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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70년대 방공호·80년대 양성화…“반지하 없애면 어디로 가라고”

등록 2022-08-19 05:00수정 2022-08-20 01:18

2022, 반지하에 산다-50년 반지하 주택의 역사
주택난 가중되자 불법 거주 시작
건축법 수차례 개정 ‘깊이’ 완화
저임금·수급자가 택할 최적지
지난 8일 기록적인 폭우로 침수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생을 마감한 가족의 집이 10일 오후 토사 등으로 덮여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난 8일 기록적인 폭우로 침수된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생을 마감한 가족의 집이 10일 오후 토사 등으로 덮여 있다.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지금 반지하를 없애면 큰일 나. 반지하 가족들은 그 살림 가지고 원룸 가지도 못해. 원룸 가면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50(만원)인데 비싸잖아.”

서울 성북구 석관동에서 공인중개사 사무소를 운영하는 ㄱ씨가 말했다. 석관동 일대는 반지하 공간을 깔고 있는 오래된 단독 주택이 밀집돼 있어 반지하 입주 계약이 빈번하게 이뤄지는 곳이다.

지하·반지하 주택이 처음부터 사람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진 않았다. 애초 전쟁 대비를 위한 군사적 목적으로 마련된 공간이었다. 유사시 방공호 또는 대피소가 구축될 공간이 필요했던 정부는 1970년 신축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에 지하실을 의무적으로 만들도록 건축법을 개정했다.

1960년대 1·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추진되고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몰렸고 ‘살 곳’이 부족해지자 지하가 대안으로 떠올랐다. 1970년대 해마다 40만명씩 서울로 전입했는데, 당시 주택 건설은 한 해 3만∼5만호에 그쳤다.
주택난이 가중되자 사람들이 지하에 세 들어 살기 시작했다. 당시 지하 거주는 건축법상 불법이었지만 정부는 이를 묵인했다. 1975년 ‘환기, 기타 위생상 지장이 없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아 거주 목적으로 지하를 사용할 수 있도록 건축법이 개정됐다.

절반 또는 그 이상이 지상에 드러나 있는 반지하 주택은 1980년대 중반 들어 일반화됐다. 정부가 1984년 건축법을 개정해 지하층으로 인정되는 ‘지하의 깊이’를 완화한 영향이 컸다. 기존에는 지하층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 중 3분의 2 이상이 지하에 속해 있어야 했지만, 절반만 들어가 있으면 지하로 인정해준 것이다. 애초 설치 목적인 방공호 기능을 포기하는 대신, 햇볕도 없이 습기 차는 지하 주거 환경을 개선시켜보겠다는 취지였다. 정부의 조처는 만연했던 지하 주거를 공식 인정하는 신호로 받아들여져, 단독주택의 반지하 설치가 급증한 계기가 됐다.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의 지하층 설치 의무 규정은 1999년 건축법이 개정되면서 사라졌지만 서울의 주택난으로 인해 반지하 집은 계속 늘어났다. 원룸이나 오피스텔에 견줘 저렴한 보증금과 월세를 앞세워 서민의 보금자리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그러나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물난리를 겪다 보니, 2012년에는 상습 침수지역의 반지하 신축을 제한하도록 건축법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서울에 방 2개가 있는 집이 필요한 저임금 노동자나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게 반지하 집은 지금도 선택지 중 하나다. 2020년 기준 전국 지하·반지하 집에 거주하고 있는 32만7320가구 중 서울 지역 비중은 20만849가구(61.4%)에 달한다(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

장필수 기자 fe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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