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의 피해자 이창복 선생. <한겨레> 자료사진
인민혁명당(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억울하게 옥고를 치렀던 이창복(84) 선생이 재심 무죄 판결 뒤 가지급 받았던 국가배상금 일부와 이자 등을 포함해 15억원을 물어낼 처지에 놓였다. 법원이 이 선생의 반환 책임을 덜어줄 수 있는 조정안을 권고했지만, 정부가 거부했기 때문이다. 젊어서 고문과 무고한 옥고를 치렀던 과거사 피해자가 황혼에 이르러 국가가 만든 배보다 배꼽이 큰 빚더미에 고통을 받는 모습이다.
서울고법 민사9부(재판장 남성민)가 심리 중인 청구 이의 소송에서 검찰과 국가정보원 등 정부를 대리하는 정부법무공단이 법원이 제시한 화해권고안에 대한 이의신청서를 제출한 것으로 19일 확인됐다. 정부가 이자 전액 환수 방침을 고집하면서 2심에서만 두 번이나 화해 조정이 결렬됐다. 이 사건은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 이창복 선생이 제기한 소송이다.
1974년 인혁당 사건으로 8년간 감옥살이를 했던 이 선생은 2008년 1월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듬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1·2심에서 모두 이기면서 배상금과 이자 상당액의 3분의2인 10억9천만원을 가집행으로 먼저 받았다. 그런데 2011년 1월 대법원이 갑자기 판례를 변경하며 이 선생에게는 막대한 빚이 생겼다. 대법원은 “고문으로 인한 유죄판결 당시와 현재는 장기간의 세월이 흘러 통화 가치 등에 상당한 변동이 생겼다. 불법행위시를 기준으로 이자를 계산하면 현저한 과잉배상의 문제가 생긴다”며 배상금에 따른 이자 지급 기준일을 고문으로 인한 유죄판결 확정일(1975년 4월)에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 2심 변론종결일(2009년 11월)로 바꿨다. 갑작스러운 대법원의 판례 변경으로 1975년부터 2009년까지 이자상당액이 제외되면서 이 선생은 국가에 4억9천만원을 도로 반환할 처지에 놓였다.
대법원 판결 이후 정부는 피해자들에게서 과지급된 배상금을 다시 받아내기 위한 소송을 냈다. 이 선생은 오랜 세월 신세를 졌던 주변에 쌓인 빚을 갚고, 인혁당 피해자에 대한 추모사업을 하는 49통일평화재단에 기부를 하느라 배상금 상당액을 소진한 상황이었다. ‘줬다 뺏는’ 국가배상금에 분노한 피해자들은 정부에 맞섰고, 2015년 6월 최종 패소했다. 정부는 손해배상금을 반환하지 못한 피해자들의 집을 경매에 넘기는 등 강제집행 절차에 들어갔다. 이 선생의 집도 2017년 3월 경매에 부쳐졌다. 이후 이 선생은 2019년 5월 정부의 강제경매 결정을 취하해 달라는 소송을 내 현재 2심이 진행 중인 상황이다. 1심은 패소했다. 그 사이 이 선생이 반환해야 할 돈에 이자가 10억원이나 붙었다.
지난 4월12일 재판부는 이 선생이 올해 말까지 5천만원, 내년 상반기까지 4억5천만원 등 총 5억원만 정부에 상환하고 나머지 이자(10억원 상당)는 내지 않도록 하는 화해권고안을 소송 당사자들에게 제시했다. 하지만 정부는 “5억원을 갚지 않을 경우 화해권고를 무효화 하고 원래대로 15억원을 갚도록 명시해야 한다”며 지난 3일 법원의 권고안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에 재판부는 바로 다음날인 지난 4일 정부의 요구를 반영한 화해권고안을 다시 제시하며 정부와 이씨가 다시 합의를 보도록 했지만 끝내 결렬됐다. 전날 정부가 또 다시 이의를 제기했기 때문이다. 화해 조정이 깨지면서 양쪽은 다음달 23일로 예정된 재판에서 다툼을 이어가게 됐다.
인혁당 피해자들을 대리하는 김형태 변호사는 “지연이자는 즉시 지급하지 않으면 그 시점부터 이자가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 국제적으로도 통용되는 법리라 대법원이 세월이 오래 흘렀다는 이유로 이자 계산 기간을 줄였던 판결 자체가 문제”라며 “끝까지 이자를 받아내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고문과 투옥에서 시작해 평생토록 이어지는 국가에 의한 끝없는 가해인 것”이라고 말했다.
최민영 기자
mym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