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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대통령의 반지성주의와 대선 흔든 ‘밈 헤게모니’

등록 2022-05-22 09:14수정 2022-05-22 11:15

[한겨레S] 김내훈의 속도조절
밈 전쟁
정치·문화적 영향력 막강해진 밈
특정 성향 쪽으로 동원·결집 효과
‘밈’이 근거없는 판단기준 되기도
이유막론 거부 ‘반지성’과 닮아
미국 좌파 성향 누리꾼들이 운영하는 ‘우파는 밈을 못 한다’라는 내용의 소셜미디어 게시물. 누리집 갈무리
미국 좌파 성향 누리꾼들이 운영하는 ‘우파는 밈을 못 한다’라는 내용의 소셜미디어 게시물. 누리집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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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대중의 문화와 정치에서 밈이라고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졌다. 한국뿐만 아니라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들에서도 그러하다. 젊은이들의 커뮤니케이션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밈은 특히 서구에서 결코 얕잡아볼 수 없는 영향력을 행사한다. 저명한 정치철학자 낸시 프레이저는 “두 이방인이 헤게모니적 틈새를 점거하고 새로운 정치적 밈들로 그 틈새를 채우려 하자, 익숙한 시나리오가 뒤집혔다”(<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은>, 김성준 옮김, 책세상)고 썼다.

여기서 두 이방인은 도널드 트럼프와 버니 샌더스를 가리킨다. 무소속이었던 아웃사이더 후보와 당내 세력이 없고 잡음만 가득했던 후보가 한편에선 주류 세력을 위협해 경선 승리 직전까지 가고, 그중 하나가 대선 승리까지 거머쥐게 된 데에는 젊은 네티즌들이 만들고 퍼뜨린 밈의 역할이 컸다는 주장은 이제 진부하게 들릴 정도다.

정치·사회적 힘 세진 ‘밈’

유행어, ‘짤방’, 캐치프레이즈 등 밈이라는 게 무엇이고 무엇이 아닌지 명확히 정의가 안 된 탓에 이 말에 익숙한 네티즌들도 용례를 통일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네이티브가 아닌 사람에게는 더없이 혼란스러운 말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주제넘게 정의를 내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밈을 별명이나 은어와 비교한다. 예컨대 어느 학교 복도에서 담임교사가 지나갈 때, 학생들은 자기들끼리 지은 교사의 별명을 수군거리며 몰래 웃는다. 교사로서는 학생들이 자신을 조롱한다는 심증은 갖지만 본인 기분이 나쁘다고 해서 학생을 붙잡고 혼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는 동안 그 별명이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이미 알고 있었거나 바로 이해한 학생들끼리 공유된 유대감을 강화한다. 해당 학급은 담임교사를 지칭할 때 그 별명을 즐겨 쓰는 학생들과 쓰지 않는 학생들로 크게 나뉜다.

정치적 차원에서 밈이 가질 수 있는 기능은 결집과 동원이다. 정치적 밈이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노골적이어서도 안 되고, 내집단에 속한 사람이 아니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암호 같은 것이어서도 안 된다. 한쪽은 유쾌해지고, 다른 한쪽은 언짢아지되 그것을 따지려 들면 옹졸한 사람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네티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것이어야 한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을 당시 대안우파 성향 정치인들과 이데올로그들은 밈을 적시에 활용하여 지지자들을 효율적으로 동원하고 결집시킴으로써 상당한 재미를 봤다. 이때 밈은 일종의 ‘개 호각’의 기능을 했다.

