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방영된 티브이엔(tvN) 예능프로그램 <유퀴즈 온 더 블럭>에서 진행자 유재석이 게스트로 나온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를 대할 때 표정이 화제가 되고 있다. 티브이엔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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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1월, 박근혜 정권이 추진했던 한국사 국정교과서의 대표 필진으로 초빙되었던 최몽룡 서울대 명예교수는 기자에게 성희롱을 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집필진에서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의혹 보도 다음날 아침에 그는 기자들 앞에서 사퇴를 선언하는데, 잘못을 저지르고 불명예스럽게 퇴진하는 사람의 표정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밝고 해맑은 표정과 미소로 일관했다. 그의 표정을 보고 최 교수가 어떻게든 편찬위에서 이름을 빼려고 일부러 구실을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누리꾼들은 당시 짧게 유행했던 마이크로소프트 감정 분석 프로그램으로 최 교수의 표정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사퇴 의사를 밝히는 최 교수의 표정에서 행복 감정이 100%로 감지되었다.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테러를 일으키고 체포된 조하르 차르나예프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배심원들은 그가 죄책감을 갖고 진심으로 사죄하는지 여부를 두고 종신형과 사형 선고 사이에서 고민했다. 진심으로 사죄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차르나예프의 표정이었다고 한다. 그는 사과의 발언을 했지만 무표정으로 일관한 탓에 호의적이지 않은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경과학자 리사 펠드먼 배럿에 따르면 이것은 완전히 틀린 접근이다. 감정을 객관적으로 감지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특히 특정 감정과 특정 표정이 자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은 신화에 불과하다. 물론 기쁠 때 웃음이 터지거나 미소를 짓는다거나, 기분이 나쁠 때 입꼬리가 내려가는 등 기초적인 감정 표현으로서의 표정은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단선적인 연결을 상정하기엔 사람마다 너무 다양하다. 아주 기쁘더라도 그것을 좀처럼 얼굴로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분노의 표현 형태는 눈을 질끈 감거나, 입을 꽉 다물거나, 안면이 일그러지거나 입을 크게 벌려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식으로 매우 다양하다. 실패, 좌절, 절망, 패배감 앞에서도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다. 표정 관리를 잘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를 체득한 사람과 적극적인 표현을 미덕으로 여기는 문화를 체득한 사람은 같은 상황 앞에서 판이한 표정을 지을 것이다. ‘남자다움’을 중시하는 체첸 문화권에서 성장한 차르나예프에게 있어서 그의 서늘한 무표정은 패배를 인정하는 경건함의 표시였을 수도 있다.
리사 펠드먼 배럿은 한 여성의 얼굴 클로즈업 사진을 보여준다. 그녀의 안면근육은 잔뜩 일그러져 있고 눈은 질끈 감았으며 입은 큰 소리를 지르는 듯 크게 벌리고 있다. 이 사진에 ‘공포’라는 캡션이 달려 있다. 사진과 캡션을 본 사람들은 자연히 그녀가 무언가 끔찍한 것을 보고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얼굴 클로즈업 사진이 아닌 그녀의 전신과 배경을 모두 보여주는 사진을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진 속 얼굴의 정체는 세리나 윌리엄스로, 테니스 챔피언십 결승에서 비너스 윌리엄스에게 승리를 거둔 직후 주먹을 쥐고 있는 모습이다. 이제 그녀의 표정은 엄청난 기쁨의 표현이 된다. 이렇듯 똑같은 표정이라도 그것의 맥락에 따라 그 표정으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감정은 극단적으로 달라진다. 요컨대 표정만으로 감정을 역추적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감정 분석 프로그램은 신빙성이 없다.
최근 방송된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진행자 유재석이 게스트로 출연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를 대할 때 표정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언제나 프로 방송인이자 희극인의 정신으로 미소를 띤 표정이나 진지하게 경청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표정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날 방송에서는 그답지 않게 굳어 있는 표정을 유난히 많이 노출했다. 오죽했으면 한편에서는 유재석의 표정을 문제 삼으며 그의 정치색을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유재석마저 불편해하는 윤석열’을 강조하려 했다.
이에 관련하여 떠오르는 일이 한가지 더 있다. 문재인 정부 2년 특집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송현정 한국방송(KBS) 기자와 일대일 대담을 한 일이다. 대담 방송 직후 친문 성향 네티즌들로부터 항의가 쏟아졌다. 대다수는 인터뷰 질문에 관련한 불만이었는데, 그중 일부는 기자의 ‘호의적이지 않은’, 적대적으로까지 보이는 표정을 지적하며 ‘불량스러운 태도’를 문제 삼았다. 기자는 다소 억울했을 수도 있겠다. 단지 대통령 앞에서 긴장한 표정이었을 수도 있고, 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단어 하나하나를 제대로 듣기 위해 모든 신경을 기울이는 표정이었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방송에서 드러난 표정과 제스처만으로 그 사람의 심경, 감정, 태도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유재석의 표정도 마찬가지다. 그의 굳은 표정이 윤 당선자에 대한 비호감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확신할 수 없다. 다양한 맥락을 살펴야 한다. 프로그램의 간판인 자신에게 녹화 직전까지도 일언반구 없다가 돌연 대통령 당선자 인터뷰를 진행하라 시킨 제작진에 대한 불만을 미처 숨기지 못한 것이었을 수도 있고, 전혀 준비가 안 된 채 거물을 인터뷰해야 하는 부담감이 드러난 것일 수도 있다. 지금까지의 프로그램 취지와 방향과는 다른 회차에 대한 우려였을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의 바로 앞의 ‘쩍벌’ 자세를 두고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당황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유재석의 심정을 간접적이나마 추론할 수 있는 방법은 그가 어떠한 또 다른 상황에서 그와 같은 넋 나간 듯한 표정을 보였는지를 찾아보는 것일 테다. 프로 방송인답게 그러한 표정을 드러낸 방송이 많지 않아서 찾기 쉽다. 내가 찾아낸 건 이거다. <무한도전>의 어느 회차에서 유재석은 게스트로 출연한 코미디언 김영철에게 이상형이 누구냐고 물었다. 김영철이 배우 신민아라고 말했을 때, 대답을 들은 당시 유재석의 표정이 이번 <유 퀴즈 온 더 블럭>에서 윤 당선자를 만났을 때 지은 표정과 매우 비슷했다.
미디어문화 연구자. 첫 책 <프로보커터>에서 극단적 도발자들의 ‘나쁜 관종’ 현상을 분석했다. 한국의 20대 현상과 좌파 포퓰리즘, 밈과 인터넷커뮤니케이션 같은 디지털 현상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