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15일 밤 구속영장이 기각돼 서울동부구치소에서 나와 귀가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기가 남은 산업통상자원부 산하기관장들의 사표를 받아냈다는 혐의를 받는 백운규 전 장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검찰 수사의 적절성을 두고 정치권 공방이 커지고 있다. 검찰은 이 사건과 구조가 유사한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대법원 유죄 판결에 기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3년 동안 쥐고 있던 고발 사건을 대선 직후인 지난 3월 말 수사를 시작해 정치적 의도를 의심받았던 검찰은 ‘대법원 판례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고 해명한 바 있다.
지난 1월 대법원은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혐의가 인정된다며 징역 2년 실형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환경부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 제출 요구 △임원 내정자에 대한 임원추천위원회 통과 지시 △내정자의 추천위 탈락시 ‘적격자 없음’ 의결 요구 등이다. 백 전 장관이 받는 혐의도 유사하다. 2017~18년 산업부 산하 13개 기관장의 사표를 받아내도록 지시하고, 면접 예상 질문지 유출 등 혐의를 받는다.
혐의가 성립되려면 백 전 장관 요구로 기관장들이 자기 의사에 반해 사표를 냈다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법원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사표 요구와 사표 제출의 인과관계, 잔여 임기가 얼마나 남았는지를 주로 살폈다. 당초 검찰은 김은경 전 장관이 13명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한 게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기소했는데, 법원은 두 가지 기준에 따라 4명만 혐의를 인정했다. 법원은 사표 요구 전부터 사직 의사가 있었던 임원들은 사표 제출의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는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또 남은 임기가 없는 임원들에게 사표를 받은 것도 무죄로 판단했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19일 “법원은 직권남용죄 인정에 까다롭다. 사표 요구를 상대방이 강압이라 느꼈는지 등도 따져봐야 하기 때문에, 검찰이 사실관계를 꼼꼼히 조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구속영장에 백 전 장관이 공공기관 직원 등을 시켜 기관장 내정자에게 면접 예상 질문지 등을 사전에 제공하는 등 부당 지원했다는 혐의도 적용했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도 이런 부당 지원이 문제가 됐다. 검찰은 김 전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공모해 환경부 직원들에게 자기소개서 작성 및 면접 예상 질문지 등을 작성해 제공하도록 한 것이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봤다. 하지만 법원은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 판례는 공무원 직무 범위에 해당하지 않는 일을 강요하거나, 직무 범위 내의 일이라면 구체적인 직무집행 기준을 위반한 경우에만 직권남용죄를 인정한다. 환경부 사건의 경우 임원 임명절차와 관련된 공무원들의 직무규정 등이 구체적으로 정해진 게 없어 무죄라는 것이다.
산업부 사건 역시 직무범위 포함 여부, 구체적 직무규정 존재 여부에 따라 직권남용 유무죄 판단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출근하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공동취재사진
검찰은 산업부 산하기관장에 대한 사표 요구가 단순히 백 전 장관만의 결정이 아니라고 보고 윗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실 행정관이었던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1차 수사선상에 올려둔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7일 산업부 블랙리스트 수사 논란에 대해 “민주당 정부 때는 안 했냐”며 검찰에 힘을 실어줬다.
환경부 사건에서 법원은 ‘윗선 개입 가능성’을 판결문에 언급했다.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 선정 과정에서 청와대 추천 몫은 조현옥 당시 청와대 인사수석이 주재하는 ‘청와대 인사간담회’에서 단수후보자를 선정한 뒤, 신미숙 전 비서관 등을 통해 환경부에 통보했다고 적었다. 법원은 신 전 비서관에 대해 “피고인의 지위에 비추어 내정자를 확정하고 그에 대한 지원을 결정하는 것은 피고인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는 점” 등을 유리한 양형이유로 들기도 했다.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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