트럼프 당선 뒤 대안우파의 밈 활용은 엘리트 리버럴 세력의 정치적 올바름(PC) 의제 및 페미니즘 풍자와 조롱에 머무른 채 아무런 변화와 발전 없이 매너리즘에 빠졌다. 그러는 동안 샌더스를 지지하는 민주사회주의 성향 네티즌들이 밈의 파급력을 이어받아 리버럴 세력에 대한 조롱으로부터 좌파적 의제로 시야를 넓히는 밈을 대량으로 퍼뜨렸다. 이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지만 현재 35살 미만의 미국 청년 절반 이상이 사회주의에 호의적이고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 대안우파 이데올로그들은 이에 맞서 그들의 의제를 담은 밈을 만들고 퍼뜨림으로써 2015~17년의 영광을 재연하려 애쓰고 있다. 하지만 밈이 비정치인 네티즌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어느 정치인이 의도를 갖고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라면 효과적으로 기능하기 힘들다. 오히려 정치적인 의도와 메시지가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나면 조롱거리로 소비되는 역효과만 낳기 쉽다. 이와 같은 우파의 실패가 반복되면서 이제는 ‘우파의 밈’을 조롱하는 것이 젊은 네티즌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미국 우파 저널리스트 베니 존슨이 ‘팔러’라는 플랫폼에 운영하는 ‘좌파는 밈을 못 한다’라는 프로그램누리집 갈무리
미국 우파 저널리스트 베니 존슨이 ‘팔러’라는 플랫폼에 운영하는 ‘좌파는 밈을 못 한다’라는 프로그램누리집 갈무리

가히 ‘밈 전쟁’이라 일컬어도 손색없다. 좌파 성향 네티즌들은 ‘우파는 밈을 못 한다’(The Right Can’t Meme)(‘밈’은 언제부터인가 동사로도 쓰이고 있다)며 우파를 조롱하는 소셜미디어 계정, 유튜브 채널을 인기리에 운영한다. 이른바 ‘밈 헤게모니’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대안우파들은 “좌파는 밈을 못 한다”며 맞불을 놓고 있다. 5월 초, 베니 존슨이라는 이름의 한 우파 저널리스트는 ‘팔러’라는 플랫폼에 좌파 밈에 대항하는 성격의 ‘좌파는 밈을 못 한다’(The Left Can’t Meme)라는 짤막한 프로그램을 야심 차게 출범시켰다. 주 1회씩 방송하는 이 3분짜리 영상은 대략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대안우파 진영에서 만든 정치적 밈들을 하나씩 보여주면서 진행자 베니 존슨이 낄낄 웃는다. 이게 전부다. 일말의 설명도 논평도 없다. 여기서 보여주는 밈들은 죄다 일론 머스크가 무언가를 하면 좌파들이 발끈하는 반응을 보이는 내용으로 점철된다. 이 밈들에서 좌파로 표상되는 인물은 트럼프의 취임식 날 거리에서 시위하다 절망감에 절규하는 모습이 포착된 일반인 여성이다. 왜 주인공이 일론 머스크인지는 알 길이 없다. 이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우파들의 멘털리티와 의제가 2017년에 머물러 있다는 것, 우파들이 ‘밈을 못 한다’는 것뿐이다.

밈 헤게모니에 집착하는 까닭

저렇게 좌우를 불문하고 우스꽝스럽게 보일 정도로 ‘밈 헤게모니’에 열을 내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밈이 결집과 동원에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담론의 형성을 각 진영에 유리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기능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복잡한 설명과 맥락 이해를 요구하는 사회 현상이나 이슈가 불거졌을 때, 이것을 하나의 이미지나 짤막한 문구로 단순화하는 밈이 유행하면, 그 밈 자체가 해당 현상이나 이슈에 대한 평가와 판단의 기준이자 틀로 소급 적용된다. 이것을 ‘사유의 밈화’라고 부른다. 모든 사안을 밈의 도식에 따라 사유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이제는 특정 키워드만 거론되면 반사적으로 호오부터 결정하고 그 이유는 나중에 찾는 사람도 생기고 있다. ‘반지성주의’의 오늘날의 현상을 찾자면 이런 것을 그중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미디어문화 연구자. 첫 책 <프로보커터>에서 극단적 도발자들의 ‘나쁜 관종’ 현상을 분석했다. 한국의 20대 현상과 좌파 포퓰리즘, 밈과 인터넷커뮤니케이션 같은 디지털 현상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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