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사이버지옥:n번방을 무너뜨려라>에 출연한 <한겨레> 김완 기자가 사건 추적의 전말을 설명하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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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그땐 ‘쫓고 있다’고 믿었다. 텔레그램에서 고등학생이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유포하고 있다는 첫 보도를 낸 뒤, ‘텔레그램에 퍼지는 성착취’ 연속 보도를 앞두고 있었다. 매일 새벽까지 텔레그램 ‘박사방’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단서가 될 만한 흔적들이 나오면 캡처하고, 행여 기억이 흩어질까 취재 수첩에 날짜별 체크 포인트를 기록했다. 어느 새벽, 자다 깨 거실로 나온 아내가 말했다. “그만하고 자, 너 뭔가 쫓기는 사람 같아 보여.”
그랬다. 분명 쫓는 줄 알았는데, 쫓기고 있었다. 홀린 듯 박사방을 들여다보며, 그 참혹한 현장에서 ‘이건 기사에 쓰면 되겠다’ 따위의 생각을 하는 게 비루했다. 때때로 속이 울렁거렸다. 매일같이 피해자가 나왔다. 하루라도 먼저 보도하면 내일의 피해자는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신상이 특정된 피해자가 실시간으로 수십명의 사람들로부터 협박받는 광경을 보았을 때, 취재하는 사람으로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정말 규범적이고 윤리적인 것일까, 확신이 사라졌다.
“나 그냥 그 방에 난입해야겠어.” 어느 날, 당시 취재팀 동료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오늘도 피해자가 나오면, 다수가 또 누군가를, 피해자를 협박한다면, <한겨레> 기자의 보도를 조롱하고, 그 가족 신상 위협을 모의하면 그 방에 내 신원을 밝혀 얽혀들고, 어떻게든 관전자들을 흩어지게 만들겠다고 했다. “하지 마요, 우리가 보도를 해서 잡아야죠.” 보도를 하면 정말 잡힐까, 어떻게 보도를 해야 잡을 수 있는 걸까. 사건 기사를 문법에 맞춰 원고지 5매, 10매 분량으로 꾹꾹 눌러 쓸 수밖에 없는 언론의 틀에 규칙도, 시간도, 공간도 가리지 않는 범죄를 저지르는 저들이 포획될까.
‘텔레그램 성착취’ 연속 보도는 2019년 11월25일부터 4회에 걸쳐 1면 머리기사로 나갔다. 본격 취재에 나선 지 3주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처음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해가 바뀌고 사건을 수사하던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다. “금방 잡힌다고 하더니 왜 아직도 못 잡아요?” “김 기자님, 곧 잡아요. 다 왔습니다. 사이버 수사가 인터넷에 탁 치면 범인이 나오는게 아니에요. 저희 수사관들이 엄청 애쓰고 있습니다. 꼭 잡습니다.”
2020년 3월, 박사방을 운영했던 조주빈이 검거됐다. 그리고 모든 것이 달라졌다. 조주빈을 쫓을 때, 허공과 싸운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우리가 쫓는 건 박사라는 실체가 아니라 그를 만들어낸 환경, 그가 의탁하고 있는 사회적 구조 그 자체가 아닐까. 그건 쫓을 수도 잡을 수도 없는 게 아닐까.
하지만 아니었다. 2019년 겨울, 이름을 알 수 없는 수없이 많은 여성들이 그를 함께 쫓고 있었다. ‘n번방’ 사건을 잊으면 안 된다고 해시태그를 달고, 기사를 공유하고, 함께 울고, 분노했다. 그 힘이 결국 조주빈을, 갓갓 문형욱을 덮쳤다. 그 과정은 지난 18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에 오롯이 담겨 있다. 이어달리기처럼 배턴을 넘겨주며 텔레그램에 퍼졌던 성착취를 쫓았던 24명의 이야기. 그리고 우리가 달릴 때 잘 보지 못했지만, 결국 달릴 수 있던 힘이 되어주었던 바로 당신의 이야기다.
♣️H6s김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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