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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IMF 외환위기 뒤 25년, 트라우마 겪는 두 형제 이야기

등록 2022-07-16 09:30수정 2022-07-16 16:46

[한겨레S]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인지적 유연성

외환위기로 가족 삶 무너진 뒤
20여년 세월 지나 성인 됐지만
동생, 우울증 속에 엇나간 생활
형은 과도한 책임에 버거워해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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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철씨와 민식씨는 형제입니다. 민철씨는 현재 40대 남성으로 아이엠에프(IMF·국제통화기금) 금융위기 당시에는 고등학생이었고, 민식씨는 현재 30대로 당시 중학생이었습니다. 형제는 아이엠에프 위기 때 평생 잊지 못할 고통을 겪었습니다. 아이엠에프 위기란 1997년 한국에 외환보유고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발생했던 국가 부도 위기 상황을 말합니다. 당시 형제의 아버지는 중소기업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회사 외상 대금을 받지 못해 최종 부도 처리됐습니다. 가족은 집 곳곳에 붉은 압류 딱지가 붙는 경험을 하게 됐고, 이자 비용에 당장 생계가 걱정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운전기사로 일하게 되었고, 어머니도 일터로 나가야 했습니다. 형제에게는 갑자기 모든 것이 무너져버린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습니다.

두 형제의 IMF 트라우마

그로부터 25년 뒤 형은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대표가 되고, 동생은 형의 도움을 받아 살아가는 처지가 되어 있었습니다. 동생 민식씨는 지속적인 우울감과 불안감으로 알코올 의존증에 빠졌습니다. 최근에는 형이 생활비로 준 돈을 가상자산에 투자했다가 큰 손실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울감과 자책감이 심해져서 결국 보호자인 형과 함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습니다.

동생 민식씨는 한때 회사를 다녔지만 잘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자기주장이 강하고 윗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부인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항상 화가 나 있고 고집이 세서 한번 주장을 하면 누구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 과시하는 것을 좋아해 처지에 맞지 않는 고급 차를 몰고 다녔다고 합니다.

형 민철씨는 아이엠에프 때 아버지의 사업이 망하는 것을 보면서 큰아들인 자신이 집안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고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업을 시작할 때 실패를 경험하기도 하고 같이 일하는 동료들과 헤어지기도 했습니다.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항상 남의 말을 경청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다고 합니다. 민철씨는 자신을 과시하는 것을 전혀 하지 않았고, 대표지만 작업복을 입고 지하철로 출퇴근했습니다. 그는 제대로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동생을 보며 항상 안쓰러워했고 동생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정신의학과를 방문한 두 사람 모두 심리검사를 진행하기를 원해 함께 기억력, 집중력, 지능검사 등을 진행했습니다. 형 민철씨는 심리검사를 연달아 진행할 때 조금 전에 한 검사에 영향을 받지 않고 다음 검사를 잘 수행했습니다. 예를 들어, ㄱ검사를 한 후에 ㄴ검사를 하면 ㄱ검사 하던 것을 잊고 ㄴ검사에만 집중하는 능력이 뛰어났습니다. 그는 ‘인지적 유연성’이 매우 뛰어난 편이었습니다. ‘인지적 유연성’이란 습관화된 반응이나 사고를 극복하고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능력입니다. 새로운 상황에 맞춰 자기 생각을 조정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동생 민식씨는 인지적인 유연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특히, 자신이 어릴 때 경험한 경제적인 트라우마에 대해 강한 감정이 결부되어 있었습니다. ‘실패’ ‘가난’ ‘경제적 어려움’ 등의 단어에 우울한 기분이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민식씨에게 동반된 우울증이 과거의 트라우마에 대한 기억을 강화하고 인지적 유연성을 더욱 악화시켰습니다. 인지적 유연성의 저하로 상처받은 기억, 무시당한 기억, 억울한 기억에 사로잡혀 형과 아버지를 포함한 주위 가족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형에게 도움받는 것을 합리화할 수 있었습니다. 남에게 자신을 과장해 보이려고 하고 자신을 무시하는 느낌을 받으면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번에 일확천금을 벌기 위해 가상화폐에도 투자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형제는 같은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25년 뒤 전혀 다른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민철씨와 민식씨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인지적 유연성’을 키웠는지 여부에 따라서 크게 달라져 있었습니다. 민철씨는 항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받아들이는 습관이 있었는데, 이것이 그의 인지적 유연성을 키우고 어려운 환경에서도 잘 극복할 수 있는 원천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형 민철씨에게도 문제가 있었습니다. 온 가족을 자신이 돌보아야 한다는 책임에 너무 강하게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민철씨는 부모님, 동생뿐 아니라 사촌들까지 도움을 주고 있었습니다. 가족들은 점차 민철씨에게 의지하게 되었고 스스로 돈을 벌기보다는 민철씨에게 도움을 받는 데 익숙해져 있었습니다. 민철씨는 가족에게 도움을 주는 것에 부담을 느껴 이제 그만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가족은 오히려 민철씨에게 화를 내며 도움받는 것을 자신들의 당연한 권리로 생각했습니다. 민철씨가 온 가족을 돌보다 보니 부인과도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회사가 잘 운영되고는 있었지만 가족을 위한 지출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가족은 몰래 빚을 지고는 민철씨에게 갚아달라는 부탁도 자주 해왔습니다. 민철씨가 수시로 돈을 갚아주다 보니 빚을 지는 액수도 점점 커졌습니다.

과도한 책임감과 피해의식 치료 필요

민철씨가 지닌 인지적 유연성은 그의 큰 장점이기도 하지만 과도한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향후 위험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에도 분명한 한계가 필요합니다. 가족이 자립할 수 있는 것을 막는다면 도움이 아니라 독배가 될 수 있습니다. 민철씨가 가진 과도한 책임감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가족이 자신을 돕지 않는다고 원망하는 이야기에 휘둘리지 말고 원칙을 가지고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식씨는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인지적 유연성을 키우고 우울증에 대해서 적절한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위 사람에게 편안하게 대하는 태도,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려는 노력, 과시하지 않고서도 스스로 자존감을 유지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민식씨가 어떤 차를 타는지 무슨 브랜드의 옷을 입는지 관심이 없습니다. 인지적 유연성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자신을 향한 것으로 잘못 해석합니다. 형과 부인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폭넓게 수용하고 지금부터라도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민식씨는 자신이 아직도 중학교 때 받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과 인지적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전에 다닌 회사보다는 작지만 새로운 직장에 취직해서 윗사람이나 동료들과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이제 자신의 거품을 걷어내기로 했습니다. 형이 자신을 도운 만큼 자신도 가족을 돕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매우 예민한 사람들을 위한 책>을 썼습니다. 자세한 것은 전문의와의 상담과 진료가 필요하며, 이 글로 쉽게 자가 진단을 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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