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10일 청주교도소를 방문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 인선 등과 관련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한 뒤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김오수 전 검찰총장이 2022년 5월6일 ‘검찰 수사권 축소’에 반발하며 물러난 뒤로 40일이 넘었지만, 검찰총장 후임 인선이 늦어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금융감독원장,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등 요직에 검찰 출신을 잇달아 앉히면서도 첫 검찰총장 인선을 미루는 터라,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된다.
“(검찰총장은) 상당히 중요한 자리다. 그 자리를 위해서 절차에 맞춰서 일을 진행하고 있다. 과거 전례를 봐도 전 총장 공백기에서부터 (검찰총장) 추천위가 꾸려지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있었던 것이 보통이다.” 6월10일 청주교도소를 방문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설명이다.
<한겨레21>은 실제 과거 검찰총장 사퇴 이후 새 검찰총장 취임까지 얼마나 기간이 걸렸는지를 따져봤다. 2011년 검찰청법이 개정돼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 제도가 도입된 뒤 지금까지 모두 6차례 검찰총장 인선이 있었다.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를 놓고 특별수사부 검사들이 퇴진을 압박해 한상대 검찰총장(제38대)이 물러난 뒤, 2013년 1월7일 첫 검찰총장후보추천위가 꾸려졌다. 한 총장 사퇴 38일 만이었다. 임기 만료가 아니라 예고 없이 검찰총장직을 던진 경우는 한상대를 비롯해 채동욱(제39대), 김수남(제41대), 윤석열(제43대) 등 모두 4차례 있었다. 사퇴 이후 추천위가 꾸려지기까지의 기간은 김수남 총장 때 30일이었지만, 채동욱과 윤석열 총장 때는 각각 7일에 불과했다. 역대 추천위 구성까지 걸린 기간으로만 보면 지금이 가장 긴 셈(김오수 총장 사퇴 이후 6월16일 현재 42일째)이다.
추천위가 구성된 뒤에도 △개인·단체의 후보자 천거 △법무부 장관이 추천위에 심사 대상자 제시 △추천위가 3명 이상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에게 추천 △법무부 장관 제청 및 대통령 최종 지명 △국회 인사청문회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새 검찰총장이 취임하려면 적어도 한두 달은 걸린다는 뜻이다. 한상대 검찰총장 사퇴 뒤에는 무려 125일, 윤석열 검찰총장 사퇴 뒤에는 89일 뒤에야 새 총장이 취임할 수 있었다(표 참조).
법조계 안팎에선 윤석열 대통령의 최측근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 체제에서 검찰총장의 인사 권한 등이 전에 없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이번 검찰총장 인선이 늦어지는 주요 변수라는 해석이 나온다. ㄱ검사장은 “윤 대통령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하지 왜 안 하겠나. 법무부 장관이 ‘수사에 개입 안 하겠다’고 공언해도 주요 사건은 법무부 검찰국에 보고하게 돼 있고 내밀한 사항도 (장관이) 알아서 전화로 얘기하면 그걸 어떻게 막나. 누가 와도 총장은 힘이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법무부장관·대검차장 실세인데, 누가 허수아비를?
ㄴ부장검사는 “‘바지 총장’ 역할을 기꺼이 할 사람이 총장이 돼야 한다는 것이 (이번 인선의) 최대 변수”라며 “거기다 대검 차장이 ‘실세 윤석열 라인’인 이원석이다. (총장은) 청문회 과정에서 온갖 신상이 털리면서도 (검사) 인사할 땐 별로 힘도 못 쓰고 위아래로 눌릴 게 예상된다. ‘바지’인데 ‘바지’로 안 보이면서 명분도 있는 사람을 구해야 할 텐데, 물밑 접촉 등 조율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 조직은 힘없는 검찰총장 ‘패싱’ 논란을 경험한 바 있다. 이명박 정부 때 첫 검찰총장 지명자인 천성관이 낙마하면서 대타로 총장이 됐던 김준규 전 총장,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까지 재직했던 임채진 전 총장 등이 대표적이었다. 이들은 검사 인사 등 조직 운영에서 실질적인 수장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임채진 전 총장은 2009년 임기를 6개월 앞두고 퇴임하면서 “정권교체기 검찰총장이라는 자리는 치욕을 감내해야 하는 자리”라고 털어놨다. 임 전 총장보다 사법연수원 8기수 선배인 당시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김경한 검찰총장’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검찰 핵심 조직이 이미 ‘윤석열 라인’ 검사들로 채워진 까닭에 총장 인선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 관계자인 ㄷ씨는 “아직 법무부 차원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을 놓고 재는 단계로 알고 있다. 뭐 급할 게 있느냐는 분위기 같다. 총장 후보자가 나와봐야 국회에서 원 구성도 못해서 인사청문회를 못하는 상황도 한몫한 것 같다”고 법무부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ㄹ부장검사는 “(총장 인선이 늦춰지는 건) 검사장 자리 정리가 안 됐기 때문일 것”이라며 “검사장급은 법에 따라 보낼 곳이 정해져 있고 다 괜찮은 자리다. 27~29기 검사장 상당수가 윤석열 총장이 관여 안 했던 (과거) 인사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좌천시킬지 그 고민을 더 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무부는 6월14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중 검사 정원을 기존 4명에서 9명으로 늘리는 내용을 담은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법무연수원 발령은 검사들에게는 좌천성 인사로 받아들여진다.
‘한직’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4명 → 9명 정원 늘려
검찰총장이 공석인 상황에서 인사·조직 개편을 하는 법무부의 태도는 윤석열 대통령이 과거 ‘검찰총장의 역할’을 강조했던 것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취임 다음날인 5월18일 검사 7명을 검사장급으로 승진시키고 검사장 11명을 전보하는 등의 인사를 실시했다. 이때 인사로 ‘윤석열 라인’의 핵심으로 꼽히는 이원석 당시 제주지검장이 대검 차장으로 임명됐고, 이정수 서울중앙지검장과 심재철 서울남부지검장이 법무연수원으로 좌천된 뒤 그 자리에 각각 송경호, 양석조 검사를 발령했다. 문재인 정부도 초기에 검찰총장이 없는 상황에서 대검 차장(봉욱), 법무부 검찰국장(박균택), 서울중앙지검장(윤석열)을 임명했지만, 당시에는 모두 빈자리를 채우는 최소한의 인사에 그쳤다. 검찰청법에는 검사의 임명, 보직 등은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제청하도록 돼 있다.
이재근 참여연대 권력감시국장은 “윤석열 검찰총장 때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인사 때 최소한 상의라도 하라’며 가장 치열하게 충돌했던 지점인데, 이제는 태도가 180도 바뀌어 (검찰총장의 의견 청취) 절차를 패싱하려는 것 같다”며 “누가 총장이 돼도 허수아비가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한직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 자리를 늘린 건, 문재인 정부 때 중용됐던 인사들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한 목적밖에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게 바로 직권남용이고 블랙리스트”라고 지적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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