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중장기 개혁과제 발표
법무부가 21일 그동안 법무·검찰이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던 ‘과거사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청산’ 뜻을 밝혔다. 법무부는 일단 검찰 등 국가권력이 저지른 인권침해·불법행위 등 진상규명이 필요한 사건의 목록을 만들어 내용을 분석한 뒤,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또 폐지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사형제에 대해서도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했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은 이날 정부 과천청사에서 법무부의 중장기 개혁과제들을 담은 ‘변화전략계획’(개혁 로드맵)을 발표했다. 고문·조작사건 등 외면하다 진상규명 검토
사형제 폐지 적극 논의·보안관찰제 개선도 과거사 진상규명=법무부가 이날 발표한 방안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의 과거사 진상규명 활동에 적극 협조하는 것과 자체적으로 위원회를 꾸려 법무·검찰 관련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에 나서는 두가지다. 법무부는 먼저 고문·조작·은폐 등으로 문제가 될 수 있는 사건의 목록을 작성해 자체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점검할 예정이다. 아직 구체적인 방안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스스로 진상규명에 나섰던 국정원·경찰·군과 달리 자체적인 진상규명 요구를 외면해오던 법무·검찰로서는 진일보한 태도 변화다. 검찰은 그동안 경찰 등 다른 국가기관의 진상규명 협조 요청마저도 묵살해왔다. 천 장관은 “앞으로는 법무부가 다른 어느 정부 부처 못지 않게 과거사 문제에 철저히 접근할 것”이라고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법무부는 이와 함께 ‘진실규명과 화해를 위한 당·정 공동특별위원회’에도 참가해 재심사유 확대, 공소시효 연장·배제, 소멸시효 이익의 포기 문제에 대한 법률적 보완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검찰은 재심이 진행되면 적극적으로 공판에 관여하고, 조사할 사항은 조사해 진상규명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국가범죄 공소시효 배제 계획
법무부 관계자는 “오늘 발표는 과거사 진상규명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이에 전향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뜻”이라며 “과거사 정리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형제 폐지 논의 본격화=법무부는 ‘친인권적 형사사법체계’ 구축 방안의 하나로 사형제도 존폐 문제에 대해 심층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올 상반기에는 공청회 등을 열어 국민의 여론을 모으기로 했다. 사형제 폐지와는 별도로 현행법상 사형 규정이 86개 조문에 이르고 있어, 조항별로 정치적 남용 가능성, 사형선고 사례가 있는지 등을 검토해 조항별 타당성도 점검할 예정이다. 천 장관은 “법무부가 사형제 폐지를 쉽게 얘기할 수는 없으며 사형제 폐지 논의를 내실 있게 진행하기 위해 법무부가 실증적이고 심층적인 연구를 해보자는 것”이라며 “법무부가 현재 사형제 존폐에 대해 어떤 태도를 정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법무부는 올 6월까지 독일·프랑스 등 사형제를 폐지한 국가의 강력범죄 발생 추이를 분석하는 등 △사형제 폐지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 △감형 없는 종신형제 도입국가의 제도운영 실태 등에 관한 연구를 마친 뒤 이를 토대로 법안의 국회 심의를 돕기로 했다. 수형자에 선거권 주기로 법무부는 열린우리당 유인태 의원 등이 “사형을 폐지하고 가석방이 불가능한 종신형으로 대체하자”며 2004년 12월 발의한 사형제 폐지법안에 대해 지난해 반대 견해를 밝힌 바 있다. 당시 법무부는 사형제 폐지법안에 대해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인권존중에 반하고 행형의 목적인 교정·교화의 이념과 조화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다른 개혁과제들=법무부는 간첩죄 등으로 복역한 사람들 가운데 재범의 위험이 있는 사람에게 거주지가 바뀔 때 신고하도록 규정한 ‘보안관찰제도’를 개선하는 방안도 마련할 방침이다. 또 과실범 등 일부 수형자에게 선거권을 줘 교도소에서도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기로 했다. 법무부는 “보안관찰제는 계속 인권침해 논란이 제기됐기 때문에 운영 실태를 면밀히 점검할 필요가 있다”며 “과실범까지 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지적이 있다”고 그 배경을 설명했다. 법무부는 이와 함께 구속 수사를 최소화하고, 수사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인권보호 수사준칙’을 상반기에 손질하기로 했다. 또 중국·옛소련 동포들에게 재외동포 자격을 주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한차례 2년 동안 체류를 허용하고 5년 동안 유효한 복수비자를 발급하는 것도 추진하고 있다. 황상철 기자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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