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6월28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실에서 <한겨레>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인터뷰는 재미있었다. 대표적인 진보 사회학자 출신인 조 교육감은 ’진보의 위기’를 묻는 질문에 제국주의와 민족해방운동의 역사까지 언급하며 ’민주화 시대’의 한계와 ’포스트 민주화 시대’를 조명했다. 요즘 이런 거대 담론으로 현시기 문제를 들여다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조 교육감은 서울에서 세번째 연임에 성공한 첫 교육감이다. 매크로한 그의 인식은 세번째로 서울 초중등 교육을 이끌어가는 데도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는 공화적 가치의 교육 필요성을 강조했고, ’민족적 민주시민’ 교육에서 ’세계시민형 민주시민’ 교육으로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지향이 학교 현실에서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인터뷰는 6월28일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교육감실에서 진행했다.
― 8년 전 처음 서울시교육감에 당선됐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교육정책을 보는 시각 또는 지향에서 달라진 것이 있습니까? 어떤 점이 바뀌었고 어떤 점이 바뀌지 않았습니까?
“8년 전 처음 당선됐을 때 개혁의 초점은 주로 과거의 일제고사형, 권위주의적 학교와 교육에 대항하는 것이었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 저는 단지 과거와의 싸움 뿐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 대한 종합적 책임성을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지점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교권에 대한 생각이 한 예일 수 있습니다. 1기와 2기엔 학생인권을 강화하고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많이 두었고 교권의 중요성엔 상대적으로 이해가 소홀했습니다. 이제는 다릅니다. 학생인권조례 때문에 교권이 무너졌다는 비판을 반박하는 차원을 넘어, 더 적극적으로 교권 보호를 위한 노력을 하려 합니다.”
― 최근 3연임에 성공한 뒤 하신 말씀 중 “(진보의) 보완적 혁신과 혁신적 보수가 경쟁하는 것이 진정한 선진국의 길이고 보수·진보의 공존이다”라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무슨 뜻으로 하신 얘긴지,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제가 보완적 혁신의 길로 가겠다는 것은, 그동안 저한테 쏟아졌던 보수의 비판에 방어적으로 접근하지 않겠다는 거죠. ‘내로남불’에 대해서 그것의 과도함을 지적하는 방어적 접근법을 쓰지 않겠다, 오히려 비판에 담겨 있는 합리적인 핵심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혁신교육의 확장 속에 융해해 보겠다는 뜻입니다. 가령 기초학력 문제에서 더 책임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거나, 학생 인권만 강조하다 교권이 붕괴된 상황을 방치했다는 지적에 대해서 열린 자세로 비판을 받아들이려 합니다. 기초학력 같은 경우는 적극적 보완 대책을 하고 있지만 더 확장된 노력을 하겠다는 취지고요, 교권 문제에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적극적으로 교권 보호를 향한 더 강력한 조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선 선생님의 교육권을 확고하게 보장하는 게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육 분야에선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과거엔 보수 쪽이 무상급식 등 보편적 복지에 강력히 반대했지만 이번 선거에선 보수 후보들이 아침 무상급식 공약을 내걸었습니다. 또 학력이라고 하면 예전에는 보수의 의제라고 여기곤 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진보 후보인 제가 기초학력 보장을 아주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진보뿐 아니라 보수 내에서도 다양한 노선이 경쟁하고 있습니다. 한편에선 학생인권 조례를 폐지하자거나 일제고사를 부활하자는 퇴행적인 노선이 있지만, 다른 한편에선 인공지능 등 과학기술의 성과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자는 입장이 있고 혁신 성과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는 혁신적 보수 노선도 있습니다. 퇴행적 보수와는 함께하기 어렵습니다만, 혁신적 보수와는 함께 할 수 있는 영역이 아주 넓다고 생각합니다.”
― 6.1 지방선거에서 전국적으로 진보쪽 9명, 보수쪽 8명이 교육감에 당선됐습니다. 양쪽이 팽팽해서 첨예한 대립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습니다. 얼마 전 조 교육감이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의장이 되셨는데, 지금 그런 생각이시라면 갈등이 완화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육이란 건 보수와 진보를 횡단하는 공통의 국가적 과제에요.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공교육이 최대치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데엔 이견이 있을 수 없죠. 이념적 공격이 아니라 공통의 주제를 놓고 함께 고민한다면, 또 보수 교육감이 잘하는 보완 정책을 저희가 적극 벤치마킹하는 식으로 간다면, 그것 역시도 공존의 정책이 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저는 최근에 임태희 경기교육감이 초중등 교육 재정을 대학으로 나눠주려 하는 데 반대 입장을 표명한 것을 적극 환영하는 쪽입니다. 보수 교육감들도 초중등 교육을 관장하는 입장에 서게 되면, 충분히 (합의할 만한) 공통 분모들이 있다고 봅니다.
