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도곡동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집 앞에서 면담요청서를 전달하려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14일 경찰에 체포됐다 풀려났다. 전장연 제공
휠체어 장애인이 경찰 조사를 받으려고 관공서인 경찰서에 찾아갔는데 엘리베이터가 없다. 현장에서 경찰에 연행될 처지였지만 장애인 콜택시가 없어 결국 석방됐다. 다소 황당해 보이는 두 사건이지만, 장애인 이동권의 현실을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장애인 활동가들이 이동권 시위 등을 벌이다 경찰 조사·체포 과정에서 드러나게 된 이 사건은 장애인 이동권의 현 주소기도 하다.
15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전날 밤 10시20분께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장과 이규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영상활동가 장아무개씨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집 앞에 도착해 면담요청서를 받아달라고 요구하다가 주거침입 혐의로 경찰에 현장 체포됐다. 이들이 들고 간 요청서엔 내년도 예산안에 장애인 이동권 등 장애인권리예산을 반영해달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휠체어를 탄 이형숙 회장과 이규식 대표를 경찰서까지 연행할 이동 수단을 구하지 못해 현장에서 바로 석방 조처를 내렸다. 이 회장은 <한겨레>에 “현장 출동한 경찰이 체포구속 피의자 신체 확인서, 미란다 고지 확인서 등 서류를 쓰게 하고 우리 활동가들을 1층으로 연행했다. 이후 경찰이 우리를 경찰서로 데려갈 장애인용 차량을 1시간 동안 알아봤는데 결국 구하지 못했다”며 “결국 ‘지금 석방하고, 나중에 조사받으러 오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 체포된 활동가들은 추후 서울 수서경찰서로 출석해 조사받을 예정이다. 수서경찰서 관계자는 “반드시 연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시간이 걸렸어도 이동 수단을 구했을 것”이라며 “야간인 데다 휠체어 탄 장애인분들이라 체포 상태로 가기 어렵고 석방할 만한 사유가 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엔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이어온 전장연 등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은 교통방해 등의 혐의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혜화경찰서를 찾았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다”며 조사를 거부하기도 했다. 장애인 활동가들은 공공기관인 경찰서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장애인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편의증진법) 위반”이라며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조사받을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다시 경찰서를 찾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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