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벌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법무부, 촉법소년 연령 기준 낮추기 위한 TF 꾸려
보호처분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7명에게 들어본 ‘소년심판’ 이야기
법무부, 촉법소년 연령 기준 낮추기 위한 TF 꾸려
보호처분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7명에게 들어본 ‘소년심판’ 이야기
![부산가정법원 소년부에서 보호처분을 받았던 청소년들이 2022년 6월14일 부산지방법원을 바라보고 있다. 부산가정법원 소년부에서 보호처분을 받았던 청소년들이 2022년 6월14일 부산지방법원을 바라보고 있다.](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970/1529/imgdb/original/2022/0626/7116562447365584.jpg)
부산가정법원 소년부에서 보호처분을 받았던 청소년들이 2022년 6월14일 부산지방법원을 바라보고 있다.
연령기준 하한, 가장 손쉬운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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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13살 정훈이와 엄마: 혼자 남겨진 소년
방임으로 인한 후천성 경계성 지능장애 정훈이는 혼자 산다. 늘 끼니를 챙겨먹는 게 걱정이다. 학교나 센터에서 밥 먹을 때가 많다. 13년 정훈이 인생에서 주양육자는 몇 번이나 바뀌었다. 친부는 행방을 모른다. 아주 어릴 때는 엄마, 양부와 살았다. 두 사람이 이혼하면서 보육시설에 맡겨졌다. 엄마와 이혼한 양부가 정훈이를 다시 데려와 키웠지만 손찌검이 잦았다. 결국 지금은 엄마가 정훈이 집 가까운 곳에 집을 얻어 남자친구와 살면서 가끔 들른다. “사실상 아동방임인데 아이가 지금 폭력적 성향도 있어서 (아동학대로) 신고한다고 제대로 돌봐줄 보육시설을 구하기도 힘들어요. 학교에서 친구나 선생님이랑 소통하는 것도 힘들어해요. 원래 장애가 없는 아이였는데, 후천적으로 경계성 지능장애가 온 상태예요.” 정훈이를 돌봐줄 이는 어디에도 없다. 부모는 같이 살지 않고, 학교는 안 가는 날도 있다. 지역사회에서 돌봐주는 어른은 없다. 그나마 핫도그 갈취 사건 이후 보호처분을 받아 낮에는 센터를 다니지만, 센터 수업에 잘 응하지 않고 낮잠을 자거나 돌아다닌다. 그래도 “이 정도 보호라도 할 수 있는 게 다행”(박 센터장)이다. 정훈이처럼 학대·방임을 겪은 뒤 범죄를 저지르게 된 아이는 특별히 예외적인 경우일까. 2021년 3월 법무부 산하 소년보호혁신위원회가 발표한 내용이 있다. 소년보호관찰대상자(상대적으로 가벼운 보호처분을 받은 소년부터 소년원 임시퇴원자까지 대상이 됨) 915명을 조사했더니, 절반 가까운 43.4%(397명)의 아이가 학대와 방임 등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겪은 부정적 경험 가운데는 신체학대(45%)와 정서학대(32%)가 가장 많았고 방임(19%)과 성학대(4%)도 있었다. 특히 소년원생 173명만 따로 살펴봤더니, 90.8%가 1가지 이상 정신질환을 갖고 있었다는 조사도 있다. 2가지 이상 정신질환이 나타난 경우, 높은 재범률을 보이고 반복범죄가 일어났다. 소년보호혁신위원회는 자료를 통해 “청소년 범죄와 정신건강의 높은 연관성이 여러 연구를 통해 알려져 있다”고 지적했다. 정훈이는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가정도, 학교도, 지역사회도, 국가도 책임지지 못한 일을 정훈이의 ‘노력과 의지’만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소년보호재판을 1년6개월간 담당했던 박주영 판사는 저서 <어떤 양형 이유>에 다음과 같이 썼다. “해결할 수 없는 고통에 신음하고, 인생이라는 난바다에서 좌초해 침몰해가는 국민을 내버려두는 것이 맞는가. 아이를 구하라고 부모가 있고, 침몰하는 배에서 국민을 구하라고 국가가 존재하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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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13살 세형이와 친구들: 소년은 자라서 무엇이 될까
