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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수원 세 모녀’ 마지막 여정에 지인 조문객은 없었다

등록 2022-08-27 09:00수정 2022-08-27 09:37

[한겨레S] 이슈
끝까지 외로웠던 세 모녀 뒤안길
주검 거둘 이 없는 무연고 사망
뉴스 보고 찾아온 시민 있었지만
2박3일 장례에 찾아온 이웃 없어
26일 한줌 재로 봉안당에서 영면
2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연화장에서 지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장례가 끝난 뒤 운구함이 옮겨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26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연화장에서 지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장례가 끝난 뒤 운구함이 옮겨지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지병과 생활고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수원 세 모녀’의 삶은 마지막까지 쓸쓸했다. 세 모녀의 모진 삶은 여러모로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여주인공 이지안(아이유)과 닮았지만, 이들에겐 ‘후계동 이웃’이 없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사채에 시달리며 힘든 시간을 보내던 드라마 속 지안은 후계동 사람들을 만나 마음의 벽을 허물고 삶의 희망을 품게 된다. 하지만 현실의 세 모녀는 달랐다. 피붙이 하나 없던 지안의 할머니 장례식장을 조문객으로 가득 채우고, 정부의 사회복지 지원을 적극적으로 돕는 후계동 사람들과 같은 이웃은 없었다. 세 모녀는 주검을 거둬들일 사람이 하나 없어 ‘무연고 사망자’가 됐다. 그럼에도 마지막 길이 적적하지만은 않았다. 고단한 삶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이들을 추모하고 안타까워하는 발길이 장례식장으로 이어졌다. 영면에 들어간 세 모녀의 마지막 2박3일 여정을 <한겨레>가 기록한다.

“수원 전전하며 살았어요”

세 모녀는 지난 21일 오후 2시50분께 경기 수원시 권선구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부패가 심하게 진행된 뒤였다. 어머니(69)는 암 선고를 받고 투병 중이었고, 45살·42살 두 딸도 지병을 앓았다. 2020년 4월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던 아들(46)이 루게릭병으로 숨지고, 극심한 생활고를 겪었다가 극단적 선택을 했다. 정부의 어떤 복지 지원도 받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어머니와 작은딸이 각각 남긴 9장의 유서에는 고단한 삶이 오롯이 담겼다고 한다.

24일 오전 10시께 세 모녀가 ‘무연고 사망자’로 분류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인을 밝히기 위한 부검을 마치고, 먼 친척에게 인계될 예정이었는데, 세간의 주목 탓인지 그 친척이 주검 인수를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수원시가 부랴부랴 공영장례를 지원하기로 해 24일 오후 5시께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 특실에 빈소를 마련했다. 제단에는 영정사진 없이 세 모녀의 이름만 적힌 위패만 놓였다. 사진을 마련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원시 공무원들이 상주 대신에 추모객을 맞았다. 시는 수원시 공영장례 지원에 관한 조례에 따라 수의·관 등 주검 처리 비용과 제사상 차림비 등 장례의식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기로 했다.

오후 5시께 빈소를 개방하고 10여분 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도착했다. “이런 비극을 막지 못해 죄송하고 마음 아픕니다. 하늘나라에선 아프지 말고,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첫 추모객인 그는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달라졌을 것이라고 믿었던 우리 사회의 복지 전달체계가 얼마나 허술한지 보여주는 사건”이라며 “복지 서비스를 신청해야 검토하는 방식으로는 이런 비극을 막지 못한다”고 말했다.

밤 10시10분께 빈소를 찾은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경기도에서 이런 일이 발생해 참담하고, 비통하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공동체성 회복을 강조해온 그는 다음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삶의 막다른 골목에서 힘드신 분들이 연락해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며 핫라인 번호(010-4419-7722)를 공개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25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수원 세 모녀’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25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수원중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수원 세 모녀’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추모객 중에는 한걸음에 달려온 시민도 있었다. “뉴스를 보고 방문하게 됐어요.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안타깝게 죽음을 선택한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싶어 왔어요.” 밤 9시께 서울 광진구에서 조문 왔다는 직장인 지대현(31)씨의 말이다. 비슷한 시간대 숨진 세 모녀를 아는 추모객 2명이 찾아왔다. 세 모녀가 과거 살았던 화성시 기배동(옛 배양리) 주민으로, 2020년에 숨진 아들의 친구, 동네 선배였다. 동네 선배인 오아무개씨는 세 모녀에게 주민등록상 주소를 내준 이였다. “예전엔 (고인 가족이) 동네에서 제일 부자였어요. 집이 부도나고, 2000년대 초 우리 집에 주소만 옮겨두고, 수원을 전전하며 살았어요. 빚쟁이들 쫓아올까 봐 그런 것인지….” 오씨는 또 “(아들이) 집에서 택배 일하며 유일하게 돈을 벌었다”며 “건강보험료 등 체납된 내용을 보니, 그때(아들 사망)부터 경제적으로 쪼들린 것 같다”고 했다.

장례 이틀째인 25일 아침은 조용했다. 오전엔 주호영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수원시의회 의원 등의 조문이 간간이 이어졌는데, 오후 2시께 빈소가 북적였다. 원불교 경기인천교구에서 종교의식으로 추모식을 진행했는데, 이재준 수원시장, 이기일 보건복지부 2차관 등이 배석했다. 식을 진행한 김덕수 원불교 경인교구장은 “고통스러웠던 이번 생의 원한은 다 내려놓고 해탈해 다음 생은 행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후 3시35분께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방문했다. 추모 종교행사를 진행한 원불교 성직자들을 격려한 김 여사는 “세 모녀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한 것으로 전해졌다. 뒤이어 한덕수 국무총리가 찾아왔다. 조의금 봉투를 들고 온 유덕화 경기복지시민연대 공동대표는 와락 눈물을 터트렸다. “장례에 작은 보탬이 되고 싶어 조의금을 내려 했는데, 받지 않는다고 합니다. 지역사회에서 돌봄체계를 잘 구축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들은 영면에 이르렀을까

장례 마지막 날인 26일 오전 11시30분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 발인이 엄수됐다. 수원시 위생복지과 직원들이 마지막을 배웅했다. 낮 1시께 수원시연화장에서 한 줌의 재가 된 세 모녀는 봉안당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지안, 평안에 이르렀나.’ <나의 아저씨> 마지막 대사처럼 세 모녀도 평안에 이르렀을지 궁금해지는 순간이다. 무연고자 유골 봉안 기간은 5년이라고 한다.

사흘 동안 세 모녀와 평소 연락하고 지낸 지인의 조문은 없었다. 세 모녀가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한 탓으로 보인다. 윤명환 수원시 장묘문화팀장은 “행불자(무연고) 사망자 공영장례에서 빈소를 찾는 지인을 본 사례가 거의 없다. 가족이나 친척이 있어도 병원비, 유산 문제 등 복잡하게 얽힐 수 있어서 인수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말했다. 수원시는 무연고 사망자를 위한 공영장례를 지난해 7월부터 시행 중인데 지금까지 세 모녀를 포함해 모두 29명을 지원했다.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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