다만, 갈등 의제를 무시하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자사고 폐지 등 갈등 의제는 분명히 있고, 이와 함께 공통 의제를 중심으로 하는 공존의 장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죠. 입장이 다르면 그룹별로 다양한 입장을 표명해서 국민이 판단하도록 하면 됩니다. 그래서 저는 단순 과반수로 의결해서 시도교육감협의회 입장을 강행한다거나, 일부 의견을 시도교육감 전체 의견처럼 국민에게 전달하거나 포장하는 건 절제하려고 합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달 28일 한겨레와 인터뷰하는 모습.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진보의 위기’라고 흔히 말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잇딴 선거 패배 뿐 아니라 진보정당의 위축, 시민사회단체의 쇠퇴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진보세력 위기의 본질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얼마 전 동북아평화경제협회에서 ‘포스트 민주화와 시대전환’이란 주제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포스트 민주화 시대’ 또는 ‘민주화 이후 시대’라는 문제 설정을 하고 그 시각에서 민주진보의 혁신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접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민주화 시대를 겪어왔잖아요 . 민주주의 원리를 가지고 평등을 확대하는 경로가 민주화 시기인데 그 배경에는 세계사적 변화가 있었죠,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확산이라는 변화가 . 19세기 말 이후의 제국주의 발호를 1차 지구화 (세계화 )라고 한다면 , 1차 지구화는 1990년 무렵 소련 붕괴로 막을 내리죠 . 이때 국가사회주의가 자체 붕괴하고 유럽의 사민주의적 복지국가도 동력을 잃어버립니다 . 자본주의 대안이 사라진 것이고 , 여기서 2차 지구화가 시작되죠 .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자유주의 지구화인 거죠 . 제가 왜 이 얘기를 하냐 하면 , 1차 지구화가 끝나가는 시점에 우리는 ’민주화’라는 진보적 운동이 시작돼서 지난 30년간 2차 지구화의 큰 흐름 속에서도 여전히 역동성을 갖고 전개가 된 것이기 때문이죠. 1차 지구화 (제국주의 )에 대응한 민족해방운동과 같은 역동적 투쟁이 세계적으로 막을 내리는 시기에 , 우리는 거의 유일하게 ‘민주주의를 통한 평등의 확대 ’라는 경로를 역동적으로 개척해온 겁니다 . 이것이 지금 전환적 위기에 직면해 있는 것이죠 . 역동적 민주화의 새로운 전환적 위기가 출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도 등장한 것이고 , ‘진보의 위기 ’ 본질도 여기 있다고 봅니다 . 그렇다면 이 전환적 위기를 직시해야 합니다 .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되어 위기가 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반성적으로 위기를 직시하고 대안적 경로를 열어가야 합니다. 이게 진보에겐 중요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국 사회의 진보 세력은 ‘87년 체제’의 기반 위에서 성장하고 영향력을 넓혀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권과 노동권 등 제도적 민주주의 진전이 진보의 최대 과제고 성과였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제 ‘87년 체제’는 끝났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87년 체제와 민주주의적 사명이 일단락됐다는 시각을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지난 민주화 30년은 기본적으로 천사 대 악마의 투쟁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진보는 과잉 천사화되고, 보수는 과잉 악마화된 건지도 모르죠. 정치는 기본적으로 투쟁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사회·경제적 갈등을 반영하는 게 정치니까요. 완전한 평등주의 사회가 실현되지 않는한 투쟁의 정치는 소멸할 수 없는 겁니다. 그러나 공존의 정치를 만들어갈 수 있는 영역들이 이젠 있습니다. 30% 정도는 공존의 정치를 만들어가자는 게 제 주장입니다.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새롭게 배제되는 집단과 연대하는 ‘정의의 전쟁’은 민주화 30년의 연속선상에서 앞으로도 계속 지속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전쟁의 마인드로 모든 의제에 대응하는 건 벗어나야 합니다. 저는 그걸 7대 3으로 나눠 대응하자, ‘7대 3의 법칙’이라 부르고 싶어요. 민주주의에는 투쟁의 정치와 공존의 정치가 있습니다. 70%는 투쟁의 정치를 지속해야 하지만, 30%는 공존의 정치의 길을 열어야 합니다. 내로남불 비판에 항변할 게 아니라, 내로남불이 제기된 30%의 기반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한 예로, 지금 방송통신위원장과 국민권익위원장,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등의 사퇴 여부가 논란입니다. 