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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살빼기 위한 잘못된 선택, 뼈말라족과 ‘나비약’

등록 2022-09-03 22:13수정 2022-09-03 22:23

[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마약성 식욕억제제
연습생 생활하던 20대 연미씨
과도하게 살 빼려 ‘나비약’ 복용
펜터민 성분 탓 불안·공황 증세
피해망상·환청 등 유발할 수도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연미씨는 20대 중반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수가 되기 위해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연습생이 된 지도 꽤 지났지만 아직 정식으로 데뷔를 하지 못했습니다. 함께 연습생 생활을 했던 친구들은 하나둘씩 그만두고 이제 연미씨 나이 또래는 몇명 남지 않았습니다.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이를 악물고 연습하고 있지만 기회가 잘 오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미씨는 동료와 함께 오디션을 보았는데, 자신보다 실력이 좋지 못한 동료에게 좋은 무대에 설 기회가 먼저 돌아갔습니다. 연미씨는 너무 실망해서 자신이 무엇이 부족한지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고민했습니다. 그 동료의 오디션 영상을 보면서 자기보다 훨씬 마르고 날씬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볼 때마다 얼굴도 크고 뚱뚱해 보였습니다.

더 날씬해져야 한다는 강박

연미씨는 자기도 날씬해져야겠다는 생각에 친구들에게 고민을 상담해보았습니다. 그중 한 친구가 자신이 먹고 있는 ‘식욕억제제’ 몇 알을 연미씨에게 주었습니다. 그 약의 모양이 나비처럼 생겨 속칭 ‘나비약’이라고 하는데, 친구가 다이어트 전문병원에서 처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연미씨가 그 약을 먹어보니 확실히 식욕을 줄이는 데 효과가 있었습니다. 연미씨는 친구를 따라서 같은 병원을 방문해 상담을 받았습니다. 연미씨는 체질량지수가 22로 정상 체중이었지만, 나비 모양의 식욕억제제를 포함해서 각종 약물을 한꺼번에 처방받았습니다. 연미씨는 약을 복용한 후에 체중이 3㎏ 정도 감량되었습니다. 효과가 있는 것 같아 해당 병원을 방문해서 더 많은 양의 약물을 처방해주기를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담당 의사는 더 이상은 안 된다며 거절했습니다.

연미씨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올해 안에 날씬한 몸을 만들어 데뷔하기 위해서는 약이 더 필요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운동과 식이요법을 하라고 조언했습니다. 하지만 운동할 시간을 도저히 낼 수 없었고, 밤만 되면 식욕이 증가해서 폭식을 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연미씨는 다이어트 전문병원 여러 곳에서 처방을 받았고 심지어는 친구들이 처방받은 약을 모아서 한꺼번에 복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도 걱정하면서 연미씨에게 더 이상 과도하게 약을 먹지 말라고 했지만, 처방받은 약을 달라는 연미씨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연미씨에게 드디어 좋은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는 데뷔 기회가 왔습니다. 연미씨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심장이 너무 심하게 뛰고 어지럽고 호흡이 곤란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다음날 연습실에 갔는데 동료들이 자기들끼리 웃고 떠드는 것이 자신의 외모를 보고 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연미씨는 자신도 모르게 동료들에게 심하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동료들이 모두 놀라 연미씨를 진정시켰습니다. 그는 원래 차분한 성격이었고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이라 자신도 놀랐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이 마치 자신을 향하는 것 같은 느낌이 지속적으로 들었습니다.

연미씨는 데뷔 무대에서 공연을 하다가 갑자기 숨이 잘 쉬어지지 않고 어지러워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공연은 엉망이 되었고 연미씨 대신 다른 멤버가 그 자리를 메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평생을 기다려온 무대를 망치자 연미씨에게 심한 우울감이 생겼습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을 비웃는 것 같았고 자신에게 희망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 누군가 자기를 부르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연미씨는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머리가 혼란스러워지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연미씨는 부모님께 자신의 상황을 말씀드렸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인근 정신건강의학과 병원을 방문했습니다. 진찰 결과 연미씨는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는 피해망상, 다른 사람의 행동이 자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관계사고, 간헐적 환청이 있었습니다. 환청이란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여러 명이 서로 중얼거리거나 자기에게 말을 거는 양상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삐’ 소리가 나는 이명과는 다르고, 한 명 또는 여러 명의 목소리가 들린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문제는 연미씨가 과다하게 복용하고 있는 마약성 식욕억제제에 있었습니다. 연미씨가 복용하던 ‘나비약’에는 ‘펜터민’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펜터민은 중추신경흥분제로 우리 뇌의 시상하부에 있는 식욕중추에 작용해서 뇌에서 배고픔을 덜 느끼게 하고 포만감을 증가시키게 됩니다. 펜터민은 뇌의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을 증가시키는데, 도파민이 증가하면 피해망상, 관계사고, 환청 등 정신병적 증상을 유발할 수 있고, 노르아드레날린이 증가하면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각성이 되어 불면증·긴장·불안·공황 증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펜터민계 마약성 식욕억제제를 주변에 나누어준다거나 판매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외모 바꾸려다 불안·공황

가수라는 직업은 감수성이 풍부하고 감정 기복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하게 됩니다. 이런 분들이 소리에 대한 감각이 뛰어납니다. 감정 기복이 있는 사람이 마약성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면 기복이 더 심해지고 일반인보다도 정신병적 증상과 공황 증상, 불면증이 더 쉽게 생길 수 있습니다. 10~20대 젊은 분들은 중장년층보다도 더 쉽게 생깁니다. 약물로 발생한 증상을 조절하려다 보니 수면제 등의 다른 약물까지 함께 복용하게 됩니다. 마약성 식욕억제제는 복용하지 않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됩니다. 특히, 정신병적 증상이 생겼거나 불안, 공황 증상이 발생하면 즉시 중단해야 합니다. 심한 경우에는 죽고 싶은 생각에 사로잡히고 자신도 모르게 위험한 행동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미씨는 왜 위험한 마약성 식욕억제제를 복용하면서까지 체중을 감량하려고 했을까요? 우리 사회의 공정은 외모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마른 몸이 선택받는 기회를 얻는 데 도움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문제의 원인을 체중이나 외모 탓으로 돌리는 태도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외모를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욕망은 결국 자신의 마음을 망가뜨릴 수 있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뼈말라족 : 과도하게 마른 체형, 나비약: 특정 마약성 식욕억제제의 별칭)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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