“엄벌한다고 (옛날에 내가 저질렀던 잘못을) 막을 수 있었단 생각은 안 들어요. 죽고 싶다, 살아갈 의미가 없다, 이런 생각만 하는 상태에선 주변에 한 명이라도 나쁜 사람을 만나기 시작하면 예방이 안 돼요”21살 세형이가 말했다. 180㎝ 넘는 키에 몸무게 150㎏에 육박하는 체격의 세형이는 사기·절도·특수강도 등의 혐의로 소년원에 송치됐다가 나왔다. 세형이도 정훈이처럼 어린 시절부터 학대를 경험했다. 유치원 때부터 아빠에게 맞았다. 초등학교 시절엔 맨발로 도망쳐 경찰서에 간 것만 세 차례였다.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때마다 결국 아빠가 있는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경찰도 지켜주지 못하는데, 누구도 자신을 지켜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_______
13살로 낮추면 12살이 가장 많아질 것 세형이의 첫 범죄는 만 13살 때였다. 친구의 ‘아는 형’이 세형이 이름으로 개설된 통장을 빌려가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잠깐 통장이 필요한데 통장을 빌려주면 5만원인가 10만원을 준다고 했어요. 중1한테는 그 돈도 정말 커 보이고, 심각성도 잘 몰랐고요.” 비행청소년들끼리 하는 용어로, 세형이가 “총대를 멨다”. 나중에 그 형에게 “통장을 어디에 쓰냐”고 물었더니, 경찰한테 걸리는 건 아니라고만 했다. 세형이는 자신이 희생양이 된 것처럼 만 13살 아이들이 “형들의 타깃”이 될 것을 걱정했다. 이제 만 11살이 된, 12살이 된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세형이가 본격적으로 범죄를 시작한 건 고등학교 2학년 때다. 자살 충동을 매일 느끼다 결국 집을 나와 친구에게 ‘죽고 싶다’고 털어놨는데, 친구는 ‘이왕 죽을 거면 돈 좀 만져보고 죽으라’고 했다. 그날 밤 세형이는 문을 닫은 한 편의점에 또래 친구와 들어갔다. 비슷한 절도와 사기를 몇 번 반복했다. ‘이게 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늦었다. 세형이가 빠져나가려 하자, 친구는 처벌 수위를 언급하며 협박했다. “나중에는 일부러 잡히고 싶어서 사람들 많은 시내에서 금을 거래하자고 만나 특수강도를 했어요. 아이들이 ‘이건 무조건 잡힌다’고 말렸는데 일부러 ‘할 수 있다’고 하고 나갔어요. 시내니까 옆에서 보던 사람들이 신고했는데, 도망치기 싫으니까 발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그 결과 세형이는 소년원에 송치됐고, 그제야 범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세형이처럼 형사미성년자 때 범죄를 시작한 아이들은 한 해에 몇 명일까. 경찰청의 ‘촉법소년 소년부 송치 현황’ 자료(2022년 3월 기준, 이종배 국민의힘 의원실 제공)를 보면, 2021년 법원 소년부로 송치된 촉법소년은 8474명이다. 2020년엔 9606명, 2019년엔 8615명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학교폭력 피해자단체 활동가는 “찾아오는 피해자들을 보면 13살에 범죄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앞의 경찰청 자료에서 만 10~13살 촉법소년 범죄 가운데 13살이 저지른 범죄가 가장 많다. 촉법소년 중 만 13살이 가장 높은 연령이니, 범죄가 가장 많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촉법소년 연령기준을 만 13살로 낮추면, 바로 그 밑의 만 12살 범죄자가 가장 많아질 것이다. 