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국민대에 연구윤리위 회의록 제출 명령 ‘6개월 내 판정’ 규정에도 8개월째 감감무소식 8년 전 문대성 의원 논문 표절은 보름 만에 판정 대학 자율 영역에 정치적 고려 개입해선 안돼
[논썰] 지지부진 김건희 논문 표절 검증, 대학과 사회의 양심을 묻다. 한겨레TV
안녕하십니까? 한겨레 <논썰>의 박용현 논설위원입니다.
오늘은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 문제를 짚어보려 합니다. 대선 기간에 매우 구체적인 표절 의혹이 제기됐고 국민대와 숙명여대가 각각 박사학위 논문과 석사학위 논문에 대해 검증에 들어갔는데, 대선이 끝나고도 넉달이 지나도록 판정이 미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논썰] 지지부진 김건희 논문 표절 검증, 대학과 사회의 양심을 묻다. 한겨레TV
‘괴팅겐 7교수 사건’을 아십니까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잠시 역사적 사건 하나를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괴팅겐 7교수 사건’을 들어보셨습니까? <그림 동화>로 유명한 그림 형제도 등장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림 형제가 독일 하노버 왕국의 괴팅겐대학 교수로 있던 1837년 일입니다. 새로 왕위에 오른 에르네스트 아우구스투스가 4년 전 제정된 자유주의 헌법을 독단적으로 폐지해버렸습니다. 이에 괴팅겐대 교수였던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달만은 동료 교수들에게 왕의 독단적 행위를 함께 비판하자고 호소했습니다. 다수가 침묵한 가운데 6명의 교수만 동참했는데 그 가운데 그림 형제도 있었습니다. 학자적 양심에 따라 행동한 대가로 이들은 학교 당국에 의해 교수직을 박탈당했습니다. 그림 형제의 형인 야코프 그림을 포함해 3명은 국외로 추방까지 당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과 행동은 독일과 유럽 전역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독일의 자유주의와 대학·학문의 자유를 확장시키는 계기가 됐습니다. 이들 7명을 ‘괴팅겐 7교수’라고 부릅니다.
이 사건이 보여주듯이 대학이 정치권력에 예속되고 학자적 양심이 침묵에 갇히면 진리 탐구라는 대학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게 되고 그 사회는 무지와 역사적 지체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1849년 독일 프랑크푸르트헌법 초안과 1867년 오스트리아헌법 등에 학문의 자유가 명시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거의 모든 나라가 학문의 자유와 대학의 자치를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있습니다. 학문의 자유, 대학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으면 더 이상 민주국가가 아니라는 게 현대 입헌국가의 공통된 인식인 것입니다.
헌법 교과서에 나오는 학문의 자유, 대학의 자치에 대해 먼저 말씀드린 이유는 지금 현실에서 그 가치가 훼손되는 징후를 보기 때문입니다. 김건희 여사의 연구부정 의혹을 두고 대학들이 보여주는 석연찮은 태도가 그것입니다.
[논썰] 지지부진 김건희 논문 표절 검증, 대학과 사회의 양심을 묻다. 한겨레TV
표절 검증 회피→조사 기간 연장→판정 연기
최근 법원(서울남부지법)은 김건희 여사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을 조사한 국민대 연구윤리위 예비조사위 회의록을 제출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국민대 졸업생들이 김 여사 논문 문제에 대한 대학 쪽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사회적 평가가 떨어졌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는데, 그 재판 과정에서 나온 조처입니다.