이것을 투쟁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면 민주진보 세력이 이니셔티브를 가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공존의 이니셔티브를 발휘해야 하는 지점입니다. 양산 사저에서의 소음시위에 대항해서 서초동 사저에서 소음시위를 하는 것이 민주진보 세력에겐 후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측면이 있지만, 그건 민주화 과정에서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던 세력이 ‘똑같은 집단’이 되는 격하 과정이기도 합니다. 저는 정권교체기마다 반복되는 인사 논란, 임기 논란에 대해 오히려 일반적 규칙을 만들자는 식으로 ‘공존의 정치’ 이니셔티브를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촛불혁명으로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을 때 이런 것들을 해야 했었는데, 윤석열 정부에게 기회가 넘어간 셈이지요. 그러나 검찰공화국을 연상케 하는 초기 대응을 보면 이건 연목구어가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러니 공수가 바뀐 야당이 이걸 주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지난 28일 한겨레 인터뷰에서 답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자기 성찰’이란 화두와 연관이 되는 건데요, 진보가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에 위기를 직시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성찰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동의하십니까?
“상대를 악마화하는 것을 통해 자기 정당성을 확인하려 드는 진영 논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천사에게도 악마의 속성이, 악마에게도 천사의 속성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내가 악마처럼 보는 세력에게도 배울 점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게 공존의 교육, 공존의 사회를 위한 첫걸음입니다. 상대를 악마 취급하고, 조롱하기에 급급한 진영 논리를 활용하는 것은 정치적으로 아주 손쉬운 선택인데, 이렇게 손쉬운 길에 안주한 탓에 진보 진영의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다 아시겠지만, 우리나라 헌법 제1조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민주’에 대해서만 치열하게 천착했지 ‘공화’에 대해선 치열하게 고민하지 못했습니다. 민주공화국은 ’민주’와 ’공화’의 두 기둥이 함께 지탱한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하고, 진보 세력 뿐 아니라 진보 언론도 공화의 가치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 공화적 가치란 게 좀 추상적이긴 하지만 민주주의에 비해선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과 자발적 헌신 등을 좀더 강조하지 않습니까? 개인주의적 성향이 팽배한 현실에서 공화적 가치를 확산하려면, 그건 결국 교육을 통해서 이뤄야 하는 게 아닐까요?
“그 점에서 저도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교육의 본질로 돌아가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민주화 시대엔 기본적으로 독재라는 적을 상정했던 거잖아요? 독재는 민주시민의 자유로운 권리 추구와 이익 추구, 방어를 억압한 체제였으니까 민주화 시대에는 모든 개인과 집단이 자기 권리 추구와 이익 추구에서 전투적이었습니다. 이것은 당연하고요, 그런데 지금은 개인의 권리 및 이익 추구가 상호 충돌하는 상황에 와 있는 겁니다. 학교 현장에서도 전투적인 개인과 개인, 전투적인 학교 구성원과 구성원이 충돌하는 현상이 지금 많이 나타납니다. 개인이나 자기가 속한 집단의 이익과 충돌하면, 반대하는 겁니다.
이런 시기에 ‘공화’란 것은, 충돌하는 개인과 집단이 함께 존재하는 단위의 목표와 가치가 무엇인지 돌아보는 데서 시작하는 겁니다. 학교사회에선 그게 뭐냐, 그것은 학교 구성원들의 역할이 다르지만 모두 아이들의 교육에 헌신하는 목표를 가진 존재라는 점입니다. 즉 아이들 교육에 도움이 되는가의 관점에서 자신의 권리와 이익을 크게 돌아볼 필요성이 생기는 겁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면, 40년 이상된 노후 학교를 개축하는 그린스마트스쿨 사업이 있습니다. 그런데 일부 학교에선 학부모들의 반대가 큽니다. '내 아이가 다니는 동안에는 공사하지 말라'는 것이죠. 재학생 학부모가 반대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예비 학부모가 반대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계속 미루다보면 개축을 영원히 못하고 땜질식 환경개선만 하게 될 겁니다. 개인 이해와 공동체 이해의 조화를 생각하는 관점이 필요해지는 대목이죠.”