센터에서 만난 아이들은 “촉법소년 연령을 낮춰도 범죄를 막지는 못한다”고 입을 모았다. 소년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핵심 연결고리는 ‘주변 관계’라고도 말했다. 부모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중학교에 들어가는 만 13살부터 급격히 또래 집단, 형과 누나(오빠와 언니)들과 자주 어울린다. 그러면서 집 밖에서 범죄를 배우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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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13살 현우와 형들: 무서운 기억
마음만 먹으면 범죄 기회인 곳 무면허운전, 폭행 경험이 있는 채아(16)도 “아는 아이 중에 선배가 강요해서 성매매하는 애가 있는데, 걔는 보복을 제일 무서워한다”고 말했다. “오빠나 언니들도 처음에 돈 가지고 유혹하고 ‘(너는) 촉법소년이라 안 들어간다’고 하면서 잘해주거든요. 근데 한 번이라도 (성매매를) 시작하면 후회해도 이미 늦은 거예요. 가족한테 수치스러운 일을 알릴 거고, 소문이 다 날 거고. 경찰에 신고하면 그 선배 친구들이 와서 보복하고요.” 13살 때 중고거래 사기로 첫 범죄를 시작했고 돈을 뺏으려 감금치상 범죄를 저질렀던 현우(18)는 “애들끼리 ‘촉법소년이라 안 걸린다’고 얘긴 하는데, 범죄 전에 앞으로 어떻게 될지 상황을 정확히 알고 저지르진 않는다”고 말했다. 오히려 현우나 아이들은 범죄를 저지른 뒤 보내지는 소년분류심사원과 소년원에서 어떤 곳인지 알게 된다고 했다. 아이들은 소년원을 교화시설이 아니라 “안 가보면 모르는” 두려운 곳으로 묘사했다. 이동의 자유가 없는 곳, 휴대전화를 쓰지 못해 주변과 연락이 차단되는 곳, 교도소처럼 서열이 있어 폭행도 어느 정도 묵인되는 곳, 각종 범죄를 저지른 애들이 방을 같이 써서 마음만 먹으면 널린 게 범죄 기회인 곳. 현우는 이곳에 다시 가지 않으려면 “(주변 사람들과) 연락을 다 끊어야 한다”고 말했다.
④ 13살 소년을 걱정하는 어른들
소년범의 삶에 주목한 영국 지금 한국 사회에서 소년범죄의 밑바탕에는 가정, 학교, 지역사회, 국가의 부재가 자리잡고 있다. 어디서 부재가 시작됐는지, 그 공백의 지점마다 왜 아이를 보살피거나 통제할 효과적인 장치가 없었는지부터 조사하고 진단해야 한다. 이 문제를 놔둔 채 ‘촉법소년 연령을 하향하자’고만 하는 주장은 공허할 수밖에 없다. 박용성 센터장은 “아이를 조사하고 지원하는 여러 체계가 법무부, 교육부, 여성가족부 등으로 흩어져 전혀 연계되지 않고 있다. 소년범죄 정책을 지휘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그래야 공백을 메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아이도 한순간에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공백을 메울 체계가 필요하다. 새로운 삶을 시작한 18살 현우에게 “예전에는 범죄를 반복했는데 어떻게 이제는 끊었는지, 계기가 있었는지”를 물었더니, 현우가 답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떻게 변해요. (범죄와 연관됐던 주변 사람들이랑) 한 명씩 연락을 끊는 거죠. 센터 쌤이 제가 어딨는지, 뭐 하는지, 무슨 생각 하는지 자꾸 귀찮게 연락하더라고요.(웃음)” 시종일관 무표정,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대화하던 현우는 이 말을 할 때만 “(쌤한테) 말하지 말라”며 살짝 웃었다. 소년은 자신을 바꾼 “특별한 어른도, 특별한 계기도 없다”고 말했지만, 그 조금씩 젖어드는 어른들의 관심이 아이를 바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산=글 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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