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졸업생들과 숙대 졸업생 등이 지난 8일 오후 서울 국민대학교 정문 앞에서 국민대가 이달 초 김건희 여사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데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국민대 교수회가 투표를 통해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박사학위 논문 검증 등을 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지만, 투표 진행 도중 주요 보직교수가 “여론재판” 등을 이유로 반대표를 촉구하는 취지의 이메일을 교수들에게 보낸 사실이 알려지는 등 여진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지난 19일 국민대 교수회는 교수회 회원 77.3%(406명 중 314명)가 16일부터 나흘간 참여한 온라인 투표 결과를 공개했다. ‘교수회가 자체적으로 박사학위 논문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검증하자’는 의견에 반대가 193명(61.5%)으로 찬성 121명(38.5%)을 크게 앞섰다. ‘학교본부의 박사학위 논문 재조사위원회 판정 결과보고서와 회의록 공개 요청’ 안건에는 반대(162명·51.6%)가 찬성(152·48.4%)을 근소하게 앞섰다.
투표 결과 발표 전 홍성걸 교수회장은 “우리의 결정이 어느 방향이라도 그것은 교수의 집단지성의 결과”라고 했다. 그러나 국민대 내부에선 투표 진행 과정에서 이석환 교학부총장이 이메일을 교수들에게 보낸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부총장은 이메일에서 “애초부터 무효인 투표 결과를 가지고 주도권을 쥐어 언론에 공표하고 이를 통해 여론재판을 주도해 나가겠다는 생각은 국민대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정치의 한복판에 학교를 송두리째 빠뜨려 존립 자체에 위협을 가하는 것”이라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민대 교수는 “지난 12일 교수회 임시총회에서는 참석자 대부분이 자체검증에 찬성하고, 일부에선 ‘국민검증단’을 만들자는 의견까지 나왔는데도 전체 투표 결과가 뒤집힌 것은 총장 쪽에서 교수들에게 전체 메일을 보낸 것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했다.
찬반 위주의 단답형 투표 문항 구성도 교수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기 어렵게 만들었다는 시각도 있다. ‘국민대 동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는 21일 입장문을 내어 “1년여간 침묵하다, 이제는 되돌릴 가능성이 희박해진 학교 쪽의 최종 판단에 대해서 (교수회가) 통과 가능성이 적은 찬반 항목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은 아쉽다”고 했다. 김준홍 비대위원장은 “교수들이 김건희 여사의 논문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은 아닐 것”이라며 “교수들의 복잡한 속내를 포섭하지 못하는 단답형의 투표 문항이 아닌 제3의 방안을 포함한 세밀한 의견을 물을 수 있도록 했어야 한다”고 했다.
비대위는 이날 입장문에서 “이 사태의 핵심은 연구의 부정행위와 학생 지도에 관한 것으로 국민대 교수들은 이 사태의 관전자가 아니라 플레이어다”며 “교수들은 이 사태에 대해 제대로 된 검증을 실시하고 사과와 재발 방지책까지 내놓아야 하는 핵심 당사자”라고 교수회 결정을 비판했다
국민대 외부에서는 이번 결정을 두고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양성렬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사교련) 이사장은 “참담한 결과가 나왔다고 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김 여사 논문 표절 의혹은) 특히 지도 교수의 책임도 큰데 지도교수는 이 사태에서 실종돼버렸다”며 “앞으로 대학교수들이 학생들을 지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동규 동명대 교수(광고PR학과)는 “대학이라는 학문 공동체에서 학위수여는 대학의 근간을 유지시키는 가장 핵심적인 제도다. 단순히 특정 개인의 논문 표절이나 학위수여를 넘어서서 그 정당성과 윤리성이 무너지면 후속 세대를 교육시키고 학문 공동체가 영속되는 기반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일”이라고 국민대 교수회 결정을 비판했다.
한편, 사교련 등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어 김 여사의 논문 5편을 검증하겠다고 밝힌 교수‧연구자단체 13곳은 검증단 구성을 마무리하고 추석 전에 자체 검증결과를 밝힐 계획이다.
고병찬 기자
kick@hani.co.kr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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