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법정에는 창이 없다. 환한 빛이 드는 법정은 영화와 드라마에만 존재한다. 외부와 차단된 이 공간에서 매일 수많은 이들의 한숨과 환호가 교차한다. 몇 줄 판결문에 평탄했던 삶이 크게 출렁이기도 하고, 스스로 어쩌지 못했던 누군가의 삶은 전환점을 맞기도 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보통 사람들의 재판은 우리 이웃을 한 뼘 더 이해할 수 있는 가늠자다. 평범한 이들의 재판이 열리는 법정에 작은 창을 내려는 이유다.
법에도 인정이 있다.
여름이 시작되던 지난 7월 초, 서울에 사는 20대 여성 ㄱ(29)씨가 피고인석에 섰다. 경범죄처벌법 위반 혐의였다. ㄱ씨는 지난해 9월 있지 않은 범죄나 재해 사실을 공무원에게 8번이나 거짓으로 신고해 재판에 넘겨졌다.
ㄱ씨는 오랫동안 정신과 진료를 받아왔다. 16살 때 처음 조울증 진단을 받은 뒤 지금까지 14년째 약을 먹고 있다. 지난해 증상이 심해져서 2달 동안 입원치료를 받고 퇴원한 직후, ㄱ씨는 경찰에 거짓신고를 했다.
“제가 증상이 나타날 때는 경찰이 와도 통제가 어려운 수준입니다. 그래서 지난 5~6년 동안 병원 입·퇴원을 여러번 반복했습니다. 사건 당시 증상이 악화해서 가정폭력이 일어나는 듯한 생각이 자꾸 들었습니다. 과거에 새아버지가 저를 때려서 특수폭행 혐의로 징역 8개월 형을 받은 적이 있는데, 그 뒤로 이런 증상이 생겼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정상은 아니었는데, 어머니가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경찰에 신고를 했습니다.” ㄱ씨는 법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했다.
위급한 범죄 상황을 가장하는 거짓신고 전화는 공적 자원인 경찰력을 낭비하게 한다. 이에 경찰과 사법부는 거짓신고에 강경하게 대응한다. 거짓신고를 한 사람은 경범죄처벌법에 따라 6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의 형으로 처벌받을 수 있고, 정도가 심하거나 상습적인 경우에는 형법이 정한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죄’가 적용된다.
검찰은 당초 ㄱ씨에 대해 벌금 20만원의 약식명령을 청구했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인 ㄱ씨가 벌금이 부담된다며 정식재판을 청구해, 재판이 진행됐다. “질병 때문이건, 이유가 무엇이건, 제가 한 행위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ㄱ씨의 최후 진술이다. 검찰은 약식기소 때와 마찬가지로 ㄱ씨에게 벌금 20만원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20만원 벌금형을 선고유예했다. 선고유예는 피고인이 범행을 뉘우치는 등 특별한 사정에 한해 재판부가 형의 선고를 미루고 선처하는 제도다. 재판부는 “범행은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면서도 “장기간 질병을 앓고 있는 상황에서 심신미약한 상태에서 범행에 이른 점과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는 점,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점을 참작했다”고 양형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선고를 들은 ㄱ씨가 법정 밖으로 나가기 전 한마디를 덧붙였다. “선고유예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2년 뒤 효력이 사라지는 처분입니다. 치료를 잘 받고 회복되시기를 바랍니다.” 판결 후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검찰은 항소하지 않았고, 선고유예는 그대로 확정됐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
<정신건강에 어려움을 경험하고 있어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면 보건복지상담센터(☎️129), 정신건강위기상담(☎️1577-0199), 자살예방상담(☎️1393) 등에 전화하여 24시간 상담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