반사적으로 극불호의 정서부터 갖도록 추동된다. 몇 가지 연구 문헌을 보건대 청년 남성들의 젠더 의식이 특별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가부장제에 대한 반감은 윗세대에 비해 가장 높은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반페미니즘 정서가 깊은 것은 이들에게 반페미니즘이 성차별주의와 동의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의 반페미니즘은 성차별 구조를 없애기 위한 각종 정책 및 의제에 대한 반대와 구별되어야 한다. 요컨대 청년 남성들은 성차별적 사회를 지향하기 때문에 페미니즘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즘이 싫어서 그와 관련된 성평등 움직임에 반발하는 것이다.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에 대한 반감이 먼저 있고, 그에 결부된 가치들에 대한 반감이 후행한다.
지난 3월15일 방영된 문화방송 <피디수첩> ‘젠더 갈등과 여성가족부’ 편의 한 장면. 문화방송 제공
한 방송에서 조병영 한양대 교수(국어교육과)는 오늘날 점점 하락하는 문해력과 관련해서, 화자의 맥락 파악 없이 특정 단어에만 반응하고 집착하는 경향에 관해 이야기했다. 반페미니즘은 이러한 경향과 만나서 아주 빠르고 강하게 증폭된다. 최근의 예로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특정 에피소드와 관련한 짧은 해프닝이 있었다. 해당 회차는 여성 노동 인권, 구조조정 때 성차별을 다루며, 실화를 각색한 것이다. 이전까지의 회차와 비교해 특별할 것이 없는 에피소드였지만 몇몇 헌신적인 반페미니스트는 해당 에피소드에서 몇 차례 거론된 여성 노동 인권이라는 단어에 꽂혔던가 보다. 이들은 드라마 작가의 이력을 찾아보고 그가 과거 ‘페미니즘 영화’를 연출한 바 있다는 사실을 들며(서울국제여성영화제 신인상 수상 이력으로부터 페미니즘 영화를 유추한 듯하다) 작가가 사실은 페미니스트였다고 소문을 퍼뜨렸다. 작가가 페미니스트라는 사실이 흥행에 어떤 악영향이라도 줄 거라고 믿는 양, 더 나아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남혐’ 드라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았다. 이러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극히 적었다. 하지만 몇몇 언론사에서 이것을 ‘논란’이라고 보도한 탓에, 짧은 해프닝으로 그칠 일이 시끄러운 논쟁으로 번질 뻔했다.
살면서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 중 하나가 유치원생 웃기는 것이다. 똥, 방귀 이야기만 하면 깔깔거리니까. 그 못지않게 쉬운 일이 중학생 웃기는 것일 텐데, 섹스라고 한번 외치기만 하면 열에 아홉은 킬킬거릴 것이다. 그다음으로 쉬운 일은 일부 청년 남성을 발끈하게 만들기인 듯하다. 페미니즘의 편린이라도 연상케 하는 단어 몇개만 귀에 들어가면 반사적으로 화부터 내는 사람이 점점 더 많이 보인다.
첫 책 <프로보커터>에 이어 <급진의 20대>를 썼고, <인싸를 죽여라>를 번역했다. 한국의 20대 현상과 좌파 포퓰리즘, 밈과 인터넷커뮤니케이션 같은 디지털 현상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