앞서 국민대는 지난해 7월 김 여사 학위 논문 표절 의혹이 제기되자 연구윤리위를 꾸려 예비조사에 착수했지만 “검증시효가 지났다”며 본조사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표절에는 검증시효가 있을 수 없다는 원칙에 따라 대부분의 대학이 검증시효를 폐지한 흐름에 역행하는 결정이었습니다. 게다가 국민대 스스로 교육부 실태조사에서 표절 검증시효를 폐지했다고 밝혔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결국 본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결정이었던 셈입니다. 이번에 법원의 제출 명령을 받은 회의록에는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된 과정이 담겨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국민대는 입장을 바꿔 지난해 11월 다시 조사에 들어가긴 했습니다. 하지만 조사 마무리 시점을 애초 올해 2월15일로 정했다가 대선 뒤인 3월31일로 미뤘고, 4월25일 연구윤리위가 조사 결과를 심의했지만 표절 여부에 대한 판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국민대 연구윤리위 규정에는 논문 부정 의혹 판정을 6개월 이내에 마치도록 해놓았는데 8개월이 지나도록 판정을 내리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국민대가 애초 표절 검증을 회피하려 한 것, 또 조사 종료 시점을 대선 이후로 연기한 것, 윤석열 대통령 당선 이후 판정 절차를 계속 미루는 것은 ‘권력 눈치보기’ 등 정치적 요인이 아니면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국민대는 지난 2014년에도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인 문대성 의원(국민의힘 전신인 새누리당 소속)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문제를 겪은 바 있습니다. 그때는 보름 만에 표절 판정이 났습니다. 당시 조사를 주관했던 김은홍 전 국민대 대학원장은 지난해 국민대가 김 여사 논문을 검증하지 않겠다고 했을 때 자신의 프로필에서 국민대 관련 경력을 삭제하면서까지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김건희 여사의 석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를 검증하는 숙명여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지난 2월14일 예비조사를 끝낸 뒤 다섯달 넘게 본조사 결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숙명여대 졸업생들도 1인 시위를 벌이는 등 학교 쪽에 항의하는 행동을 이어왔습니다.
이와 대비되는 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가천대 석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입니다. 역시 대선 기간에 논란이 됐던 이 논문에 대해 가천대는 지난 4월18일 “표절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최종 판정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가천대는 “표절 의심 내용은 주로 인용 부실로 인해 발생한 것이 대부분으로, 논문 자체의 원형과 독창성에는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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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고등학교만도 못한 표절 대처
만약 국민대와 숙명여대가 김건희 여사 논문을 검증한 결과 표절로 볼 수 없다는 판단을 했다면 어떤 태도를 보였을지 상상해봅니다. 가천대처럼 조사 절차를 마무리짓고 결과를 발표하지 않았을까요. 절차를 질질 끄는 태도로 미뤄볼 때,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기는 어려운 상황이 아닌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김 여사 논문 표절 의혹은 이미 언론 보도 등을 통해 구체적으로 알려진 상태입니다. 김 여사의 국민대 박사학위 논문인 <아바타를 이용한 운세 콘텐츠 개발 연구: ‘애니타’ 개발과 시장적용을 중심으로>는 언론 기사와 인터넷 블로그 글을 베끼는 등의 표절 정황이 드러났고, 김 여사가 재직했던 회사의 사업계획서 내용을 도용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습니다. 또 학위 논문 심사는 조교수 이상의 교원이 맡아야 하는데 이런 자격을 갖추지 못한 전임강사가 심사에 참여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논문 인준서의 심사위원 5명 서명이 모두 비슷한 글씨체인 점도 의문으로 떠올랐습니다. 이 논문과 함께 표절 의혹을 받고 있는 3편의 학술지 논문도 표절 검증 대상인데, 이 가운데 하나인 <온라인 운세 콘텐츠의 이용자들의 이용 만족과 불만족에 따른 회원 유지와 탈퇴에 대한 연구>의 경우 영문 제목에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라고 엉터리로 표기해 기본도 갖추지 못한 논문이라는 지적을 받았습니다.
