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전 대검찰청 수사정보정책관이 지난해 10월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법정으로 향하고 있다.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자문기구인 공소심의위원회의 불기소 권고를 뒤집고 고발사주 의혹 사건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검사를 재판에 넘긴 것은, 검찰 수사정보를 총괄하는 검찰총장 핵심 참모가 개입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그만큼 중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수처가 4일 수사결과를 발표하며 ‘검찰 고발사주 사건’이 아닌 ‘대검 수사정보정책관 총선개입 사건’이라고 이름 붙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공수처는 2020년 4월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 검사들 가운데 손 검사만 불구속 기소하고, 손 검사 지시를 받아 판결문 등을 검색해 전달한 검사 2명은 무혐의 처분했다.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고발장을 작성했는지는 규명하지 못했지만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쪽으로 고발장이 전달되는 과정에 수사정보정책관실 전체가 관여한 사실은 확인한 것이다.
공수처는 2020년 4월3일 손 검사를 통해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게 전달된 고발장 작성 수준이 높고, 관련 자료들이 아주 짧은 시간에 수집된 점에 주목했다고 한다. 공수처는 “A4 19쪽 분량의 고발장 내용을 보면 상당한 전문가 집단에서 작성한 것으로 보인다. 고발장 전달 당일인 4월3일에 나온 언론보도 내용까지 첨부됐다”고 했다.
공수처는 손 검사와 김 의원이 고발장과 실명 판결문 등을 직접 주고 받은 사실이 객관적 증거를 통해 입증된다고 밝혔다. 이 사건 제보자인 조성은 전 미래통합당 선대위 부위원장의 스마트폰 포렌식 결과 등을 종합하면, 손 검사가 김 의원에게 두 차례에 걸쳐 고발장 등을 전송하고, 김 의원이 이를 조성은씨에게 순차 전달한 사실이 입증된다는 것이다. 공수처는 “수집한 증거들과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에서) 판결문을 검색한 정보, 전달 시점의 시간적 근접성 등을 감안하면 다른 사람이 개입될 여지 없이 손 검사가 직접 김 의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공소유지를 위해 필요한 증거들은 법정에서 밝히겠다”고 했다.
공수처는 “고발장 작성과 전달을 총선이 임박한 시점에 선거에 개입하려는 일련의 행위로 봤다”고 했다. ‘고발장 작성→전달→실행’에서 핵심 의혹인 작성 단계는 규명하지 못했지만, 여러 정보를 단시간에 모아 전달한 행위는 고발장 작성·지시와 떼어놓고 볼 수 없다는 취지의 설명이다. 공수처는 “손 검사와 김 의원에 대해 혐의별로 기소·불기소 의견이 다양했지만, 수사팀 내부 의견은 대부분 일치했다”고 밝혔다.
공수처는 앞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사건 및 김형준 전 부장검사 사건 등에서 공소심의위 기소 의견을 받은 뒤 재판에 넘긴 바 있다.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는 “공소심의위 의견을 존중하는 것도 좋지만, 8개월간 수사한 공수처 결정을 더 존중해야 한다고 본다. 심의위가 4시간 회의를 통해 모든 증거 관계를 면밀히 들여다 보기란 어렵다”고 말했다. 사건의 구조와 내용이 복잡하다는 점에서, 앞선 사건들과 동일선상에서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있었다.
다만 향후 재판 과정에서 유죄 판단을 받아내기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불기소 권고에서 보듯 수사 완결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검사장 출신 변호사는 “윗선 수사에 실패한 공수처가 억지로 결론을 낸 셈이어서, 공판 과정에도 많은 다툼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특별수사 경험이 많은 한 법조인은 “검찰과는 달라야 한다는 취지에서 공수처가 설립된 만큼, 핵심 의혹인 고발장 작성 지시라는 직권남용 혐의 입증에 실패했다면 과감히 불기소 처분을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공모관계로 판단한 김웅 의원의 기소 판단이 검찰로 넘어가 재판이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손현수 기자
boysoo@hani.co.kr 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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