― 그걸 위해선 교육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수밖에 없을 거 같습니다.
“제가 이번 선거에서 ‘공존의 교육’을 표방했던 게 바로 그것과 관련 있습니다. 제가 내건 혁신교육의 가장 핵심이 민주시민 교육인데, 저는 이걸 훨씬 확장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공화적 민주시민 교육’으로 확장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론 ‘민족적 민주시민’ 육성의 관점을 넘어서 지구 전체를 공동체의 단위로 보고 ‘세계시민형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방향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제국주의에 반대한 민족해방운동의 시대에는 오히려 국제주의적 시각이 강했어요. 그런데 이게 점점 위축되어 온 거 아닙니까? 최근 트럼프 시대의 퇴행이나 유럽의 극단주의 발호도 그런 건데, 그럼 우리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2차 세계화에 대응하는 대안적인 지구적 질서의 비전을 가르쳐야 한다고 봅니다. 신자유주의가 국가적·민족적 질서를 해체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극단주의가 나오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이방인들에 대한 혐오와 증오도 확대되는 것이거든요. 저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민주주의 역동성을 확장해서, 세계적 차원의 퇴행기에도 평등의 행진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국제개발협력(ODA) 예산을 1% 수준까지 확대해서 지구적 공존과 공화를 추동하는 나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기후위기 시대에 생태적 전환을 선도하는 국가가 되고, 저도 서울교육 차원에서 생태전환 교육으로 이런 선도에 일조하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서울의 생태적 전환이 기후위기 시대에 전세계 다른 도시의 모범이 되는 일도 불가능하진 않을 겁니다. 중국이 중화주의적 굴기(倔起)만 있고 지구공동체적 공생의 마인드는 없는 거잖아요, 일본도 비슷하고요, 우리는 그걸 뛰어넘자는 것이죠. 저는 대한민국이 잘 사는 나라일 뿐 아니라 존경받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 조 교육감님은 1990년대초 대표적 시민단체인 참여연대를 만든 주역 중 한사람입니다. 그런데 과거에 비하면 시민사회 단체의 영향력이나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 것처럼 보입니다. 시민사회의 위기는 우려되는 지점인데요, 이런 흐름을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민주화운동 시대엔 국가·시장·시민사회 3개의 영역에서 시민사회 단체가 국가 개혁과 시장 개혁을 추동하던 시대였던 거죠. 시민사회의 투명성·개혁성·연대성·공동체성의 원리가 권위주의적 국가, 관료적 국가, 신자유주의적 국가, 자본 일변도 시장의 개혁을 추동했던 거고,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 세력이 과잉 천사로 인식됐던 지점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전환기를 맞으면서 국가·시장에 적용했던 비판의 기준이 부메랑이 돼서 시민사회에 되돌아온 것이죠. 물론 항변할 지점은 있지만, 결국은 시민사회 단체가 적용했던 기준을 뛰어넘는 방식으로 자기 강화를 할 수밖에는 없는 거죠.
이게 하나고, 두 번째는 시민사회가 국가 개혁과 시장 개혁을 추동해서 성공을 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지금의 위기는 실패의 위기가 아니라 성공의 위기인 겁니다. 지금 시민사회 목소리가 축소된 건 시민사회가 요구했던 의제가 국가의 개혁 속에서 일정 부분 실현이 됐기 때문이죠. 일단 성공한 다음엔 그 다음 단계의 새로운 의제를 개발하고 추동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춰야 하는데, 모든 게 척박했을 때는 문제 제기만으로 큰 의미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게 아닌 시대인 거죠. 성공의 위기이기 때문에, 성공 이후에 새로운 이니셔니브를 위해서 자기 강화를 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은 것이지요. 시민사회는 대체로 하나의 의제와 그것의 최대주의적 실현에 집중합니다. 가령 부동산 해법에선 분양가 상한제나 종부세 강화, 아파트 원가 공개 등 개별화된 해법에 주목합니다. 하나하나를 놓고 보면 다 옳은 얘기인데, 이런 부분적인 선(善)만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이젠 증명이 된 셈이거든요. 그렇다면 부분적 문제 제기를 넘어서 종합적인 대안을 만드는 단계로 시민사회 단체들이 나아가야 하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국가 개혁과 시장 개혁엔 여전히 시민사회의 압박과 선도가 중요하므로, 시민사회 주체들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이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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