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n)번방, 박사방 사건 등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해마다 빠르게 증가하고 지능화되는 가운데, 디지털 성범죄를 수사하는 경찰관의 88%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30일 발행된 한국경찰학회보(24권3호)에 실린 ‘디지털 성착취물 수사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실태조사 및 관리방안 연구’를 보면, 디지털 성착취물 범죄를 전담하는 사이버성폭력 전담수사팀 수사관(25명)의 경우 88%(22명)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고위험군으로 분류됐다. 연구진은 사이버 업무 분야 3개 부서 65명을 조사했다.
경찰은 지난 2018년부터 디지털 성착취물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청과 전국 17개 시도청에 사이버성폭력 전담수사팀을 운영하고 있다. 수사팀은 수사과정에서 비정상적이고 충격적인 성착취물에 많이 노출되고 있지만, 수사관들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수사를 진행하며, 이에 대한 대책이나 특별한 관리 역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연구진의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연구진은 지난 2020년 10월 경찰청과 시‧도경찰청에서 사이버수사 부서에서 근무하는 사이버범죄수사팀·사이버성폭력 전담수사팀·디지털포렌식센터 수사관과 분석관의 외상 경험 비율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수준을 측정했다. 연구진은 수사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정도를 측정하기 사건충격척도 검사(IES-R-K)를 사용했다. 22개 평가 항목으로 구성돼있으며 총점은 0~88점 사이로, 17점 이하는 정상, 18점 이상~24점 이하면 부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25점 이상이면 완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진단한다.
분석 결과, 디지털 성범죄를 전담하는 사이버성폭력 전담수사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수치 평균은 45.12로 나타났다. 반면 인터넷 사기·사이버 명예훼손 등을 담당하는 사이버범죄수사팀의 평균 수치는 29.04, 형사·여청‧교통·사이버 범죄수사 등에 포함된 디지털 증거물을 분석하는 디지털포렌식센터의 평균 수치는 22.11이었다. 연구진은 “디지털 성착취물에 대한 노출 횟수가 많을수록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이 높게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국내 수사기관에서는 현재 디지털 성착취물로 인한 수사관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한 관리 방안이 없는 실정”이라며 △독립된 업무공간‧휴게공간 설치 △매달 1회 이상 심리상담 의무화 △영상을 자동 분류해주는 불법촬영물 추적시스템 활용해 영상 직접 시청 최소화 등을 대책으로 제시했다.
서혜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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