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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통령 집무실 걸어서 10분 거리…묵묵부답에 벽 보는 기분”

등록 2022-06-03 10:20수정 2022-06-03 11:49

[현장] 삼각지역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
여야 정치인 방문 이어졌지만
“추모만 한다고 해결되지 않아”
2일 오전 11시20분께 서울 지하철 삼각지역 1∙2번 출구 쪽에 마련된 장애인 가족 추모 분향소. 이날 분향소에 마련된 책상 위에는 시민들이 숨진 발달장애 아동을 위해 두고 간 음료수와 과자 등이 놓여 있었다. 박지영 기자
2일 오전 11시20분께 서울 지하철 삼각지역 1∙2번 출구 쪽에 마련된 장애인 가족 추모 분향소. 이날 분향소에 마련된 책상 위에는 시민들이 숨진 발달장애 아동을 위해 두고 간 음료수와 과자 등이 놓여 있었다. 박지영 기자
“분향소를 다녀간 정치인들 모두 ‘미안하다’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우리 발달장애인 부모들은 빈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인들이 다녀갈 때마다 우리 부모들은 분명 변화가 있을 거라고 굳게 믿는다. 하지만 너무 안타까운 건 정작 윤석열 정부는 그 어떤 말도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 집무실에서 걸어서 10분도 채 안 되는 거리인데 묵묵부답이다. 마치 벽을 보고 있는 느낌이다.”(정정애·51)

2일 오전 11시30분 서울 지하철 삼각지역 1∙2번 출구 쪽에 마련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에는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과 더불어민주당 강민정 의원이 보낸 근조기가 세워져 있었다. 분향소 책상 한쪽에 놓인 방명록에는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등 정치권·교육계 인사 등이 쓴 위로와 약속의 글이 적혀 있었다. 지난달 26일 이곳에 분향소가 설치된 뒤 김예지 의원을 시작으로 정의당 장혜영, 민주당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 최혜영 의원 등 여야 정치인 10여명이 분향소를 찾았다.

2일까지 서울 지하철 삼각지역에 마련된 장애인 가족 추모 분향소를 찾은 정치인들이 방명록에 남긴 글들. 박지영 기자
2일까지 서울 지하철 삼각지역에 마련된 장애인 가족 추모 분향소를 찾은 정치인들이 방명록에 남긴 글들. 박지영 기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장애인단체들은 “더 이상 추모만 해선 안 된다”고 호소한다.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정정애(부모연대 서울지부 용산지회장)씨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우리 부모들은 정치인들의 말을 그냥 빈말로 흘려듣지 않는다. 분향소 다녀가실 때마다 ‘제발 꼭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를 연령대별로 촘촘히 구축해달라’고 정치인들에게 호소한다.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들의 죽음이 불과 몇 개월 사이에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이 ‘이건 너희 가족들이 알아서 해라’라고 해서도 안 되고, 이젠 그럴 시기도 아니다. 눈앞에서 죽음이 이어지는데 이런 현상을 보고도 그냥 놔두는 건 정부와 정치권의 무책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은 뚜렷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수정 서울장애인부모연대 회장은 “500명 넘는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삭발하고 단식농성을 해도 여전히 사회는 냉담하고 새 정부는 국정과제에 마지못해 (발달장애인 정책) 한 줄 넣은 정도 외에는 전혀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했다. “연일 (장애인 죽음에 관한) 기사가 나오는데 대통령이 모른다고 하면 큰일이고, 아는데 아직도 모르쇠로 일관하는 거면 무서운 일이다. ‘발달장애인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대통령으로서 관심 안 두는 건 무서운 일”이라는 것이다.

2018년 문재인 정부는 ‘제1차 발달장애인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청와대로 직접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부모를 초청했다. 당시 보건복지부와 교육부 등 범정부 민관협의체가 꾸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들은 “이후 민관협의체 활동은 전무했다”고 지적했다. 협의체만 만들고 이후 정부 관심과 지원은 없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새로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와 부모들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의지조차 안 보인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110대 국정과제 중 ‘발달장애인’ 정책으로 △발달장애인 거점병원과 행동발달증진센터 확충 △장애 조기발견 개입을 위한 서비스체계 구축 △발달재활서비스 지원과 어린이 재활의료 인프라 확대 △최중증 발달장애인 24시간 돌봄 모델 평가를 통한 확대 등을 발표했다. 윤진철 부모연대 사무처장은 “근본적으로 국정과제에 담긴 발달장애인 정책의 실효성이 있기 위해선 생애주기별로 촘촘하게 짜인 ‘2차 발달장애인 지원종합 계획’이 발표돼야 하는데, 여기에 대해 윤석열 정부는 언급조차 없다.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들의 이야기를 들을 의지조차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국회는 지난달 29일 발달장애인 권리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처리했다. 최중증 발달장애인에 대한 체계적 지원과 국가 책임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윤진철 사무처장은 “정부 의지는 평가할 만하지만, 현재 최중증 발달장애인에 대한 정의도 없는 데다 어떻게 한다는지 (구체성이 떨어져)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상태”라며 “발달장애인에 대한 보편 지원 계획을 두고 그 안에서 상대적으로 지원을 어떻게 달리할 것인지 촘촘한 계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애인단체는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 있는 정책 추진을 촉구하기 위해 2일까지 예정했던 분향소를 숨진 장애인 가족의 49재 추모 기간(7월10일) 까지 연장 운영하기로 했다. 윤진철 사무처장은 “우리가 추모만 한다고 장애인 가족들의 죽음이 멈추지는 않는다. 이 기간에 정부와 정치권에 ‘발달장애인 지원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라’는 부모들의 결기를 보여주고자 49재 기간까지 운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 오전 11시 대통령 집무실 맞은 편인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주간 활동지원서비스 개편·확대 △지원주택 도입 및 주거지원 인력 배치 등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 체계 구축을 촉구할 예정이다.

2일 오전 11시20분께 서울 지하철 삼각지역 1∙2번 출구 쪽에 마련된 장애인 가족 추모 분향소. 박지영 기자
2일 오전 11시20분께 서울 지하철 삼각지역 1∙2번 출구 쪽에 마련된 장애인 가족 추모 분향소. 박지영 기자
▶관련기사: “과연 발달장애인에게 '국가가 있느냐'” 장혜영, 분향소서 물었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44651.html

박지영 기자 jy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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