이같은 표절 의혹에 대해 대학이 엄정히 대처하지 않는다면 진리 탐구라는 대학의 존재 이유를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적 도둑질’에 해당하는 표절은 학문적 차원에서는 더욱 엄격히 다뤄야 할 부정행위입니다. 미국에서는 대학은 물론 고등학교에서도 표절에 대해 가차없는 응징을 합니다. 표절과 관련한 대표적 소송 사례로 언급되는 ‘하우 사건’이 있습니다. 매릴랜드주 유명 사립학교인 불리스스쿨의 폴 하우라는 졸업반 학생이 표절 행위로 적발되자 학교 쪽은 징계를 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이 학생이 입시에 합격한 대학들에까지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하우는 이같은 학교의 조처가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습니다. 하물며 고등학교도 이렇게 엄정한 대처를 하는데, 대학이 표절 문제에 제대로 대처하지 않는다면 대학이라고 부르기도 창피한 노릇입니다. 더구나 학위 논문은 학문적 노력의 결정체로, 그 대학의 수준과 성취를 보여줍니다. 그런 학위 논문의 표절 의혹은 대학의 명예와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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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니아 트럼프의 ‘연설 표절’이 남긴 교훈
학위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한 부실한 대응이 혹여라도 정치권력의 영향력 때문이라면 더 큰 문제가 됩니다. 한 대학의 평판 차원을 넘어서는 일입니다. 논문을 심사해 학위를 수여하는 일은 학문적 양심과 자율이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대학 고유의 영역입니다. 여기에서 대학의 자율성이 발휘되지 못하고 외부의 영향을 받는다면 학문과 대학의 자유는 껍데기만 남을 것입니다.
과거 독재 시대에는 정치권력을 비판하는 교수들이 직접적인 탄압을 받기도 했습니다.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학위 논문을 다루는 대학 고유의 영역에 정치권력의 그림자가 드리운다면 이 역시 다를 바 없는 일입니다. 대학의 가장 본질적인 역할인 학문 탐구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더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민대와 숙명여대는 이같은 우려의 시선을 분명히 인식하고, 대학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논문 표절 검증을 엄정하고 신속하게 진행해야 할 것입니다.
이번 사안은 표절 의혹의 당사자가 대통령 부인이라는 점 때문에 큰 주목을 받고 있는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멜라니아 트럼프도 표절 문제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습니다. 2016년 대선 당시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한 연설의 일부 대목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부인 미셸 오바마의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과 흡사했기 때문입니다. 트럼프 진영은 처음엔 표절 의혹을 부인하다가 결국 연설문 작성 담당자가 표절을 인정하고 사과했습니다. 당시 한 미국 대학 교수는 칼럼에서 “이 문제가 사소하게 다뤄져서는 안된다”며 “학생들과 미래의 연설가들에게 하나의 표본이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연설문 몇 문장을 베낀 잘못까지도 무겁게 인식하고 엄중한 사회적 평가를 내리지 않으면 사회 전반에 미칠 보이지 않는 악영향이 크다는 것입니다.
정치적으로 중요한 인물, 주요 공직을 수행하는 인물 등이 표절 의혹을 받고 그것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유야무야된다면 미래세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뻔합니다. 거짓과 속임수를 써도 성공만 하면 된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주게 될 것입니다. 정직이라는 가치는 교육의 장에서 할 말을 잃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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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부인, 법무장관 딸, 교육장관…전방위 표절 의혹
이런 점에서 김건희 여사의 논문 표절 의혹은 물론이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자녀의 논문 대필·표절 의혹, 박순애 교육부 장관의 논문 표절 의혹 등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고 넘어가는 것 또한 매우 우려스러운 일입니다.
한동훈 장관 딸의 경우 사촌들과 ‘스펙 공동체’를 맺어 여러 건의 논문을 대필·표절한 의혹을 사고 있습니다. 일부 계층의 학력 대물림을 위한 편법과 부정을 드러내는 계기가 됐습니다. 입시용으로 사용할 목적이 아니었다는 믿기 힘든 해명으로 어설프게 넘길 수 없는 사안입니다. 박순애 장관의 경우 논문 표절 의혹을 받는 인물이 교육과 학술을 관장하는 교육부 장관에 임명됐다는 점에서 모순의 극치입니다. 그런 박 장관이 김 여사 논문을 검증하는 국민대·숙명여대를 감독한다는 것도 이율배반입니다.
표절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회는 거짓과 비양심의 사회입니다. 지금 대통령 부인, 법무부 장관 자녀, 교육부 장관 등이 연루된 표절 의혹들은 학문의 자유라는 헌법적 가치와 우리 사회의 도덕성, 미래세대의 교육과 관련한 중대한 시험대라고 할 것입니다. 정당한 결말을 맺을 때까지 감시의 눈길을 거둬서는 안되는 이유입니다.
기획·출연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연출·편집 조소영 피디
도움 채반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